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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은방울꽃 04화

등뼈

by 페니킴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에 공사가 한창이다. 원래 있던 상가 건물이 허물어지고 흉물스러운 공간이 된 지 몇 해가 지났다. 아직은 뼈대인 철골만 전체적인 건물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서있다. 커다란 철골이 어릴 적 봤던 로봇 태권 브이의 모습 같다. 검은색으로 칠해져 꼭 커다란 거인 같기도 하다.

위로 향했던 시선을 아래로 돌려본다. 아직 공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주변으로는 정리되지 않은 건축자재들이 굴러 다닌다. 녹이 쓸어 황동색을 띄고 조악하게 구부러진 철골은 날카롭게 솟아있다. 바람을 타고 비릿한 녹 냄새가 나는 듯도 하다. 삐죽 솟은 철 주변은 콘크리트로 대충 발라져 있다. 콘크리트를 바르다 만 건지 알 수 없다. 콘크리트 사이로 약간 비뚤게 꽂혀 위태롭게 지탱하는 철만 보인다. 그 모습은 십여 년 전 비뚤하게 휘어졌던 어머니의 척추와 겹쳐진다.

어머니는 디스크 환자였다. 심각하지 않다고 했지만 걸을 때 뒤에서 보면 몸은 한 쪽으로 기울여져 있었다. 어머니는 그저 몇 년을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방치했다. 내가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하라고 다그쳤지만 듣지 않으셨다. 입원을 하고 허리를 쓰지 못하는 동안 어머니가 하는 한복 일거리가 줄어들까 염려해서였다.

나는 그 즈음 몇 년을 타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패러글라이딩을 타다 추락해 척추를 다쳤다. 다행히 금이 간 정도였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뼈가 굳을 때까지 한 달여를 누워 지냈다. 그러다 겨우 보조기를 차고 막 퇴원을 했을 때였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있었다. 영문을 몰라 가까이 다가가니 신음소리만 가득했다. 왜그러냐고 물으니 허리가 너무 아프다고 하며 말도 제대로 못했다. 단박에 무슨 일이 생겼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도 보조기에 지탱해 움직이느라 허리에 힘이 없는데 끙끙거리며 어머니를 일으켜 세웠다. 택시를 불러 한 척추 병원으로 향했다. 이미 몇 달 전에 한번 가보라고 검색까지 해서 어머니께 알려드린 병원이었다. 가자마자 허둥지둥 접수를 하고 촬영을 하니 의사 선생님이 왜 이지경이 될 때까지 오지 않았냐고 나무라신다. 디스크 때문에 발가락에 힘이 안들어 간다고 하는 어머니께 제발 병원에 좀 가라고 성화를 한 것이 몇 년이었을까. 드디어 터질게 터졌구나 싶었다.

당장 조치를 취해야 했다. 시술로 튀어나온 디스크 부분을 자르고 대신 철심을 박을 수는 있는 상태였다. 다행이었다. 다만 몸 안에 심겨질 나사 모양의 철심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지체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너무 견디기 힘들어 보였다. 바로 입원 수속을 끝냈다.

튀어나오고 구부러져 힘이 없는 철골은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철거하고 다른 튼튼한 철골로 바꿔야 한다. 건물을 위한 기초 즉, 척추 역할을 하게 될 철골 구조물이다. 그래서 저렇게 휘어지고 낡아빠진 철골은 버려졌을까. 단단한 철골만 땅 위를 박차고 올라 건물 전체를 지지해 줄 것이었다.

시술을 하는 동안 초조하게 기다렸다. 말로는 시술이었지만 시간이 제법 걸려 내 마음을 더 긴장되게 만들었다. 회복실에서 만난 어머니는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생명에 지장이 없는 줄 알면서도 왜 마음이 그리도 안좋은지 왜 심장은 쿵쾅거리는지 알 수 없었다. 미묘한 감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입원해 있는동안 어머니를 돌봐줄 사람은 나뿐이었다. 오빠는 부산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나는 마침 부상을 입어 쉬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병원 간이 침대에서 자면서 함께 생활했다.

처음 며칠은 소변줄에 의지해 어머니는 침대에 누워 생활하셨다. 먹는 것을 도와드리고, 치워드리고, 누워있는 어머니 옆에서 필요한 것을 가져다 드렸다. 그러다 소변줄을 떼고 화장실에 가실 수 있게 되자 어머니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다 드렸다. 용변을 보시는 동안 화장실에 같이 있다 뒤처리를 도와 드렸다. 아직은 허리에 힘이 없어 혼자서는 힘들었다. 다 큰 딸이 예순에 접어드는 어머니 용변을 봐드리게 되니 씁쓸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병실에 누워 있는 다른 환자분들은 딸이 착하다는 말을 했다. 칭찬에 나도 모르게 으쓱도 했지만 내 속도 모르는 말이었다. 어머니를 돌봐드려야 하는 책임감과 내 허리도 아직 아픈 상황 사이에 끼어 마음 속에서는 짜증이 치밀었다. 그런 감정은 한번씩 툭툭 사나운 말로 어머니에게 화살처럼 날아갔다.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새어나왔다.

시간이 지나 공사가 어느 정도 진척이 되어 어지러웠던 주변 철골도 정리가 되고 건물의 구조가 제대로 잡혔다. 단단한 철골 위로 약간의 창문이 덧대지고 회반죽으로 벽이 채워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제 서서 곧잘 걸었다. 병원 복도에서 링거가 매달린 철로 만들어진 링거 거치대를 밀어가며 잘도 걸어다니셨다. 시술 전 뒤에서 보았을 때 휘어보였던 척추도 이제는 한가운데 잘 자리잡고 있었다. 똑바로 곧추 선 등뼈 모습이 예뻐보였다. 어머니가 짧은 다리로 바장거리며 걷는 모습이 딸인 내가 보기에도 귀여웠다.

한번씩 어머니의 몸을 수건에 물을 묻혀 닦아드렸다. 그럴때마다 허리에 남아 있는 수술 자국과 철심을 박은 흉터가 눈에 보였다. 어느날은 어머니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목욕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머리도 안감은지 한참이 되어 간지러울 터였다. 몸을 구부릴 수 없으니 내가 씻겨드릴 수 밖에 없었다. 다 벗은 어머니를 씻겨드리고 머리를 감겨드릴 때는 어머니도 어릴 적 나를 이렇게 씻겨주었겠지 하는 생각에 눈 안 가득 눈물이 고였다.

시간이 지나고 골목길에 건물이 완성되었다. 휑했던 공간을 웅장한 모습으로 채우고 있었다. 철골이 제대로 떠받쳐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기초 공사가 잘못되면 부실공사가 되어버리듯이 몸을 바로 세우고 지탱해주는 척추에 문제가 생기니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철심을 박았지만 이제는 수직으로 튼튼하게 자리 잡은 척추로 바지런히도 어머니는 걸어다닌다.

계절마다 어머니를 데리고 꽃을 보러 간다. 가을 코스모스를 보러 간 내 두 눈에 건강히 걷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맺혔다. 그때 뒤를 돌아 나를 보는 어머니에게 환한 웃음을 지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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