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반찬가게에 다녀오니 김치 가격이 무섭다. 손바닥 반만 한 배추김치가 5천 원. 정부에서 김장철을 맞아 특별히 지원하겠다는 발표가 실감된다. 오가며 보이는 배추 두 포기가 이만오천 원. 몇 번 눈을 비벼도 가을배추 출하 전까지는 김치가 아니라 금(金)치겠다. 우리 집은 여태 처가로부터 김치를 받아 왔다. 처가는 매해 김장을 크게 한다. 손님들부터 지인, 식구들까지 챙길 이들이 많은지라 배추만 세 자릿수를 오간다. 덕분에 결혼 4년 차인 올해까지도 장모님 김치로 한 해를 넘기다가, 지난주에 김치가 똑 떨어졌다. 작년에 김장 규모를 줄인 탓에 김칫독이 일찍 비었는데. 장모님이 챙겨주신 깻잎 절임 덕에 여태 기대었다. 보릿고개도 아니고 김칫고개를 맞아 아내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여보, 김치 한 번 담가야겠어.”
한 달쯤 되었을까. 추석이 지나고 전을 부치려 구매한 믹서기와, 전을 부치고 남은 쪽파로 김치를 담근 적이 있다. 유튜브 영상 서너 개를 보고 적당히 계량했는데 생각보다 맛있어서 먹을수록 줄어드는 게 아까웠다. 그때의 성공 경험에 홀린 듯 자신감은 날개를 편다. 김치가 비싸면 내가 담그면 되지. 까짓것 할 만하던데. 청과상에 들러 총각무를 골랐다. 한 단을 고르니 아주머니께서 김치 할 거면 하나 더 하라신다. 엉겁결에 두 단에 쪽파까지 샀다. 돌아와서 알타리무, 총각무 도대체 뭐가 맞는지 찾아보았다. 조선시대 미혼 남성들이 양갈래로 동여 맨 머리를 총각(總角)이라 하는데 그 모양을 닮아 표준어가 총각무, 총각김치로 제정되었단다. 총각이 한자어인 것도, 동여 맨 머리를 가리킨 것도, 혼인을 늦게 할수록 총각이 커져서 더벅머리 또는 떠꺼머리라는 말이 생긴 것도, 이번에 알았다. 이럴 때 국어 공부가 재미있다.
오늘 아침, 베란다에 가득한 가을볕에 비닐 속에서 총각무가 익어 갔다. 빨리 담가야겠다. 오전 내 여름 이불을 모아 빨고 총각김치 담그는 법을 찾아보았다. 대단한 방법들이 많았지만, 집에 있는 재료로 쉽게 하려고 레시피 여러 개를 보면서 머릿속으로 재료를 넣고 뺐다. 먼저 아내와 함께 흙덩이 엉긴 총각무를 씻는다. “우리 세대에서 김치 담그는 사람이 많을까?” 씩 웃던 아내 가로되 "둘 다 휴직하니까 담가볼 엄두를 내지. 우리도 휴직 아니면 못하지." 둘이 나눠도 손질이 한참이니 싫증이 나려는데. 아내의 마음씨에 또 배운다.
칼로 다듬고 수세미로 닦고 다시 칼로 다듬었다
총각무를 절이며 무도 하나 썰어 넣었다. 절반쯤 절여졌을 때, 쪽파도 한 묶음 잘라서 섞었다. 채소가 절여지는 동안 멸치 액젓, 쌀밥, 사과, 양파, 마늘, 새우젓에 물을 조금 넣고 갈았다. 김장 육수 대신 시판 사골곰탕 국물을 섞었다. 재료가 갈린 후 고춧가루를 따로 섞는다. 김칫소를 만들 땐 재료를 갈고 고춧가루를 따로 넣는 게 신기했다. 중간에 운동을 했더니 너무 오래 절여졌다. 씻어도 짜길래 연거푸 한참을 씻었다. 물기를 적당히 짜고 소와 버무리니 양이 딱 맞는다. 레시피가 참 용하다. 반나절 고생을 했는데 막상 통에 담으니 얼마 안 되었다. 무를 안 넣었으면 그마저 적을 뻔했다. 수고로움의 산물을 보고 있자니 여태 먹던 김치를 마련해 주신 장인어른, 장모님께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절인 채소와 김칫소. 집에 있던 고춧가루를 모두 털었다.
다산 선생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두 아들에게 김치를 담그는 사치를 경계했는데, 우리는 검약을 위해 김치를 담갔으니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오늘 들어간 재료비는 15,000원 남짓. 이걸 구매하려면 얼마가 들려나 싶다가도 비용보다 재미에 초점을 두어 본다. 겨우내 먹을 만큼 많이 담그지 않았으니 사전적 의미로서 김장을 한 건 아니지만, 적은 양일지라도 혼자 살았더라면 사 먹고 말지 결코 김치를 직접 마련하지는 않았으리라. 우리네 부모님들도 식구들 먹일 기대로 김치를 마련하셨겠지. 채소를 다듬고 절이는 동안 피어난 기대가 그런 마음인가 싶어 생소하면서도 재미있다. 조금 지나면 우리 아이들도 씻은 김치는 먹을 수 있겠지. 녀석들이 조금씩 익숙해질 김치 맛과 함께 우리 부부의 사랑도 알아가며 자라길 소망해 본다. 우리네 부모님이 보내주셨듯, 우리가 건네는 사랑도 점차 익어갈 테고. 저 김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