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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승선지, 하선지 타고 내리기

by Bora

크루즈가 가장 우아하고 편안한 여행법이라지만, 그 편안함은 배에 오른 다음부터 시작된다.


배에 오르기 전까지는 크루즈 터미널 위치 확인과 준비물 등 챙겨야 할 게 한 두 개가 아니다.


적어도 일주일 이상을 바다 위에서 살아가기 위한 물품 리스트는 적지 않다.

조깅 트랙이나 피트니스 센터, 수영장을 즐기려면 운동복과 운동화, 수영복은 기본. 선내에서 편하게 입을 일상복, 기항지 산책을 위한 간편한 옷차림, 그리고 정찬 식당에 어울리는 정장과 구두까지... 짐은 점점 늘어난다.

아차! 책도 넣어야지, 배 위에서 읽는 책은 꿀맛이거든.


이것저것 챙기다 보면 결국 큰 캐리어에 짐이 꽉 찬다. 그 큰 캐리어를 가지고 배에 타고 내리는 일만 무사히 치러낸다면 이후엔 오롯이 편안함만이 남는다.


배에 처음 타기 전에 알아둘 한 가지!

크루즈에 처음 승선할 때 단 한 번만 캐리어에 넣은 주류 반입이 허용된다. 공식적으로는 1인당 와인 한두 병 정도까지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조금 더 넣어도 문제 되는 경우는 없었다.


일단 배가 출항하고 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기항지에서 투어를 마친 뒤 배에 오를 때는 모든 가방이 엑스레이를 통과하게 되고, 그때 술이 발견되면 별도의 콜키지 요금(코르크 차지)을 지불해야 한다. 예전에는 선내 보관 후 하선할 때 돌려주기도 했지만, 요즘은 대부분 비용을 요구한다.


한 번은 북유럽 크루즈 중 마지막 기항지인 독일의 슈퍼마켓에서 귀국할 때 가져가려고 17유로짜리 와인을 구입했다. 전처럼 보관해 줬다가 하선 때 돌려받을 거라 생각했지만, 돌아온 건 ‘콜키지 18달러’라는 안내뿐. 결국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 돼버렸다.


물론 정찬 식당에서 와인을 주문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가격도 적당하고, 남은 와인은 보관 후 다음 식사 때 다시 마실 수 있다.

하지만 객실 창밖으로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기울이는 와인 한 잔의 낭만도 놓칠 수는 없다.




대형 캐리어를 이끌고 크루즈 터미널까지 가는 여정은 때로 소소한 난관을 만나기도 한다.


어떤 도시는 공항처럼 여러 선사가 함께 사용하는 공용 터미널을 두기도 하고, 어떤 곳은 특정 선사를 위한 전용 터미널이 별도로 운영된다.

마이애미의 노르웨지안 크루즈 전용 터미널


터미널의 위치도 제각각이다. 시내 중심에 있어 접근이 쉬운 곳도 있지만, 외딴 지역에 떨어진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럴 땐 선사에서 제공하는 유료 교통편이 가장 편리하다. 그러나 선사를 통한 교통수단은 대부분 대중교통보다 추가 비용이 나가게 되므로 내 방식이 아니다.


나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승선과 하선을 할 때도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그동안 내가 이용했던 승, 하선지는 다음과 같다.

지중해: 로마, 베네치아, 아테네, 바르셀로나

북유럽: 코펜하겐, 킬, 로테르담

카리브해: 마이애미

남미·남극: 발파라이소, 부에노스 아이레스


바르셀로나, 마이애미, 발파라이소는 터미널이 시내와 가까워 우버 택시로 무난히 이동할 수 있었고, 로테르담은 전철로 접근 가능해 승하선이 수월하게 진행됐던 곳이다.

아테네에서 내렸을 때는 우버가 없어 일반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지만 가까운 전철역까지만 이동하고 시내 1일 교통권으로 움직여서 별 문제없었다.

크루즈 터미널에서 지하철로 쉽게 연결되는 로테르담 중앙역


반면에 배를 타고 내릴 때 시행착오를 겪었던 곳은 아래의 도시들이다.


1) 이탈리아 로마

로마 시내에서 크루즈 터미널이 위치한 치비타베키아 항구까지는 80km가 넘게 떨어져 있기 때문에, 로마 테르미니 역에서 기차를 이용해야 한다.

문제는 이 치비타베키아행 기차가 테르미니 역 중앙홀에서 무려 400m 정도 떨어진 플랫폼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플랫폼 번호는 기차 출발 5~10분 전쯤에야 전광판에 뜨니, 번호가 뜬 후에 움직인다면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전력질주를 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니 미리 남동쪽 끝에 있는 27번이나 28번 플랫폼 근처에서 기다리는 것이 안전하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점은, 이탈리아 기차 중 좌석 지정이 없는 일반 열차를 이용할 경우, 반드시 승차 전에 표를 개찰기에 넣고 '펀칭'을 해야 한다는 것, 치비타베키아행 기차도 마찬가지다. 이 과정을 잊으면 부정 승차로 간주되어 벌금을 물 수 있다. 치비타베키아항에서 내려 터미널행 유료 셔틀버스를 타면 크루즈 터미널 앞에 내려준다.

