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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Oct 26. 2024

소설 <자생화> 17

그 시각, 무정은 아침에 마주한 도현의 반응을 곱씹었다. 무정의 목적은 도현이 불편함을 느껴 다은과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런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던 상황이 너무도 분했다. 무정은 다은의 퇴근 시간이 한 시간가량 지나자, 도현이 집에 있는지 궁금해져 밖으로 나와 옥탑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이미 아셨을 수도 있지만, 무정이는 제 딸이 아니에요. 애초에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였죠. 저는 그때 너무 어렸어요. 그 남자가 죽은 이후로는 경찰에 신고도 못하니까, 그냥 제가 출생신고를 해버렸어요. 그러고 나니까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무렇게나 키웠어요. 살려면 살겠지, 하고요. 우리 부모님의 피 같은 보험금으로 마련한 서점에서 번 돈을… 그 아이에게 쓰고 싶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이름도 무정이에요. 나는 그 아이에게 정이 없다고… 이기적이지만, 만약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랐다면, 제가 좀 나았을까요? ”


무정은 이야기를 들으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자신의 상황을 빠르게 판단했다. 무정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고작 14살의 중학생이고, 가진 것도 없으며, 다은의 옆에 있어야 지금의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무정은 자신이 해야 할 행동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도현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어 다은이 자신을 떠나지 않게 해야겠다는 다짐이 밀려들었다. 무정은 ‘정상적인 아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그저 다은과 가까워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해지면서 더욱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다음 날, 서점의 휴일을 맞아 다은과 도현은 함께 옥탑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두 사람은 도현이 여행할 때 들고 다니던 오래된 버너 위에 불판을 올리고 고기를 구웠다.


“다은 씨, 이렇게 잘 먹는 분인 줄은 몰랐어요.”


“저 원래 잘 먹어요. 도현 씨가 못 먹을 때만 본 거예요.”


“짠, 할까요?”


두 사람은 웃으며 맥주잔을 가볍게 부딪히고,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다. 그렇게 평온한 저녁을 보내고 있을 때, 무정은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무정이 도착한 곳은 동네의 한적한 골목길이었다. 이 길은 고양이가 많이 다니며 사람들이 사료나 간식을 두고 가던 곳으로, 다은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다. 무정은 챙겨간 사료캔을 따서 어느 고양이 앞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같이 가자, 엄마한테.”


무정은 고양이를 향해 중얼거리며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다은 씨, 아니지. 사장님? 잘 자고, 내일 서점에서 봬요. 오늘도 정말 즐거웠어요.”


도현이 장난스레 다정한 인사를 건네자, 다은은 웃으며 화답했다.


“그래요, 도현 씨. 내일은 일에 좀 집중해 주세요. 알겠죠?”


두 사람은 장난을 주고받으며 아쉬운 인사를 나누었다. 다은은 행복한 감정을 애써 감추며 집으로 돌아가 방 문을 열었다. 그러자 책상 위에 놓인 선물 상자가 그녀를 반겼다. 의문스러운 마음으로 상자를 천천히 열어보니, 그 안에는 아기 고양이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그녀가 평소 유독 애정을 가지던 그 길고양이였다. 다은의 맥박이 요동치고, 시선이 흔들렸다. 그녀는 소리를 지르며 상자의 뚜껑을 바닥에 내던지고, 분노에 휩싸여 무정의 방을 열었다. 무정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은은 그 모습에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 드디어 미쳤니?”


다은이 무거운 목소리로 묻자, 무정은 차분하고 조용하게 대답했다.


“엄마,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왜? 무슨 일? 저번에 내 차에 시체 갖다 둔 것도 너지..? 제발, 제발 나 좀 가만히 놔줘. 내가 다 미안하니까 제발 그만하라고!”


새어 나오는 울음을 간신히 삼키며 다은의 목소리는 미친 듯이 떨렸다.


“고양이는 선물이에요, 엄마. 엄마가 좋아하는 걸 선물해드리고 싶었어요.”


무정의 무표정한 답변에 다은의 분노와 공포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그녀는 곧장 집을 나와, 계단에 주저앉아 울었다. 다은의 울음소리가 고요한 동네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들은 도현은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뛰어나와 다은을 달래주었다. 조금 진정된 다은을 집으로 데려온 도현은 따뜻한 차를 내어주었다. 한참을 말없이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도현이 먼저 말을 꺼냈다.


“다은 씨, 저 믿죠?”


다은은 차를 두 손으로 꼭 쥔 채 눈물만 글썽일 뿐이었다.


“뭐든 도울 테니까… 천천히 말해봐요.”


도현은 말이 없는 그녀를 조심히 안아주고 등을 토닥였다. 그러자 다은은 있었던 일을 주저하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당장 집에 갈 수 없었던 그녀는 도현의 집에서 자기로 했다. 도현은 다은을 침대에 눕히고, 자신은 바닥에 누워 새우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도현은 출근 시간이 한참 남은 시각에 잠든 다은에게 이불을 꼭 덮어준 뒤, 무정의 등교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그러자 무정이 계단 아래에 서서 옥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현이 모습을 드러내자, 다은은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와 도현을 가까이에서 마주 보며 물었다.


“우리 엄마, 여기 있죠?”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엄마 여기에 있잖아. 아니야?”


“엄마는 왜 찾는데? 뭐가 궁금해서?”


도현은 어떠한 내색도 없이 차분하게 무정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해주었다. 그러자 그런 태도에 무정은 화가 났는지, 도현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뭐가 궁금하든, 아저씨가 무슨 상관인데?”


도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짧은 한숨을 쉬고는 무정의 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내가 살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알아왔거든. 근데 너 같은 사람은 없었을까? 나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 사람 한 명 죽어야 끝낼 거니?”


무정의 입술이 바르르 떨려오며,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온 힘을 다해 도현을 계단 아래로 밀었다.


그 시각, 다은이 눈을 뜨자 도현이 없었다. 밤새 잠을 설쳐 잘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깜빡이며 잠을 깨고 있었는데, 밖에서 무정과 도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은은 불안한 예감에 휩싸여 문을 박차고 나갔고, 동시에 무정이 도현을 밀쳤다.


다은은 황급히 도현을 향해 계단을 뛰어내려 갔다. 도현은 정신을 잃고 쓰러져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다은이 신고를 위해 다급히 핸드폰을 찾는 사이, 무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게, 내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고 했잖아,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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