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정현이 미리 나와 준희의 숙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캘리포니아로 오고서 매일매일 그의 얼굴에 햇살이 드는 듯했다. 이토록 얼굴에 마음이 드러나도 준희와 더 친밀해질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 마음에 남았지만 이마저 유지할 수 없을까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통이 넓은 반바지 안에 하얀 반팔티를 넣어 입은 준희가 밖으로 나왔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 한.. 10분?"
"너 T야?"
"응?"
"장난이야. 가자!"
정현이 준희를 배려해 너무 오래는 아닌 기다릴만한 수준의 10분이라고 줄여 거짓말을 한 것이지만 준희는 그가 정확히 시간계산을 한 것이라고 오해했다.
정현이 운전대를 잡고 시동을 걸었다. 그의 옆에 앉은 준희는 그를 살짝 보더니 웃었다.
"목걸이 했네?"
정현이 한 손으로 목걸이 펜던트를 살짝 매만지다 그녀를 흘깃 보고 다시 앞을 보았다.
"너는 어디 갔어?"
"아니~~ 나는 창문 앞에 걸어놨어."
"창문 열었을 때 목걸이가 살짝 흔들리면서 반짝이니까 예쁜 거야~"
"잃어버리지만 마."
기대도 안 했다는 듯 정현은 웃어넘겼다. 준희는 목걸이를 하고 나서기에는 너무 노골적이라 여겨 집에 둔 것인데 그가 서운해하는 것 같지는 않자 왠지 모르게 마음 한켠이 서늘했다.
준희는 정현이 사 온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입 마셨다.
"으음~ 역시 센스 있어."
"고마워."
"노래 들을까?"
"무슨 노래 좋아해?"
"네가 좋아하는 걸로 듣자."
"음.. 그렇다면!"
준희는 즐겨 듣던 한국 밴드가수 노래를 틀었다.
"누구야?"
"웨이브투얼쓰라고 밴드야."
"It's a day for~ you~~"
준희가 노래를 따라 부르자 정현은 평화로움을 느꼈다. 한참을 달려 둘은 할리우드파크에 도착했다. 준희는 차에서 내리며 가방에서 무언가 꺼냈다. 고민하다 가져온 일회용 카메라였다. 그가 사라진다는 생각을 지우고 만약 그냥 우리가 정말 친구라면?이라는 가정만으로 결정한 선택이었다.
"뭐야?"
정현은 준희가 일회용 카메라에 눈을 갖다 대고 이리저리 보자 그녀에게 물었다.
"오늘 찍으려고 가져왔어."
"내 친구 은영이라고. 걔가 챙겨준 건데 오늘 쓰네."
"너도 찍어줄게"
다른 방향으로 이리저리 카메라를 대어보던 준희가 그에게로 방향을 돌리며 답했다. 그리고 바로 셔터를 한번 눌렀다.
"이건 테스트~"
갑자기 찍힌 정현은 잠깐 놀랐지만 준희가 들떠 보이자 마냥 귀여웠다. 준희와 정현은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따라 걸으며 공원을 두리번거렸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량한 하늘에 초록색으로 가득한 공원은 여유를 즐기기에 충분했다. 이내 목적지인 할리우드 사인이 보이고 준희가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너도 가서 서봐, 찍어줄게"
"나?"
뜸을 들이다 정현은 준희가 가리킨 방향으로 가 섰다. 준희는 신중하게 자세를 고쳐 잡더니 그의 사진을 찍었다.
"찍어드릴까요?"
지나가던 한국인 남녀가 다가와 준희에게 말을 걸었다. 연인처럼 보이는 그들은 자신들도 찍어줄 사람이 필요해 비슷한 상황처럼 보인 준희에게 말을 건 것이다.
"어.."
"그래요."
준희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들에게 카메라를 넘겨주고는 정현의 옆에 가 섰다. 상황을 눈치챈 정현은 아무런 말 없이 다가오는 준희를 보며 수줍은 듯 미소 지었다. 정현과 준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팔을 그저 뒤로 보내 맞잡고는 앞만 바라보았다. 정현과 준희 주위로 부는 바람마저 어색하게 느껴졌다.
사진을 찍어주려던 여성은 정현과 준희가 어색해 보이자 연인이 아님을 눈치채고 별다른 말 없이 사진만 찍어 주었다.
"자, 찍을게요!"
"한번 더 찍을게요!"
사진을 찍은 준희와 정현은 그들에게 다가갔다.
"일회용 카메라라 많이 안 찍었었요."
"더 찍어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두 분 찍어드릴까요?"
준희는 그녀의 배려가 느껴졌다. 누가 봐도 어색해 보이는 정현과 굳이 붙으라거나 자세를 바꾸라거나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찍어주려 노력한 것을. 준희는 보답으로 그녀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말을 건넸다. 그녀는 사랑스럽게 남자를 보고 웃으며 팔짱을 낀 채 준희와 정현이 섰던 자리로 갔다. 그녀가 건네준 핸드폰으로 연신 찍어 주었다. 카메라 화면 속까지 그들의 따뜻한 사랑이 느껴졌다.
어느새 해가 넘어가 하늘이 붉어지려 하자 준희와 정현은 다시 차를 타고 최종 목적지 그리피스 천문대로 향했다. 그리피스 천문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조금 걸어 천문대에 도착했다. 천문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주위가 어두운 밤이었다.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따라 걸어 야경 스팟이라는 곳으로 갔다. 장엄한 천문대 내부를 거쳐 외벽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반짝이는 불빛들로 가득 찬 LA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와...."
"와.."
정현과 준희는 동시에 탄성을 내뱉으며 감상에 젖었다. 나란히 벽에 기대어 LA를 바라보다 정현은 날리는 준희의 머릿결에 그녀를 한번 보았다. 그리고 준희 역시 바람에 전해오는 그의 향기가 야경과 어우러지며 감각을 자극시키는 듯 그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마주한 시선에 잠시 떨림이 느껴졌지만 정현은 시선을 돌리며 다시 LA의 야경만 바라보았다. 준희는 시선을 돌리고 벽에서 떨어지며 기지개를 켜 듯 팔을 들었다 내리고는 정현에게 물었다.
"이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