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 순간 수면을 박차고 올라 은빛 물고기가 튀어 오른다. 물 속에서 도움닫기라도 했던 것 마냥 공중에서 흔들흔들 여유롭게 꼬리를 두 번 튕긴다. 비늘에 햇빛이 반사되어 길다란 몸이 빛난다. 시간이 멈춘다. 나도 날숨을 잠시 참고 물 위로 일 미터 정도 비행하는 물고기를 바라본다. 이내 다시 물 속으로 첨벙. 그러다 몇 발자국 못가서 또 다시 튀어 오른다. 연이어 세 번 정도 물고기의 공중 공연이 펼쳐진다.
최근 몇 개월 동안 일주일에 두어 번씩 가는 단골 카페에 어김없이 방문했다. 도심과 떨어져 차를 삼십분 정도 달려야 갈 수 있는 그 주변은 드라이브나 바람을 쐬러 자주 가는 곳이었다.
이미 그 카페가 공사를 하는 동안에도 ‘여기에 카페가 생기는구나.’ 생각하며 몇 번을 지나쳐 갔다. 지난 겨울 그 주변 다른 유명한 카페에 들렀다 지나가며 완성된 카페의 초록색 철제로 세워진 감각적인 외형에 끌렸다. 기존에 다른 카페들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라 더 끌리지 않았을까. 그러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한번 가보자 마음을 먹고 처음 찾았을 때가 올해 봄이었다. 그 이후로 친절한 사장님, 맛있는 커피, 사장님이 만드는 갓 구운 빵과 한적히 즐길 수 있는 경치가 내 발을 자꾸만 카페로 이끌었다. 출근 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었다.
바다 바로 앞에 자리 잡은 카페는 삼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층에 올라 창가 바로 앞에 앉으면 투명한 창문 너머로 바다가 바로 발 아래에서 출렁 거린다. 모래와 바다 생명체들의 잔해들, 흩어진 잔 나뭇가지들을 파도가 계속 밀었다 당겼다 하며 하얀 포말을 만들어 낸다.
커피 위에 크림이 잔뜩 올라가 있는 아인슈페너가 테이블에 도착했다. 딱 보기에도 크림이 탱글탱글 쫀득하게 올려져 있다. 윗입술에 처음 닿았을 때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크림이 올려진 아인슈페너는 맛이 없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내 입술에 하얀 거품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커피의 고소한 향과 달콤한 크림이 내 기분을 돋구어 주니 입에 거품이 묻는지 신경도 쓰지 않고 연신 들이킨다.
커피로 인해 기분도 좋아졌고 푸른 바다와 하늘은 눈앞에 펼쳐져 있다. 감성적인 노래도 이어폰에서 흘러나온다. 행복을 느끼며 책을 펼쳐 든다. 카페에 오면 주로 조용히 책을 읽기도 하고, 들어야 할 강의가 있으면 강의를 듣고, 글을 쓰기도 했다.
그 순간 바다 위로 뭔가가 튀어 오르는 게 보인다. 철썩하는 소리도 들린다. 자세히 바라보니 물고기이다. 물고기 한 마리가 바다 위로 힘차게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 주변에 있던 다른 한 마리도 이에 질 새라 뛴다. 한 번으로는 부족했는지 물고기들이 연달아 몇 번을 뛰어 오른다.
바닷가에 놀러 가면 가끔 사람들이 노는 주변에서 물고기들이 뛰어 올랐다. 그때는 단순히 주변에 사람들이 있으니 놀라서 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러 번 뛰는 물고기들을 보니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물고기들도 물밖 세상이 궁금해 자유를 갈망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단체로 공중곡예라도 갈고 닦는걸까.
물고기들은 손이 없다. 비늘에 기생충이라도 달라붙어 괴롭혀도 손으로 탁 때려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등이 간지러울 때 손톱을 잔뜩 세우고 벅벅 긇어 내려갈 때의 그 시원한 기분을 물고기는 느낄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물고기는 물 밖으로 몸을 흔들며 뛰어 오르는 것을 선택한다. 물을 박차고 오를 때 비늘에서 파도가 부딪치는 마찰과 잠시나마 공중에서 몸에 가해지는 바람이 기생충을 떨어뜨려주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바닷물 속에는 산소가 녹아있다. 용존산소를 이용해 물고기들은 숨을 쉰다. 수온이 낮으면 용존 산소의 양이 많아 물고기들이 많이 살 수 있고 반대로 수온이 높으면 용존 산소의 양은 줄어든다. 적도 지역보다 극지방에 물고기들이 많은 이유도 그러한 이유다. 그런데 환경이 오염되며 지구가 끓어 오르고 있다. 빙하가 녹고 있고 전체적인 바다의 수온도 높아졌다. 같은 지역의 바다라도 수온이 올라가면 산소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아가미를 통해 물을 빨아들이고 산소를 사용하는데 물 속 산소가 너무 부족하다. 숨이 막혔을 것이다. 물고기는 펄쩍 뛰어 오른다. 살기 위해 여러 번 물 위로 뛰어오르는 위험을 감수했을까 싶으니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뉴스에서 지금 우리가 먹는 생선회는 몇 년만 지나도 먹을 수 없을 거라고 한다. 수온이 올라가며 물고기들이 폐사해 사라져 버릴거라고 했다. 그런 기사를 본 후 마주하게 된 물고기의 비행은 내게 너무 슬퍼 보였다.
물고기 비행의 정확한 원인이 놀라서인지, 기생충을 떼어내기 위해서인지, 숨을 쉬기 위한 절박함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것은 내 눈에는 물고기의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물고기도 우리들처럼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