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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은방울꽃 08화

추락

by 페니킴

우레가 내려치듯 쿵하는 소리가 조용한 시골 마을에 온통 울려 퍼진다. 내 몸이 순간 땅에 내팽겨치며 콰광하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풀썩 땅에서 솟아오른다. 충격이 어찌나 큰지 허리는 부러질 듯 아프고 심장은 터질 듯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내 온 얼굴에는 흙이 뒤덮어졌지만 털어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움직일 수도 말도 할 수 없어 눈만 꿈벅이며 떨어진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날은 유독 날이 좋았다. 봄날의 훈훈한 기운이 돋움질치고 비행 갈 생각으로 설레는 아침이었다. 패러글라이딩을 취미로 주말마다 하게 된지 2-3년 쯤 되었을까. 봄은 패러글라이딩 하기 최적의 시기이다.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도 볕살이 좋고 땅바람으로 인해 지면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타고 빙글빙글 더 높이 더 멀리 비행할 수 있다.

얼른 가고싶은 발싸심을 감추고 패러글라이딩 팀과 오전 열 시에 만나 의령 한우산으로 향한다. 남동풍이 불어오는 봄에는 으레 가는 이륙장이다. 산 위로 올라가는 길에는 아기 연두빛 새싹이 가지에서 고개를 내미는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짙은 초록보다 색 들어가기 시작하는 봄의 산을 너무 좋아해 내 맘도 더 신이 난다.

이륙장에 도착하니 적당한 힘을 가지고 훈기를 담은 바람이 앞에서 불어오고 저 멀리 땅에서 열기가 올라오는 것이 눈에 보인다. 땅이 일렁일렁 아지랑이도 일었다. 푸른 하늘에 하얗고 단단히 뭉쳐져 있는 구름을 보니 오늘은 비행하기 좋은 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명 한 명 다른 분들이 이륙하는 것을 보며 나도 서둘러 이륙 준비를 한다.

비행기와 모든 하늘을 나는 기체가 그럿듯이 이륙과 착륙할 때가 안정이 되지 않아 제일 위험하다. 그때만 넘기면 하늘에서는 편안하게 새와 나란히 날 수 있다. 구름 근처에 가고 두 뺨을 스치는 날 것의 바람을 온 몸으로 맞을 수 있다.

이륙은 할 때마다 긴장되었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무사히 두 발을 공중으로 띄운다. 몇 시간을 하늘에서 내려갔다 올라갔다 비행을 즐긴다. 그런데 저 아래 다른 기체가 추락하며 낙하산을 펴고 나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본다. 봄의 두 얼굴이랄까. 땅이 익어 열기가 하늘까지 잘 올라가 비행하기 좋지만 한편으로는 순간순간 돌풍이 많이 불어와 제대로 조종하지 않으면 기체가 균형을 잃어 추락하는 일이 흔하다. 봄날에 늘상 있는 일이라 기류가 좋지 않은 쪽을 피하며 비행을 이어간다. 그러다 점점 안좋아지는 날씨에 하릴없이 착륙할 준비를 한다.

아직 초봄이라 물 대지 않은 논에 착륙하려 적당한 곳을 목표로 잡고 목표 지점 앞에서 8자 비행을 한다. 착륙지점 앞에서 왔다갔다 8자를 그리며 고도가 낮아질 때까지 기다리다 고도가 적당히 낮아지면 착륙을 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낮아진 고도에 착륙을 하려 준비하는 순간 휘청 날개가 균형을 잃고 반이 접힌다. 안정을 시키려 노력했지만 고도가 너무 낮으면 손쓸 방법이 없다. 낙하산도 펴지 못한다. 그대로 살아있는 날개는 앞으로 내달리고 회전이 들어가며 땅으로 쳐박힌다.

다행히 내가 타고 있는 하네스(패러글라이딩에서 사람이 타는 의자같은 것) 에는 에어(air)가 들어가 있다. 사고 시 부상을 조금 막아줄 수 있다. 하네스 안 공기가 순간적으로 팡하고 터지면서 엄청난 굉음이 조용한 시골집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으으.. 미리 사고 대비 교육을 받았지만 다 소용이 없다. 숨을 쉴수가 없다. 어떤 외상을 당했는지 알 수 없을 때는 억지로 움직이면 척추나 다른 곳 상처가 더 벌어진다. 함부로 움직이면 안된다는 말이 생각난다. 이미 정신마저 아득한 상황에서도 떨어진 자세 그대로 가만히 있는다.

저 멀리 희미하게 누군가가 뛰어오는 모습이 속눈으로 보였다. 누구인지 얼굴에 흩뿌려진 흙때문에 알 수가 없다. 급하게 내가 속해있는 패러글라이딩 팀으로 연락을 하는 것 같았고 힘들어하는 내 입에 물을 넣어 주려 한다. 입안 가득한 흙으로 마실 수 없어 뱉어낸다.

곧 앰뷸런스 소리가 들렸다. 주변이 시끄러워지고 들것에 내몸이 옮겨져 차안으로 옮겨지는 것을 느낀다. 그제서야 숨이 조금 쉬어진다. 어느 병원으로 가는지도 알수 없이 그냥 그렇게 앰뷸런스에 실려가는데 살만한지 갑자기 ‘나 앰뷸런스 처음 타보네’ 하는 생각이 드는건 뭐일까.

도착한 곳은 파티마병원이다. 가족이 올 때까지 검사를 하고 MRI를 찍고 누워 생각 정리를 한다. 일단은 산 것 같다. ‘나 살아있네’ 싶었다. 헐레벌떡 응급실로 뛰어들어온 엄마는 내 상태를 살피고 대뜸 “너 이래도 패러글라이딩 할래?” 물으신다.

미리 예상했던 질문인 듯 나는 바로“응!!”하고 대답했다. 내 어기찬 대답에 엄마는 할말을 잃으셨다. 내 생각에 오늘의 사고는 차를 타고 갈 때와 마찬가지였다. 운이 없었고 나의 판단이 잘못되어 일어난 사고였다. 내가 대처만 잘했더라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척추에 금이 갔다고 의사 선생님이 얘기하셨다. 다행히 사고 직후 움직이지 않아 금이 벌어지지 않았고 그대로 뼈를 굳히기만 하면 된다.

한 달을 가만히 누워 병원 신세를 지고 또 육 개월을 여름 땡볕에도 딱딱한 보조기를 온몸에 휘감고 다녀야 했다. 그런데 보조기를 풀었던 그날 나는 또 비행을 하러갔다.

봄날이면 그날의 그 장면이 머릿 속을 스쳐간다. 땅으로 팽개쳐질때의 그 장면과 그날 내 코 끝에 와닿았던 바람의 느낌이 상기된다. 흙이 튀어 사방으로 뿌려지는 그 모습들이 눈 앞에 아련하다.

나는 생각한다. 그 때의 용기와 다쳤어도 굴하지 않고 하고 싶은걸 놓지 않았던 열정들 말이다. 그 태도와 마음가짐이 나의 시절에 봄날이었다.

그런 것들이 어처구니없이 보이고 객기로 느껴질 수도 있다. 지금은 그런 사고를 당한다면 좋아하는 일이라도 당장 그만둘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 더 그날이 그립다. 그런 열정을 마음 가득 채우고 무엇이든 도전해 나가는 나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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