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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은방울꽃 10화

달팽이 일기

아프리카왕달팽이 이야기

by 페니킴

2024년 사월

문실문실 자라난 무성한 푸른 잎이 나무와 산을 뒤덮는 계절 사월이다. 하늘은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청명하게 빛난다. 나는 아프리카 왕달팽이이다. 갈색 등껍질에 검은색 줄무늬가 매끈하게 빛난다. 깜짝 놀라면 쏙 들어갔다가 구겨진 스펀지가 펴지듯 천천히 나오는 두 눈이 내 매력이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한 곤충박물관에서 친구들과 함께 살고 있다. 누구나 삶의 근원을 궁금해한다. 의식을 자각할 때부터 나는 이곳에 존재했다. 어떻게 왔는지 답은 못 찾았지만 눈을 떠보니 살아 움직이며 이 자리에 있었다.

어느 주말 오후, 빽빽이 들어찬 상추 숲에서 풀냄새 맡으며 친구들과 숨바꼭질 중이었다. 갑자기 왁자지껄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호기심 가득 맺힌 두 눈이 나를 응시했다.

그러다 번쩍 내 몸이 들어 올려졌다. 누군가가 뼈마디 하나 없는 흐물흐물한 몸을 손바닥 위로 올려 요리조리 둘러봤다. 달팽이 모양 집에 코코피드(코코넛을 갈아 흙처럼 만든 것, 곤충이나 달팽이를 기를 때 사용)를 잔뜩 깔고 나를 그 위에 놓았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직감했다. 아, 친구들과 이별이구나. 슬프지만 눈물을 흘릴 수 없어서 더 아팠다.

공중에서 그네를 타듯 흔들거린다. 한순간 움직임이 멈췄지만 이내 덜컹덜컹 몸이 튀어 오른다. 진득한 액을 잔뜩 뿜어 온 몸으로 벽을 꽉 잡는다. 내 옆에 인간이 동그란 바퀴를 손으로 돌렸다 멈췄다 한다. 한참을 가다 손을 멈춘 인간은 내 집을 들고 뚜벅뚜벅 걷더니 끼익 철제문을 연다.

낯설고 무서워 나는 코코피트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부스럭부스럭 소리와 신선한 냄새에 살짝 고개를 드니 애호박이 얇게 썰려 집안에 놓여있다. 급하게 냉장고를 열어 준비한 내 식사였다. 치익치익 분무기에서 비가 떨어졌다. 건조했던 몸이 쪼그라들었다 이제야 펴지는 듯했다.

주인이 생겼다. 나는 자웅동체라 모르지만 인간들은 ‘여자’라고 부르는 것 같다.


2024년 유월

내가 사는 곳은 제법 높다. 그래서 그런지 낮에는 막히는 것 없이 햇발이 좋다. 난 야행성이라 밝은 빛이 반갑지 않다. 아니 괜스레 잠이 오는 듯하다. 낮에는 눈이 너무 부셔서 흙 안으로 숨어버린다.

양상추를 먹고 초록색 똥을 집안 가득 묻혀놓았다. 인간의 속내는 까무라쳐도 알 수 없는데 내 똥을 보면 먹은 음식을 알 수 있다. 나만큼 곧이곧대로 투명한 존재가 있을까. 주인은 더럽지도 않은지 손으로 똥을 치웠다.

나는 주는 대로 먹고 쑥쑥 자랐다. 주인의 마음성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싱싱한 양상추를 듬뿍 주었으니 말이다. 그러면 가득 먹고 꽃기운 팔팔 끓어올라 고무 같은 몸을 늘여 온 집을 기어 다녔다.

주인이 집 벽에 잘 붙어있던 나를 들어 올리려했다. 나는 온 몸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손아귀 힘에 결국 떨어져 나갔다. 힘싸움에서 진것만 같아 왠지 분했다. 나도 모르게 ‘찌익’하고 짜증의 소리를 내며 달팽이 껍질 안으로 몸을 잔뜩 웅크렸다. 주인이 웃으며 “너 짜증내니?” 라고 하는 바람에 부끄러워졌다.


2024년 팔월

날이 가면 갈수록 나는 눈에 띄게 커졌다. 손가락 두 마디였던 내 등껍질은 어느새 주인의 손바닥을 한가득 채웠다. 주인은 손위에 나를 올려놓고 감탄했다. “벌써 이만큼이나 컸구나.”

주인은 한 번씩 나를 가지고 농담을 했다. “프랑스에서는 에스카르고라는 달팽이 요리가 있데. 구워먹을까?” 나는 등골이 오싹했다. 그런 섬뜩한 농담을 왜하는지 모르겠지만 연신 히죽거렸다.

주인은 한 번씩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불멍, 물멍이 유행이라더니 달팽이멍을 하는걸까.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부지런히 집안을 빙글빙글 돈다. 유연하게 움직이는 내 몸은 너울이 아닌 잔잔한 파문을 만든다. 몸을 쭉 펴고 둥근 천장 위로 기어오를 때는 피가 거꾸로 솟지만 뒤집힌 세상을 보는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이 누워서 하늘을 바라본다면 조금이나마 비슷한 기분이려나. 나는 잘 모르겠다.

주인은 나에게 말한다. “나도 너처럼 아무 생각 없이 천천히 움직이고 나만의 속도로 가고 싶어. 나 혼자 있다면 남과 비교하지 않고 패배의식 따위는 느껴지지 않을텐데.” 그럴 때마다 그럼 그렇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다. 왜 안되냐고.