로마 테르미니 중앙역


2) 이탈리아 베네치아

‘물의 도시’라는 별명답게, 베네치아에는 다리가 많다. 크루즈에서 내려 중앙역인 산타루치아역으로 가려면 계단으로 이어진 커다란 다리 하나를 건너야 하는데, 문제는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이 다리를 넘어야 한다는 점이다.

계단 입구에는 “짐 운반 5유로”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지금은 요금이 좀 더 올랐을 수도 있다) 그 돈은 아끼지 않기를 추천한다.


나는 고생을 사서 했다. 낑낑대며 계단 중턱까지 오르던 중, 한 청년이 다가와 캐리어를 번쩍 들어 옮겨주었고, 고마운 마음에 “땡큐”를 연발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그는 아무렇지 않게 10유로를 요구했다. 처음부터 맡겼다면 괜히 진땀은 안 흘렸을 텐데, 하는 후회만 남았다.


3) 덴마크 코펜하겐

내가 가장 큰 바가지를 썼던 곳은 코펜하겐이었다.

평소엔 코펜하겐에서 지하철과 버스를 잘 이용했지만, 한 번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에 크루즈 터미널에서 공항까지 택시를 탔다. 택시가 출발한 후 미터기 올라가는 걸 보니 몇십만 원 나올 것 같아 얼른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목적지를 바꿔 내려달라고 했다. 기사는 "오늘 기차가 파업이라 운행하지 않아"라고 한다. 뭔가 수상해 보였지만 더 이상 고집하지 못하고 할 수 없이 공항까지 가서 17만 원! 을 냈다.

공항에 도착해 캐리어를 맡긴 뒤 1일권을 끊어 다시 시내로 나와보니, 파업은 무슨 파업! 지하철은 멀쩡히 운행 중이었다.

어디를 가든 믿을 수 없는 택시 기사들이 있기 마련이다. 코펜하겐은 대중교통만으로도 충분히 이동이 가능하니, 괜한 지출은 피하는 편이 낫다.


4)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조심해야 할 건 택시 요금이다.

승선할 때는 터미널까지 우버 택시로 잘 갔는데 하선할 때는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려서인지 너무 복잡해서 택시 잡기가 만만치 않았다.

크루즈 터미널 앞에 선사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택시를 연결해 주길래 타려다가 시내로 가는 가격을 물어보니 거의 서너 배 높게 부른다. 길을 건너 조금만 한적한 곳에 가서 우버를 부르면 반의반 값에 시내, 혹은 공항까지 갈 수 있다.


5) 독일 킬(Kiel)

네 번이나 방문해 익숙하다고 방심했던 킬에서도 낭패를 본 적이 있다.

킬의 주요 크루즈 터미널은 시내와 가까워 중앙역에서 버스로 서너 정류장이면 도착한다.

그동안 무난하게 다녔던 기억에, 크루즈 선사의 승선 안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무턱대고 익숙한 터미널로 갔더니 우리가 타야 할 MSC 크루즈 배가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MSC 전용 터미널은 시내에서 10km 이상 떨어진 외딴 곳으로, 버스정류장에 내려서도 캐리어를 끌고 10분 가까이 걸어가야 했다. 일찍 출발했기에 망정이지 임박해서 갔다면 땀 좀 흘렸을 것이다.


크루즈 예약을 완료하면, 선사 측에서 보내주는 안내 메일에 정확한 터미널 위치가 포함되어 있다. 이를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히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크루즈배의 출항 시간은 대개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 늦어도 출항 두세 시간 전에는 체크인을 마쳐야 하는데 나는 좀 더 일찍 배에 오르는 걸 선호한다.


모든 크루즈 배들은 크루즈 마지막날 아침 9시까지 이전 승객들이 하선을 하게 되고 곧바로 새로운 승객을 맞을 채비를 하므로 정오 무렵부터는 체크인이 가능하다.


크루즈를 타는 과정은 대형 호텔과 국제공항 체크인 과정의 중간쯤으로 보면 된다. 캐리어를 끌고 크루즈 터미널에 도착하면 공항에서 수하물 부치듯 일단 캐리어를 맡기게 된다. 가벼워진 몸으로 여권을 보여주고 크루즈 카드를 발급받으면 절차는 가볍게 마무리된다.


일찍 승선하여 점심을 즐기고 거대한 배의 구석구석을 탐색하다 보면 어느덧 나의 캐리어가 방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무사히 배에 올라탔다면 이제는 온전히 즐길 일만 남는다. 다음 편부터는, 각 기항지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알뜰하게 다녔던 여행 이야기들을 풀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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