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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은방울꽃 06화

금계국 필 적에

by 페니킴

오월에서 유월로 바뀌는 들판은 다채로운 색깔로 가득하다. 알싸한 노랑 금계국 향기가 내 코끝을 자극한다. 보라 갈퀴나물과 진분홍 끈끈이 대나물은 내마음이라는 그릇에 가득찬 여러 가지 채소들이다. 금계국, 갈퀴나물, 끈끈이 대나물이 어우러져 맛있게 비벼진다. 바람이 싣고 온 향기로운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이 맘때쯤엔 숨쉬는 공기마다 손에 잡힐 듯한 장미향이 만연하다. 화려한 꽃과 거부할 수 없는 매혹적인 향기로 이목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내 운전대를 돌려 향한 곳은 야생화로 가득 찬 들판이다.

금계국의 생생한 노란빛이 사방천지를 감싸고 있는 모습은 나도 모르게 와 하는 소리를 지르게 한다. 금계국은 코스모스를 닮았지만 국화과 꽃이다. 토종 야생화들보다 번식력 강한 외래종이 들판을 장악해버렸다. 생명력이 강해 한번 심어놓으면 무한대로 뻗어간다고 한다. 원래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꽃이었다. 어느 순간 온 들판을 차지한 노란 물결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소셜 네트워크의 영향으로 이제는 사람들이 일부러 찾는 지경에 이르렀다.

금계국 근처에 보라색 꽃이 있다. 하나의 대에 여러 개의 보라색 꽃이 무리를 이루어 다롱다롱 매달려 피어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갈퀴나물이다. 예쁜 색깔과는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이름이 재미있다. 금계국과 갈퀴나물의 노랑과 보라가 색상환표의 마주 본 얼굴과 같다. 노랑과 보라의 강렬한 보색은 반대가 아니라 오히려 조화를 이룬다. 태풍이 몰아치듯 무섭게 불어대는 바람에 흔들리는 두 꽃의 색깔이 섞이듯이 보인다. 내 마음에도 색이 스민다.

진한 분홍의 끈끈이 대나물 꽃도 한창이다. 어찌나 진한 분홍인지 눈이 시릴 정도이다. 이렇게 예쁜데 안타깝게도 끈끈이 대나물이라는 이름이라니. 끈끈이 대나물은 이름처럼 식충식물로 곤충을 잡아먹는다. 꽃말은 곤충을 매료시켜 그 생을 마감시키듯 아슬아슬한 젊은 사랑, 청춘의 사랑, 함정이다.

갈퀴나물과 끈끈이 대나물이라는 이름에서 문득 궁금해졌다. 들판을 화려하게 물들이는 이 꽃들의 본체는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두 식물 다 일반적으로 밥상에 올라오는 식재료는 아니지만 당뇨치료제나 여성암과 같은 암의 항암 재료로 쓰이는 모양이다. 눈은 예쁜 색에 즐겁고 몸은 건강해지니 상당히 매력적인 식물들이다. 꽃은 예쁜데다 약재로도 쓰이다니 나물들의 반란 아닌가.

보라, 노랑, 진분홍의 바다가 펼쳐진다. 순간 흰나비가 나에게 날아와 안겨드는데 어느 색이 흰 날개를 물들일까 상상해본다.

눈을 감고 머리칼을 날리는 바람을 느낀다. 바람에 떠밀려 같은 방향으로 휘어진 버드나무를 바라보는 일도 즐겁다. 흰나비가 자꾸 나를 따라와 내 운동화 위에 앉는다. 괜시리 내 곁에서 친구가 되어주는 것 같아 코끝이 시큰하다.

금계국 향기가 바람에 날려 내 코 주위를 맴돈다. 알싸한 맛이 미뢰에 감도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 색깔들 위에 내 마음이 비벼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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