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결
홍콩야자 화분을 한 켠으로 치워두고 다들 자리에 다시 앉았다. '박승원' 그 이름을 모르는 건 은영 뿐이었다. 은영은 다들 아는 듯 되묻지 않는 모습에 그저 따라 앉았다. 그때 입을 먼저 연 건 도영이었다.
"정현이 아버지?"
"응"
"오픈 얘기했더니 보내주셨네"
"좀 있다가 인사 한번 드려야겠어"
정현이 떠난 뒤 준희와 그의 부모님은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준희가 서점을 재오픈하기까지 과정들 속에 수리 시설이나 관련 업자들을 소개해주기도 하였고, 준희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만큼의 적정 거리를 잘 유지하였다. 아버지까지 돌아가신 후 혼자가 되었던 준희는 그들의 응원이 든든하기도 했다.
"너희 얘기 좀 해봐."
"그동안 내가 정신없어서 못 들었네"
"어떻게 된 거야"
"혜선이 너는 언제부터 알았어?"
준희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은영과 도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
도영과 은영이 서로 한번 바라보다 멋쩍게 웃었다.
준희에게
준희야, 나 정현이야.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때면 내가 더 이상 옆에 없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냥 너를 만난 게 내 인생 최고의 행복이었어. 네가 나를 위해 신경 썼을 모든 마음들에 감사해. 그래서 네가 너무 오래 슬퍼하지 않길 바래. 마음을 주고받은 사람이 사라지는 일을 받아들이기엔 시간이 필요하겠지. 다만 너는 나에게 충분했다는 것은 알아줘. 나에게 해주지 못해 아쉬워할 일은 없다는 말이야.
너한테 남기는 이 펜던트는 네 마음을 주고 싶은 다른 사람이 생긴다면 그때, 네 것이랑 같이 묻어줘. 탈탈 털어내 버리고 새로 시작해. 뭐든지 끝이 깔끔해야 시작에 온 마음을 쏟을 수 있는 것 같아. 내 진심이니까 꼭 부탁해. 우리가 일찍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많이 했는데 이게 우리의 운명이려니 해. 주어질 수 없는 걸 바라면 마음만 아프잖아. 기한이 있는 만남에서 너는 언제나 다음을 생각하지 않고 온전히 달리는 사람 같았어. 그거면 나는 충분했어. 뒷걸음치는 게 나라는 게 위안이 됐는데 이기적이지? 미안. 근데 널 생각해서 한 내 선택이라는 것만 이해해줘.
이제 봄이 오고 네 서점 앞에 꽃이 피면 얼마나 예쁠까. 아무래도 나는 봄까지는 안될 거 같아. 공항에서 처음 본 허둥지둥하던 너와 비행기에서 잠을 청하던 너, 금방 일어났는지 부스스한 모습으로 캘리 카페에 앉아 있던 너, 그리고 우리가 말을 나누기까지 그 순간들이 모두 너무 소중해. 네가 소중한 사람을 잃고 온 곳이라 나는 네가 캘리포니아에 온 게 너무 좋고 감사한 일이라고 하면 안 될 거 같은데.. 또 나마저 비슷한 상처를 주는 거 같아서 조심스러워. 하지만 준희야, 너희 아버지도 마찬가지시겠지만 우리가 없는 네 인생을 여전히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길 바래. 못해준 것 아쉬운 것 떠올리며 후회할 필요없이 우리는 너를 사랑했고 너도 우릴 사랑했다는 걸 알아. 그거면 된 거야. 우리가 만난 게 운명이듯 헤어지는 것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운명인 것 같아. 슬프게도. 그러니까 더 이상 네가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무 보고 싶을 거야 준희야. 사랑해.
#다음주는에필로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