2024년 구월

칼슘으로 이루어진 내 껍질에 어느 날 금이 갔다. 채소만 야금야금 먹었더니 몸 크기가 커지면서 껍질에는 영양소가 부족했나보다. 주인은 내 껍질을 바라보며 미안한 감정이 들었는지 급히 달걀껍질을 곱게 갈아 집에 뿌려주었다. 나는 온 입에 가루를 흠뻑 묻히고 허겁지겁 먹었다. 그런 나를 주인은 뭐가 귀여운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굳이 내 몸을 들어 올려 오물거리는 입을 동영상으로 찍기까지 했다. 너무 무례해 울그락 불그락 화가 났다. 다행히 금은 곧 사라졌다.

가끔은 주인에게 나는 장난감이 아니라고 외치고 싶다. 게눈 감추듯 쏙 들어가는 내 두 눈과 촉수가 재미있나보다. 눈도 못 뜨게 찔러대는 통에 두 눈에 눈물이 맺힌다. 그럴 때는 계속 다시 나오며 반항을 해본다. 주인은 “이제 겁도 안 먹네.” 하며 웃는다.

우리 주인은 참 바쁘다. 시골도 아닌데 집에 닭이 왜있는지 모르겠지만 아침마다 밥 달라고 울어댄다. 시끄러워 나도 덩달아 몸을 움직여 본다. 주인은 일어나자마자 닭과 내 밥을 챙긴다. 본인은 밥도 먹지 않으면서 말이다. 커피라는 것이 밥일까.

무엇을 그리하는지 아침에 나가면 집에 들어올 생각이 없다. 운동을 하고 글도 쓰고 이것저것 공부도 한다는데 내가 어찌 알겠나. 집에 늦은 밤 들어와서는 깜깜한데 갑자기 불을 켠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 화들짝 놀란다.

집에 와서도 엉덩이 한번 붙이지 않고 움직이는 일이 태반이다. 왜그리 쉼없이 움직이냐고 왜 스스로를 혹사시키느냐고 묻고 싶다. 주인은 그러는게 좋은 것 같다. 바쁘게 움직여야 살아있는 것 같다고 가만히 있으면 도태된다고 생각하는걸까. 가끔은 안쓰럽기도 하다.

주인이 여행을 간듯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여느 때처럼 집안을 기어 다녔는데 덜컹 집이 반으로 갈라져 버렸다. 환호성을 지르며 신나게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커다란 세상이 열려 당혹스러웠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조금만 기어가보자하고 기어가니 ‘먼지 먹는 식물’이라고 적힌 식물을 만났다. 신기한 식물은 흙속에 뿌리를 묻지 않고 나무 그루터기 같은 판에 뿌리채로 턱하니 놓여있었다. 나는 배가 고파 허겁지겁 반을 먹어버렸다. 그리고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이튿날 주인이 들어와 ‘악’ 소리를 지른다. “뚜껑이 제대로 안 닫혔었나 보네. 이걸 먹으면 어째.” 하며 나를 번쩍 집어 들어 올렸지만 잠자다 날벼락을 맞은 나는 비몽사몽이었다. 분명 많이 기어간 것 같았는데 위에서 보니 집이 바로 옆에 있었다. 주인은 뚜껑을 단단히 덮었다. 나에게는 맛있는 식물일 뿐인데 주인은 왜 나를 나무라지.

2024년 구월 중순 [주인에게 하는 말]

나는 귀가 없다. 주인은 내가 부럽단다. 세상 듣기 싫은 말 안 들어도 되고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내 생각대로 살수 있다고. 나는 주인이 부럽다. 잠깐 맛본 자유가 독이 되었나보다. 날개달린 달팽이를 상상해 보았다. 마음껏 날아가고 싶었다.

주인은 넓은 세상 마음껏 걸을 수 있다. 난 이 작은 집이 내 세상 전부이다. 바깥세상이 눈으로 보이지만 투명한 뚜껑에 막혀 나아갈 수도 없다. 그녀는 심지어 진짜로 날아보았다. 비행기 타고 패러글라이딩 타고 바람을 피부에 느끼며 마음껏 날았다.

귀가 없어서 부럽다고? 나는 요즘 주인이 좋아하는‘Anson Seabra’, ‘Ed Sheeran' 의 음악을 듣지 못한다. 빗소리 음악처럼 들린다면 마음은 맑음이라는데 나는 빗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인간은 사실은 나약하고 사악한 존재라 늘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며 자기안심을 찾는다. ‘그래도 나는 쟤보다는 나아.’라고 하면서 말이다. 주인도 누군가의 비교대상일 것이다. 그녀를 보며 스스로를 위안하고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 어떠한가.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건 좋은 일이다.

주인이 누군가와의 비교가 필요하다면 나를 떠올리길 바란다. 나는 이 좁은 집에 혼자 있지만 그녀는 혼자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꿈꿀 수 있다. 언젠가 다가올 영화 같은 사랑을 꿈꾸고,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도 있다. 그게 살아있는 것이고 또 인생이지 않을까.

현실에 안주하며 머물러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생각만 바꾸면 충분히 만족하며 행복할 수 있다. 생각과 마음 안에 모든 것이 있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제야 제법 쌀쌀한 가을 내음이 난다. 주인과 함께 처음 맞이하는 가을. 나와 주인의 근심이 가을바람 타고 멀리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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