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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탈리아 문화의 날, 무료입장 즐기기

by Bora

우리나라에서 고궁과 박물관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문화의 날은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바티칸 문화의 날은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 이탈리아 문화의 날은 매월 첫째 주 일요일이다. 바티칸과 로마는 이처럼 무료입장일이 서로 다르다.

로마 근교에서 6주를 살면서 간신히 한 번 만나게 된 이탈리아 문화의 날. 이탈리아가 주는 선물을 알뜰하게 받고 싶지만 시간이 한정돼 있으니 욕심은 내지 않기로 했다.


지난가을에 왔을 때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를 보다 지쳐서 올라가지 못한 팔라티노 언덕을 오늘 찾아가 보기로 했다. 로마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콜로세움, 포로 로마노, 팔라티노 언덕 세 군데는 각기 따로 입장권을 구입할 수가 없고, 18유로부터 시작하는 통합 입장권만 구입이 가능하다.

새벽 버스에서 내려 천천히 콜로세움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콜로세움을 빙 둘러싸고 이미 1천여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문화의 날에 가장 인기 있는 장소가 바로 콜로세움이다.


'우리는 콜로세움은 안 가고 한가한 팔라티노 언덕으로 갈 거니까, 저 고생은 안 해도 되지' 하면서 여유만만하게 걸어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을 지나 팔라티노 언덕으로 직행하려고 보니 그 줄은 콜로세움으로 이어지는 줄이 아니라 무료 티켓을 받는 줄이었다.

입장권 판매소 앞 직원에게 물어본 결과 무료입장일이라고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일단 매표소에 줄을 서서 통합 입장권을 무료로 받은 다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콜로세움에 비해 인기가 없는 팔라티노 언덕이라도 동일한 대기 줄에 서서 입장권부터 받아야 하는 거였다. 바티칸처럼 무료입장일에는 무사통과를 할 것으로 상상했던 우리가 무식했다.


새로 줄을 서느니 팔라티노 언덕을 포기하고 콜로세움 바로 옆에 있는 네로의 황금 궁전, 도무스 아우레아에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거긴 오늘 입장 불가란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는데 어디로 가지? 야외에선 어딜 가더라도 비 맞으며 고생이니 차라리 박물관으로 가자.


먼저 팔라초 바르베리니 국립미술관으로 가려고 지하철을 탔다. 17세기에 세워진 바르베리니 궁전은 현재 국립 고미술관(Gallerie Nazionali di Arte Antica - Palazzo Barberini)으로 운영되고 있다.


베르니니와 보로미니라는 두 건축가가 완성한 바로크 양식의 이 궁전은 입구 계단에서부터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위대한 두 명의 거장 건축가가 설계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만으로도 미술작품 속을 걷는 것 같다. 둘을 비교하면 베르니니의 사각 계단보다 보로미니의 나선형 계단이 더 멋지다.


이 미술관에서 라파엘로, 카라바조 등 거장들의 회화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물론 행복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커다란 홀의 천정을 가득 채운 거대한 그림이었다.


사진으로 찍은 다음 아무리 확대해서 들여다봐도 그림이 아니고 마치 돌을 조각한 것처럼 입체감이 생생하다.


바르베리니 미술관을 나와서 다음 코스인 테르미니 역 앞의 국립박물관, 마시모 궁전으로 갔다.

로마에는 국립박물관이 네 군데 있다. 그중 테르미니역 주변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욕장 자리와 마시모 궁전에 두 개의 박물관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특히 마시모 박물관은 바티칸 다음으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유물을 많이 소장하고 있어 방문할 가치가 높은 곳이다. 건물은 현재 외장 공사 중이라 외부가 덮개로 둘러싸여 있는데 벽에 거대한 아이폰 광고판이 붙어있다. 국립박물관에 아이폰 광고라니 아이러니하다.


궁전이라지만 바닥 면적은 생각보다 넓지 않다. 1층부터 3층까지 올라가며 조각, 프레스코화, 모자이크 타일 등을 모아놓은 다양한 갤러리를 볼 수 있다.


여신 아테나, 쉬고 있는 권투선수 등 헬레니즘 시대에 만들어진 조각들을 보면 그 세밀한 묘사가 2천여 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아내 리비아의 별장(빌라 리비아)의 프레스코화를 옮겨놓은 방에 들어가면 마치 내가 봄날의 정원에 있는 것 같다.

푸른 나무 사이로 새들이 날아다니고 꽃들이 피어있는 정원이 그대로 옮겨져 있어 그저 앉아만 있어도 좋았다. 이 세밀한 벽화를 어떻게 손상없이 고스란히 옮길 수 있었는지도 신기하기만 하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알뜰하게 로마에서 문화의 날을 즐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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