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내가 골프를 하러 간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비워두고, 골프장 예약을 하고, 새벽같이 일어나 연습장을 들러, 그렇게 내가 선택한 스케줄이라 여겼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착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골프가 나를 데려가기 시작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주말 아침,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긴장한 몸이 알아서 스트레칭을 했다. 커피를 내려놓고는 나도 모르게 웨지 하나를 손에 쥐었다.
그때부터였다. 골프는 내가 가진 루틴을 하나씩 점령해 나가기 시작했다. 아침의 리듬을 바꿨고, 식습관도 달라졌다. 체력이라는 단어를 자주 꺼내기 시작했고, 골프를 핑계로 술자리도 줄였다. 헬스도 하고 러닝도 병행하게 되었다. 친구들을 만날 때에도, 이제는 필드를 전제로 스케줄을 짠다. 누군가는 그걸 골프에 빠졌다고 표현하겠지만, 나는 다르게 느낀다. 골프가 이끄는 삶을 살고 있다는 감각이다. 너무 거창한가. 나는 종종 이런 느낌을 받는다. 내가 골프를 선택했다기보다, 골프가 나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느낌.
그 방향이 늘 똑같지는 않다. 어떤 날은 사람들 속으로 데려간다. 전혀 몰랐던 사람과 한 조가 되어 인사를 나누고, 첫 홀에서부터 마지막 홀까지 대화를 쌓는다. 몇 번 보지도 않았지만 마음이 맞는 사람과 골프장에서 맺어지는 인연이 있다. 그것도 골프가 나를 데려간 관계다.
어떤 날은 혼자만의 시간 속으로 데려간다. 조용한 연습장에서 몇 시간 동안 혼자 공만 쳐도 지루하지 않다. 마치 생각을 정리하듯, 스윙 하나에 집중하고, 임팩트의 감각을 느끼고, 천천히 몸의 방향을 수정한다.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내 안의 리듬에 귀 기울이는 시간. 그건 골프가 아니었다면, 결코 가보지 못했을 내면의 장소다.
그리고 종종 골프는 나를 아주 낯선 곳으로 데려간다. 평소라면 가지 않았을 시골의 작은 마을,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퍼블릭 코스, 하루 종일 새소리만 있고 다른 노이즈가 없던 어느 파3 연습장. 전혀 다른 풍경과 바람과 잔디의 느낌. 도시에서 바쁘게 살아온 내가, 하루 종일 땅을 보고 걷고, 해가 질 때까지 조용히 풀벌레 소리를 듣고 있는 순간. 그건 골프가 이끌어내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런가 하면, 골프는 나를 과거로도 데려간다. 언젠가 처음 공을 맞췄던 그날, 첫 버디의 떨림, 쳐다보지 않아도 들어가는 퍼팅의 손맛, 드라이버가 허공에 그리던 완벽한 궤적. 그것들을 기억하게 하고, 다시 그 감각을 찾아 나서게 만든다. 마치 어느 시점에 멈춰 선 감정을 다시 불러오는 것처럼.
골프는 가끔 나를 고집스럽게 만든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만든다. 바로 어제도 그 벙커에 빠졌으면서 오늘도 같은 클럽으로 도전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고집을 통해 나는 아주 조금씩, 아주 천천히 나아간다. 그것도 골프가 나를 성장 쪽으로 데려가는 방식이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골프 중심의 삶이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건 이제는 내가 골프를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골프가 자꾸 나를 데려간다. 새로운 장소로, 새로운 감정으로, 새로운 나로. 그리고 나는 아직, 그 여행이 끝났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한 번도. 단 한순간도. 그러니 오늘도, 내일도, 골프는 또 나를 어디론가 데려갈 것이다. 설렘과 좌절, 실수와 우연, 그 모든 감정이 기다리는 곳으로. 그 끝에 뭐가 있을진 몰라도, 나는 아마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 같다.
“나는 언덕파 골퍼입니다.”
《언덕파 다이어리》는 시즌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골프처럼, 삶처럼, 이야기는 계속 흘러가겠지요. 또 다른 언덕 너머에서, 새로운 시리즈로 만나겠습니다.
#언덕파다이어리 #최종화 #정카피 #골프의흐름 #골프일기 #BsideWo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