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승천하는 지렁이
비가 우악스럽게도 떨어진다. 걸음을 옮길때마다 튕겨올라와 내 다리를 감아도는 빗물과 우산을 비껴 내 어깨를 적시는 빗방울 때문에 비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는 내 맘도 몸도 모두 축축하게 적셔버린다. 우산을 들고 한참을 걷다 갑자기 마음이 하나의 생각에 모인다. 비가 그친 후 여기저기 보일 지렁이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착잡하다.
문헌에는 디룡에서 시작되었다는데 디룡이, 지룡이를 거쳐 지렁이라는 이름이 된 이유는 분명치 않다. 땅의 용이라는 뜻에 걸맞게 나는 왠지 지룡이라는 이름이 끌린다. 비가 오고 난 후 항상 바닥에서 물에 불어 푸르스름해진 몸으로 나뒹굴거나 하늘이 개이고 햇빛에 말라가는 지렁이를 볼 때마다 이유가 궁금했다. 왜 지렁이들은 비만 오면 자신의 생활기반이고 거처인 땅 속에서 탈출을 하는 걸까. 비가 그치고 왜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가지 않아 햇빛에 타들어 죽어가는걸까.
지렁이는 호흡기관이 없어 피부로 숨을 쉰다. 하지만 비가 오면 땅 속으로 물이 들어찬다. 주변이 모두 물로 가득하니 호흡을 할 수가 없다. 지렁이가 되어 그 순간을 상상해본다. 온 사방이 물로 가득차 숨이 막힐 듯한 공포에 피가 마르는 듯 하다. 호흡을 할 수 없어 두려웠던 나의 기억이 떠오른다.
홀로 이집트에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홍해에서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따고 싶어 후루가다라는 곳에 갔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물속에서 여러 가지 위험이나 긴급사항에 대비에 완수해야 하는 행동들이 있다. 수경을 벗고 호흡기를 뺀다. 보이지않는 상황에서 수경을 다시 쓰고 수경에 물을 뺀다. 호흡기를 다시 물고 산소가 흡입되는지 확인한다.
나는 수경을 벗었다 다시 쓰고 물을 빼보았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물이 빠지지 않아 눈을 뜰 수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머지 수경을 완전히 벗어버렸다. 호흡기를 찾을 수도 없었다. 호흡기를 다시 물지 못했고 숨이 막혀버린 나는 물을 꺽꺽 마셔버렸다. 바닷물을 많이 마신 나머지 옆에 있던 강사가 호흡기를 물려줬음에도 산소가 흡입되지 않았다. 급하게 물밖으로 나와야했다. 9m 물 속에서 수면 위로 올라오던 잠깐의 숨막힘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죽을 때 주마등처럼 과거의 일이 필름처럼 지나간다는 찰나의 경험도 했다.
그런데 땅 속이 다 물로 가득찬 상황의 지렁이라니.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내가 익사하듯 정신이 몽롱하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지렁이는 땅 위로 기어오른다. 살기위해 온 힘을 쥐어짜며 눈이 보이지 않지만 물을 가르며 힘차게 땅 위로 고개를 내밀었을 것이다.
마침내 신선한 공기를 마주했을 때 지렁이는 안심하고 온 몸에 힘이 빠져 그대로 쓰러져버린다. 이미 물을 너무 많이 마셔버린 지렁이들은 땅 위로 나왔지만 손을 쓸 수 없이 그대로 숨을 거둔다. 비가 오면 땅 위에 나뒹구는 지렁이들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지뢰를 피해 가듯 발꿈치를 들고 요리조리 불편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지렁이 상당수는 인간의 발에 밟혀버린다. 소수의 지렁이들만 비라는 재앙에서 살아남는다. 하지만 지렁이들은 알았을까. 앞으로 더 큰 고난이 남았다는 것을 말이다.
눈을 감고 길을 걸어본 적 있는가. 손과 발을 더듬더듬, 넘어지지 않으려 온 몸에 힘이 들어간다. 지렁이는 앞을 보지 못한다. 세상 힘들고 더러운 것 보지 않아서 좋을거라 생각하겠지만 땅 위에 지렁이에게는 치명적이다. 기껏 숨을 쉬기위해 땅 위로 나왔지만 비는 그치고 햇빛이 내리쬔다. 몸이 마르기 전에 얼른 축축한 땅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아 입구를 찾을 수 없다. 길이 바투 있더라도 눈먼 장님일 뿐이다. 거기에다 도시의 도로는 거의 다 아스팔트 아닌가. 딱딱한 아스팔트로 둘러싸인 땅의 입구는 지척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옛날에 지렁이는 눈이 있었고, 가재는 눈이 없었다. 눈이 부러웠던 가재는 지렁이를 부추겨 지렁이의 눈과 자신의 비단 띠를 맞바꾸기로 하였다.
가재와 눈을 바꿔버린 과거의 자신을 지렁이는 얼마나 숱하게 탓하고 탓했을까. 햇빛 아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입구 바로 앞에서 죽어가는 자신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렇게 살기 위해 선택했던 땅 위에서 지렁이는 말라죽게된다. 오염된 흙을 먹고 분변토로 건강한 토양을 만드는 역할만 했을뿐이다. 지렁이는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본인의 책임을 다했다. 당연하게 누려야 할 온전한 삶이라는 권리를 마무리 짓지도 못했다. 그저 삶의 영위를 바랬다.
예상치 못하게 삶의 길 가운데 비를 맞고 서있는 내가 있었다. 십대 때는 치기어리게도 우산이 있어도 일부러 비를 맞았다. 나이가 들어서는 일부러 비를 맞는게 두려웠다. 의도치 않게 내리는 비를 대비할 우산따위 내게 있지 않았다. 준비되지 않았던 결혼과 출산이 내겐 버거웠다.
눈이 없는 지렁이는 나였다. 숨쉬기 위해 지상을 택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만 걷고 또 걸었다. 어둠 속에서는 문이 바로 옆에 있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깨달았다. 길은 내가 밝히면 그만이었다. 내 인생의 조명은 나만이 켤 수 있다는 그 진리를 깨닫는데 몇 년이 걸렸다.
우연히 햇빛 아래 마르지 않고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지렁이를 보았다. 전에는 징그러워 피하기에 급급했는데 이제는 달랐다. 죽지않고 살아있는 지렁이에게는 희망이 가득했다. 나뭇가지를 주워 지렁이를 나뭇가지 위에 걸쳐 그늘진 흙으로 향했다. 지렁이는 더 활기차게 움직였다. 그러다 이내 땅 속으로 쏙 들어갔다.
‘지렁이 칼의 아주 특별한 질문’ 이라는 책에서 ‘칼’은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미물이라도 삶의 이유와 목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꿈 속에서는 ‘칼’도 용이 되어 하늘로 올랐을까. ‘지룡’이가 되어 드넓은 하늘을 날아 다닐 수 있었을까.
마침내 땅 속으로 돌아가 숨쉬고 있는 나는 비가 오면 또 땅 위로 향할 것이다. 그럴 때는 사람들이 나를 존중해 발걸음이라도 조심하길 바란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