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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화 위의 작은 온기 - 스포츠테이핑 이야기

겨울 러너만 아는 보온의 작은 루틴

by 언덕파

달리기를 한다고 말하면(어떨 땐 마라톤) 돌아오는 반응은 둘 중 하나다.
"와, 대단하세요" 아니면 "무릎 안 나가요?" 그리고 겨울이면 추가로 붙는다.
"이 추운데요?"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겨울 러닝은 습관보다 요령이라고.

바람이 세게 부는 겨울 아침, 신발 안으로 파고드는 냉기. 그날은 페이스보다 추위와 싸우는 날이 된다. 한여름 무더위에 뛰는 것보다 차라리 추운 겨울이 뛰기엔 더 낫다. 그래서 발끝이 시려도,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아도 일단 뛰고 본다. 왜냐면 안 뛰면 더 우울해지니까. 러너들은 공감할 것이다. 꾸준히 뛰다가 어떤 사유로 인해 뛰지 못할 때의 안타까움과 좌절감.



영하의 겨울 러닝이 한여름 러닝보다 낫다고?

그렇다고 아무 준비 없이 뛰는 건 아니다. 귀가 시리고 손이 시린 건 비니와 장갑으로 어느 정도 커버가 된다. 하지만 추운 러닝 때 가장 취약한 신체 부위는 바로 발가락이다. 뛰다 보면 발이 시리다. 뛸까 말까 고민되는 시점이 찾아온다. 그렇다고 등산화를 신고 뛸 수는 없는 일. 대부분의 러닝화는 통기성을 고려해 소재가 가볍고 얇다. 그래서 겨울철엔 찬바람이 솔솔 들어오고 만다.



한겨울 러닝을 발 시림 없이 거뜬히 달릴 수 있게 해주는 작은 팁이 있다. 달리기 경력이 오래된 분들은 이미 사용해 봤을 비밀 병기다. 바로 스포츠 테이핑이다. 러너라면 한 두 개쯤 가지고 있을 그 흔한 키네시오 테이프. 원래는 근육 지지용으로 쓰는 테이핑이다. 보통은 무릎이나 어깨, 허벅지 등 근육에 붙이는 테이프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보온 필름”처럼 잘라 붙인다. 몸에 붙이는 스포츠 테이프가 겨울철 보온의 무기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사용법이랄 것도 없다. 가위를 사용해 달리러 나가기 전, 자주 신는 러닝화 위에 붙여준다. 정확히 말하면, 러닝화의 앞코 쪽 발가락 부위. 러닝화를 신기 전, 테이프를 가로로 자르고, 작게 잘라 붙인다.

러닝화 앞쪽 형태에 맞게 모서리를 다음어 잘라주면 떨어지지 않고 잘 고정된다.


러닝 전, 스포츠테이핑을 붙인 러닝화 앞코


뛰어보면 안다!

그냥 붙이는 것만으로도 발끝에 막이 하나 생긴다. 보온력이 생기고, 의외로 접착력도 좋다. 스포츠테이핑 사용의 의외성은 여름철에도 통한다. 비가 자주 오는 시즌, 러닝화 앞쪽에 똑같이 붙여주면 빗물이나 길 위에 고여있는 물을 어느 정도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실제 비가 내렸던 풀코스 대회 때 테이핑을 해서 뛴 적이 있었는데, 빗물로 인한 발가락 이슈 없이 무사히 완주했던 기억이 난다.


러닝화를 꽤 여러 켤레 갖고 있지만 겨울이 오면 하나같이 '시리다'. 아무리 비싼 러닝화라도
메쉬 구조 특성상 바람은 통과시킨다. 양말을 두 겹 신는 것도 한계가 있고, 핫팩은 뛸 땐 무용지물이다.

그런데 테이핑 하나로, 신발 속 기온이 달라진다. 물리적으로 기온이 오른다기보다 심리적으로 따뜻해진다. 그 얇은 테이핑 하나가 "괜찮아, 버틸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딱 5-6센티 남짓한 테이핑 한 조각. 그게 내 발끝에 마음에 온기를 남긴다.



테이핑이 놀라운 이유는 애초에 그런 용도로 만든 게 아니라는 것. 하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재발견’했을 때, 그건 세상에 하나뿐인 러닝 아이템이 된다. 발바닥에 붙이고, 무릎에 감고, 손목에 감지만 나는 겨울에 러닝화에 덧붙인다. 이게 내가 겨울 러닝을 견디는 요령이다. 가끔 러닝을 하지 않는 분들이 측은하게 내 발을 쳐다볼 때가 있다. 얼마나 신발이 닳았길래 테이프까지 붙여서 뛰나 하는 표정으로.



온기를 발끝에 숨겨두고 뛰는 사람, 그게 바로 겨울 러너다. 현관 한편, 테이핑은 늘 그 자리에 있다. 이 작은 조각 하나가 겨울 러닝을 만들고, 겨울 러닝은 내 겨울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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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카피의 피크닉》은 30화로 완결됩니다.

사물에 담긴 통찰, 일상 속 경험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습니다. 다음 시리즈는 브랜드를 단순히 소개하는 리뷰가 아닌 브랜드를 에세이로 풀어내는 글이 될 것입니다.


《브랜드를 에세이하다》

광고인의 시선으로, 당신의 일상을 다시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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