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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Oct 25. 2024

소설 <자생화>15

무정은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가방을 내던지듯 내려놓고는, 작은 스크류드라이버를 손에 쥔 채 곧장 옥탑으로 향했다. 주위를 잠시 둘러본 그녀는 도현의 집 문 앞으로 다가섰다. 스크류바의 길고 가는 날 끝이 반짝였다. 무정은 망설임 없이 잠금장치를 풀기 시작했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무정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물건들을 아무렇게나 살펴보던 무정의 눈길이 책상 위의 책에 멈췄다. 다은이 고마운 마음을 담아 월광책방에 함께 간 날 도현에게 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무정은 책을 집어 들고 표지를 넘겼다.


*

도움이 되어줘서 감사해요.

-다은

*


첫 장에 깔끔한 필체로 적힌 다은의 메시지를 본 순간, 무정의 콧노래가 멈췄다.


“귀찮네.”


무정은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책을 힘껏 바닥에 던져 발로 밟기 시작했다. 페이지가 갈라지고, 표지가 찢어지며 다은의 메시지도 가루처럼 흩어졌다.


한편, 도현은 퇴근 시간에 맞춰 서점 문을 열고 나왔다. 하루 종일 쌓인 피로가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았지만, 마음속의 작은 기대감이 그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요즘 들어 다은과의 관계가 점차 깊어지면서 퇴근 후의 일상이 설렘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그는 거리를 걸으며, 다은의 웃음소리와 대화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며 집 앞에 다다른 그는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널브러진 책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그 책은 다은이 소중하게 건네주었던 것이었다. 찢어진 표지와 구겨진 페이지들을 떨리는 손으로 살펴보다가 작은 열쇠고리를 발견했다. 그것은 무정이 평소 자주 차고 다니던 물건이었는데, 무정이 흥분해 책을 발로 밟을 때 떨어진 것으로 보였다.


‘무정이…’


도현은 무정을 떠올렸다. 무정이 어떻게 이 집에 들어왔는지에 대한 의문이 그의 마음을 스쳤다.


‘도대체, 왜?’


그는 무정이라고 단정 짓지 않으려 애썼지만, 방 안에 다른 물건은 모두 제자리에 있었고, 강도나 도둑의 짓으로 보기에는 어색했다. 의심이 더욱 커졌다. 도현은 집안을 정리한 후 책상에 앉아, 처음 무정과 마주했을 때 느꼈던 그 이질적인 눈빛과 다은과 무정의 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이 의심의 진위를 확인하고 싶었다.


다음 날 아침, 도현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 준비를 마치고 옥탑방 앞 평상에 앉아 무정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무정이 등교를 위해 집에서 나오는 순간, 도현은 계단을 내려가며 무정을 불러 세웠다.


“무정아!”


무정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도현을 쏘아봤다.


“이거 놓고 갔던데?”


도현이 열쇠고리를 내밀며 질문했다. 그러자 무정이 잠시 생각하더니 입가에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아, 그러네요. 감사해요. 챙겨주셔서.”


“혹시나 싶었는데… 너 맞았구나? 그런데 왜 그랬니? 남의 집을 그렇게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되지.”


“… 재밌잖아요.”


“재미?”


“네. 그냥 궁금했어요. 아저씨는 어떤 사람인지.”


“그렇구나. 다음부터는 궁금한 게 있으면 나한테 직접 물어봐줄래? 한 번 더 그러면 아저씨도 참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안 참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도현과 무정의 팽팽한 대립이 계속되던 중, 창밖으로 대화 소리를 들은 다은이 문 밖으로 나왔다.


“왜 그래, 무슨 일이에요?”


“아, 다은 씨. 아무것도 아니에요.”


도현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무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 밖으로 나섰다. 두 사람에게 느껴지는 이상한 기류에 다은은 재차 물었다.


“뭐예요?”


“무정이가 뭘 좀 떨어뜨려서 제가 주워줬어요. 아무 일도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도현은 다은에게 이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혹여나 이 일로 인해 그녀가 불편해지는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


“출근할까요?”


다은은 어쩐지 꺼림칙했지만 도현의 말을 믿기로 했다. 그녀는 무정과 도현 사이의 묘한 긴장감을 느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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