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의 무게
은영은 거울 앞에서 오고 가며 몇 벌을 갈아입었다. 준희의 집에서 바비큐 파티 후, 도영과 따로 만나 밥을 먹은 은영은 그와 꽤 생각이 통한다 느꼈다. 은영이 전 남자친구를 만나며 깨달은 연인의 최우선 가치에 도영은 공감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꾸미고 올 걸. 도영과 대화 후 집에 가는 길에 떠올린 아쉬움이었다. 오늘은 자연스럽게 다음을 기약한 그날이다. 머리는 깔끔하게 올려 묶고 둥그런 이마를 드러냈다. 도영이 집 앞으로 데리러 오기로 해 그를 기다렸다. 은영의 핸드폰이 울렸고 도영이 집 앞에 도착했다는 말을 전했다.
은영은 들뜬 마음으로 도영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나섰다. 도영은 차에서 내려 은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다가오는 은영을 향해 도영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의 훤칠한 키와 바람에 휘날리는 빽빽한 머리숱이 은영의 시야에 들어왔다. 은영은 뛰는 듯 걷는 듯 살짝 속도를 내었다.
"타고 있지!"
"춥잖아"
도영은 '그냥'이라는 답 외에 별말 없이 차에 탔다. 조수석에 탄 은영은 커피를 발견했다. 도영이 은영을 데리러 오며 사온 따뜻한 라떼 두 잔이었다. 도영이 내민 커피에 은영은 함박웃음을 지었고 고맙다며 바로 한 모금 마셨다. 도영의 사소한 배려 하나하나에 은영의 마음이 더욱 설렜다. 도영은 은영과 있을 때 정현과 준희 모두가 있을 때와는 약간 다른 따뜻함이 있었다. 은영에게 그 차이가 자신을 이성으로 좋아하고 있음을 확신케 했다. 은영과 도영의 대화는 빠르지 않았지만 그 공백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서로의 주파수가 요동치지 않는 설렘이 상대를 자꾸 보고 싶게 했다.
도영은 은영을 세번째 만나는 날 고백을 했다. 그날은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의 눈이 흩날렸다. 손과 바닥에 내리는 동시에 사라지는 눈. 도영의 품에는 꽃다발이 안겨 있었다. 도영은 은영이 레스토랑에 도착하기 전 먼저 앉아 기다릴 참이었지만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게 된 은영이 애매하게 뜬 시간에 먼저 가 기다릴 요량으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렇게 둘은 호텔 입구에서 마주했다. 반갑지만 아쉬워하는 도영의 표정과 그의 품에 있는 꽃다발이 인사를 건네기에 주춤하게 했다. '일찍 왔네'라는 도영의 첫인사가 은영은 그저 귀엽기만 했다. 은영은 도영이 꽃다발을 내밀기도 전에 손을 뻗어 받았다. '나 주려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꽃다발을 끌어 안아 행복해하는 은영에 도영은 만족했다. 그들은 예약한 자리로 안내받아 음식이 세팅되기 전, 도영이 꽃다발과 함께 준비했던 귀걸이를 건넸다. 화이트골드로 된 싱글 이어링이었다. 은색이 잘 어울린다며 은으로 된 악세사리를 주로 차던 은영을 위해 세심하게 고른 귀걸이였다.
'좋은 걸로 주고 싶었어' 혹시나 은영이 부담스러워할까 도영은 마음을 전했다. 은영은 만만치 않은 가격의 브랜드임을 알기에 놀라기는 했지만 그의 마음이 느껴져 소중했다. 언제나 연인이 일순위였으면 한다는 것, 가진 것에서 제일 좋은 걸 주고 싶다는 대화를 이미 나누었었다. 마침 깔끔하게 넘겨 묶은 머리에 은영은 귀걸이를 착용해 보였다.
연인이 된 은영과 도영은 준희와 혜선에게 알릴 타이밍을 고민했다. 정현의 부재 속에 자신들의 사랑 이야기가 그를 기리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하게 할까 걱정했다. 하지만 너무 늦지는 않게 밝히는 것이 준희의 마음과 관계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해 더욱 고민이 되었다. 평소와 같았다면 은영은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모두 준희에게 말하곤 했지만 지금은 때와 주제가 맞지 않다 여겼다. 그렇게 얼마 후, 같은 하루를 반복하던 준희가 서점 오픈을 준비하겠다는 얘기를 했고, 은영은 때가 왔음을 짐작했다. 은영에게 준희는 지키고 싶은 인연이었고, 도영은 우연이자 필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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