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틈이 일렉 기타를 배우고 있습니다. 기타 연주가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아니었고 그저 기타리스트라는 멋에 반해 충동 레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배움의 속도가 느립니다. 변명이죠. 여하튼 기타 레슨을 받은 후부터 출퇴근 길에 자주 록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당연히 주로 기타 솔로 파트 위주로 반복해서 듣습니다. 그렇다 해도 음악 자체를 자주 듣게 됩니다.
하루는 저녁 식사 후 날씨가 좋아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언제나처럼 이어폰을 낀 채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 조깅을 하는 사람,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 그리고 그들 사이를 천천히 걷는 기타리스트 빙의된 채 자연스럽게 저장 폴더의 플레이리스트를 열어 봅니다.
플레이리스트를 랜덤으로 돌려두었는데, 첫 곡부터 익숙한 기타 전주가 흘러나옵니다. 많이들 좋아하는
유명한 락그룹 본 조비(Bon Jovi)입니다.
그중에서도 <Bed of Roses>라는 노래.
유창한 영어로 부르진 않고(못하고 가 맞겠네요) 허밍으로만 따라 해 봅니다.
‘이 노래는 언제 들어도 참 좋아, 특히 리치 샘보라의 기타 연주는 말해 무엇’
본 조비의 곡들 중에서도 이 노래는 특별히 더 자주 듣는 곡 중의 하나입니다. 멜로디도 감미롭지만 역시 기타 솔로 파트 때문이죠. 이 노래를 들으며 장거리 러닝도 하고, 운전을 할 때도 즐겨 듣습니다.
보통 노래에 꽂히면 자연스레 가사를 찾아 읽어보곤 하는데, 기타 레슨 이후론 가사보다는 연주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멜로디에 익숙할 뿐 그냥 아는 단어 몇 개 주워들으며 흥얼거릴 뿐이죠.
근데, 그날따라 문득 가사가 궁금해졌습니다. ‘이렇게 자주 듣는 노래인데,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해봤죠. 가사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더니... 순간 잠시 멈칫했습니다.
This hotel bar hangover whiskey's gone dry
호텔 바에서 마신 위스키는 이미 다 떨어졌고
The barkeeper's wig's crooked
바텐더는 가발이 비뚤어진 채로
And she's giving me the eye
내게 눈길을 보내고 있지
I might have said yeah
좋아라고 대답할 수 있었는데
but I laughed so hard I think I died Woo Yeah!
난 그냥 크게 웃어 버리고 넘겼어 우~ 예~
(기타 솔로)
‘어…?’
환상적이거나 낭만적인 가사일 거라 생각했던 내 기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아름다운 장미 침대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노래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피곤에 절어 호텔방에서 술에 취한 채 연인에게 미안함을 토로하는 이야기였다니. 이렇게 감미로운 멜로디에 이런 솔직한(?) 가사가 담겨 있을 줄이야.
기타 솔로가 흐를 때마다 가슴이 벅차올랐던 그 느낌이, 알고 보니 숙취에 시달리는 록스타의 고백이었더군요. 가사를 읽고 혼자 피식 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살짝 후회했어요. ‘검색하지 말걸.’
멜로디와 분위기로만 이해했던 노래가 더 좋았던 것 같았거든요. 깊이 알면 실망할 수도 있고, 가끔은 모르는 게 더 감미로울 수도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노래뿐만이 아니더군요. 어떤 것은 적당히 모르는 편이 더 좋을 때가 있습니다. 너무 깊이 파고들면 기대가 깨지고, 알지 않았으면 더 오래 사랑할 수도 있었을 것들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비슷한 경험은 또 있죠. 어떤 영화의 해석을 알기 전이 더 감동적인 경우도 있고, 누군가의 숨겨진 면을 모른 채 지내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고, 진실보다 환상이 더 오래가고, 완벽하지 않아서 아름다운 것들도 있습니다. 영문을 모른 채 좋아하는 게 더 행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제 영문 해석이 짧은 이유가 크겠지만). 알 수 없는 가사가 오히려 내 감정과 더 잘 맞았던 것처럼...
그날 이후로도 여전히 <Bed of Roses>를 듣습니다.
그냥, 못 알아듣는 척.
몰랐을 때처럼.
앞으로도 팝송의 영문 가사는 굳이 검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의 PICK, 오늘의 피크닉]
우리는 때때로 모든 걸 명확히 알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음악을 들을 때, 영화를 볼 때, 그리고 삶을 살아갈 때도 말이죠. 여행 중 길을 잃고 우연히 멋진 장소를 발견한 순간처럼, 맛있게 먹던 음식의 재료를 굳이 알 필요 없을 때처럼, 사랑이 모든 걸 다 알기 전이 더 설렐 때처럼요. 여러분의 ‘모르는 게 더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오늘, 여러분의 PICK은 무엇인가요?
#영문가사 #영문 #행복 #본조비 #음악 #오늘의 PICK #피크닉 #아이디어소풍 #탱고크리에이티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