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현관에 놓인 천국–다이소 의자 이야기

앉는 게 이렇게 소중할 줄이야

by 언덕파

러닝을 하고 나서, 다이소를 들르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니플밴드, 에너지음료 담을 플라스틱통, 대회용 얇은 장갑.
작고 저렴하지만, 달릴 때 꼭 필요한 아이템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에너지 앰플처럼 썼던

그 플라스틱통은 사실 여행용 샴푸나 세제를 담는 용도였지만, 풀코스 레이스에서 30ml씩 조제한

에너지 음료를 담는 데 딱이었다.



이런 물건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게 다이소에 있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진짜 감탄은 다른 데서 왔다. 어느 날 지인의 집에 갔는데, 현관에 파란색 접이식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난 파란색을 좋아한다). 아이 없는 싱글이었기에 궁금해서 물었다.

“등산 가거나, 골프 갤러리 가서 쓰려고 산 거야?”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니. 신발 신을 때 앉으려고.”

실제로 의자에 앉아 신어보았다. 너무 편했다. 이게 이런 용도였다고?

물건은 흔하고 평범한데 사용하는 사람의 희뜩한 아이디어가 접목된 케이스였다.



무릎을 굽히고, 쪼그려 앉고, 허리를 굽히는 그 찰나. 그 작은 의자는 명확한 목적을 가졌다.

그 순간 깨달았다. 러닝을 다녀온 날, 헬스에서 하체를 태운 날, 장대비를 뚫고 퇴근한 날,
현관문 앞에서 허리를 굽히는 그 5초가 얼마나 고단한지.

그 의자는 내 73킬로를 흔들림 없이 받아주었고,
나는 그 위에 앉아 몇 초간 숨을 고르며 마치 ‘천국의 발코니’에라도 앉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작지만 쏠쏠한 쓰임새. 원래의 용도 외에 다양한 베리에이션.

수고하고 짐진 날이면 소파에 쓰러지기 전 이 의자에 먼저 앉는데

나는 이 의자에서 몇 초 동안의 압축된 쉼을 느낀다.



KakaoTalk_20231119_153021268.jpg



다이소는 원래 그런 곳이 아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곳. 하지만 이제는 생활의 맥을 짚는 곳이다.

샤워기 호스도 다이소에서 바꿨다. 기존 건 짧아서 욕실 청소할 때마다 불편했는데, 신장된 새 호스는 욕실 구석까지 시원하게 닿는다. 가격은 단돈 5천 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좋은 디자인은 비싼 게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정확히 도착하는 것이라고.
의자도, 호스도, 통도 모두 그랬다. 어머니께도 파란색 의자를 하나 사드렸다. 신발을 편히 신고 벗으시라고. 혹은 낮은 바닥에서 하시던 집안일을 의자에 앉아하시라고.

어쩌면 이 의자는 다이소가 만든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사용법으로 완성된 것일지도 모른다.

쓰는 사람이 진짜 디자이너다. 다이소는 그냥 무대일 뿐.


작지만 확실한 쉼은, 늘 눈앞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겐 그저 의자, 나에겐 오늘을 버티게 한 5초.






#다이소원픽 #현관의자 #러너템 #다이소러닝템 #에너지플라스틱통 #샤워기호스 #브랜드가아닌사용법 #아이디어를춤추게하라 #탱고크리에이티브

keyword
월, 금 연재
이전 27화홀인원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