그때는 내가 이렇게 멀리까지 달릴 줄 몰랐지
인생 최고의 순간에서 첫 달리기를 생각하며
2023년 4월의 첫날, 운동화에 발을 밀어 넣고 빠르게 교차하며 동네 앞을 쏘다녔다. 이유도, 동기도 딱히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예전에 호기심으로 설치했다 삭제했던 NRC(나이키 런 클럽) 앱을 다시 설치해 아주 짧은 러닝 가이드에 따라 달렸다는 점이다. 그것으로 그날의 기억은 잊히는 듯했다.
당시에 나는 주말마다 내일이 없듯 먹고 마셨다가 평일에 참회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기실, '내일이 없다'는 표현은 나의 메뚜기 떼와 같은 식욕을 표현하기에는 몹시 점잖았다. 매일 만 보 이상 걷고 한 시간 동안 홈 트레이닝을 해야 몸무게를 겨우 복구할 수 있었다.
그날도 ‘급찐급빠’와 ‘몸무게 복구’로 머릿속이 가득 차서, 머리와 마음을 비우기 위해 주기적으로 찾아보는 여행 브이로그 영상을 틀었다. 영상에서 유튜버는 여행 내내 먹었다며 ‘아, 육지 올라가면 유산소 X나 타야지.’라고 말했다. 평소 대수롭잖게 넘기던 말인데, 그 순간에는 마음에 통렬히 와닿았다. 자연스럽게 자문자답했다. 대표적 유산소? 달리기!
아, 그럼 나도 달려봐야겠다. 달려서 ‘급찐급빠’를 하자. 홈 트레이닝은 이미 하고 있으니 달리기까지 더하면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 생각 끝에 이날 점심과 저녁에 달렸다. 저녁에는 줄곧 통화하며 달려서 거의 걷기와 다름없었지만, 달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꾸준히 달리려면 시간을 확보해야 했다. 내가 온전히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아침이었다. 보통 6시 반에 눈이 떠지기 때문에 일어나자마자 달리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마음도, 몸도 따라주었다.
그 주에는 그렇게 마음먹은 날 뿐이었지만, 그다음 주부터는 매일 아침 달리기가 생각보다 훨씬 더 순탄했다. 여건상 아침에 달리지 못하면 그날은 아예 달릴 수 없다는 사실은 막연을 필연으로 바꾸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1분이라도 좋으니까 꼭 달리자.
그런데 1km라면 더 좋을 듯하다.
1km를 달리는 건 어때?’
스스로에게 건넨 제안을 받아들여 달렸다. 그러다 보니 그 주의 금요일에는 10분을, 나아가 2km를 채우고 싶어져 그에 따랐다.
달리고 싶다는 바람은 속도를 데려왔고,
속도는 나를 더 멀리 데려갔다.
낯설었던 거리와 시간에 익숙해질수록
달리고 싶은 바람은 내게 힘을 실었다.
원하는 장소에 더 빨리 도착하기 위해선
달릴 때 항상 NRC를 이용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어플의 이모저모를 살폈다. 내가 가장 관심을 둔 것은 레벨이었다. '러닝 시작' 버튼을 누르기만 해도 그 레벨의 색깔이 화면을 가득 메웠으니까. 이후, 레벨에 따라 UI의 주요 색깔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옐로우, 오렌지, 그린, 블루, 퍼플, 블랙, 볼트. 살펴보니 오렌지 레벨이 머지않았다. 그런데 나는 주황색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고, 이어지는 레벨들은 전부 내가 좋아하는 색깔들이었다.
그린 레벨에 다다르려면 얼마나 달려야 하지?
아, 250km로군.
250km. 이상하게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멈추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도달할 수 있는 거리. 더 자주, 더 열심히 달리면 적어도 올해 안에는 도달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절로 달릴 힘이 솟아났다.
더 빨리 초록빛을 붙잡기 위해서는 더 많이 달려야만 했다. 그러려면 그때의 나로서는 한 번에 달릴 때 조금이라도 더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2023년 5월 12일, 태어나 처음으로 쉬지 않고 5km를 달린 날에는 몹시 기뻐 하트 하나를 붙였다. 놀랍게도 그다음 날 바로 기록을 경신해서 하트를 두 개 붙였다.
이후로는 5km 달리기가 일상으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마음에 하트는 아주 특별한 날에만 붙이기로 했다. 다행히도 몸이 마음처럼 잘 따라주었다. 이주에 NRC 러닝 레벨이 오렌지가 되었고, 이후로도 계속 5km 달리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즐거운 일상이자 소소한 성취가 반복되었다. 제대로 달린 지 한 달 반 만에 바로 월 누적거리 100km를 돌파했다.
월누백!
직전달만 해도 이걸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니 대단하다고, 나도 해낼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오길 바라기만 했었다. 그런데 내가 바로 이렇게 빨리 해낼 줄 몰랐다.
점점 더 달리기에 자신감이 붙을 무렵, 가까운 지역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고 했다. 알아보니 공교롭게도 5km 부문이 있었다. 5km라……. 어차피 달려야 하는 250km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채워야 하는 거리다. 채우면서, 아주 조금은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난생처음으로 자진해서 운동 대회에 참가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