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무정과 도현이 다툰 후, 건너편에서 빨래를 널던 총각이 경찰에 신고해 주었고, 덕분에 경찰과 구급차가 빠르게 도착했다. 무정이 도현을 밀치는 장면을 정확히 목격한 총각 덕분에 사건은 신속히 처리됐지만, 만 14세가 되지 않은 촉법소년인 무정은 법적 처벌을 받지 않고 심리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병원에 있는 무정은 혼란과 불안에 사로잡혀 반항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제어하지 못했다.
다은은 그런 무정의 상태를 전해 듣고, 여전히 무정을 원망하면서도 모호한 죄책감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상황이 정리된 후, 다은은 고양이가 담긴 작은 상자를 들고 언덕으로 향했다. 손으로 땅을 파내고, 고양이를 묻으면서 속삭였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고양이를 묻고 난 후, 다은은 도현을 떠올렸다. 그녀는 자신으로 인해 또다시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 있다는 자책감에 휩싸였다. 마침내 다은은 무언가 결심한 듯 손을 털고 눈물을 닦은 후 도현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 앞에 도착한 그녀는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하며 들어설 용기를 냈다.
문을 열자, 도현이 웃으며 그녀를 반겼다. 그는 다행히 가벼운 타박상과 골절만 입은 상태로 생명에 지장이 없었다.
“다은 씨, 왜 이제 왔어요? 연락도 안 돼서 걱정했잖아.”
도현이 분위기를 밝히려는 듯, 다은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다은은 잠시 머뭇거리다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도현 씨… 당신이 정신을 잃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어요.”
“아니야. 다은 씨. 봐요, 나 정말 멀쩡해. 그때는”
다은은 도현의 말을 막으며 다급히 말했다.
“그때도, 지금도… 난 여전히 무서워요. 무정이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 내가 도현 씨와 함께 있다면, 결국 서로 상처만 받을 거예요.”
“그날은 단지 사고였어. 나 정말 괜찮아. 우리는 아무 문제없어. 제발, 제발 그런 말 하지 마.”
도현이 강하게 부인하며 다은의 손을 잡았다.
“내 욕심이었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 욕심 내려놓을게요.”
“다은 씨, 제발 그러지 마. 응?”
“미안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단호한 다은의 눈에서 애처로운 눈물이 흘렀다. 도현은 슬픈 표정으로 다은을 바라보며, 말없이 그녀의 눈물에 젖었다.
“이제 가볼게요. 고마웠어요.”
병실을 나서는 다은의 마음은 공허했다. 도현이 붙잡아도, 그녀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뿐이었다. 그 후 유온서점은 임시휴업에 들어갔고, 다은은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시간을 가졌다.
3개월의 임시휴업이 끝난 후, 서점은 매니저 승우에게 맡기며 그녀는 총 8개월이라는 시간을 홀로 보냈다. 계절은 가을에서 겨울을 지나, 꽃이 만개하는 5월이 되었다. 다은은 이 시간 동안 아침마다 화분에 물을 주는 습관이 생겼다. 그 화분은 도현이 준 것이었다.
어느 날 아침, 화분에 물을 준 다은은 책상에 앉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
무정에게,
무정아, 나야. 병원에서 치료는 잘 받고 있지? 내가 널 처음 봤을 때, 맑고 뽀얀 얼굴이 눈에 아른거렸어. 너희 엄마가 지금까지 네 곁에 있었다면 넌 아마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었을 거야. 무엇이든지 너를 위해 다 해주셨을 테니까. 네가 그걸 잊지 않았으면 해.
그리고 미안했어. 그동안 네게 했던 모진 말들, 어쩌면 나 자신에게 한 말이었는지도 모르겠어. 이제 독립하고 싶다는 말을 전해 들었어. 앞으로 네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는 상담 선생님을 통해 너를 도와줄게. 더 이상 아프지 말고, 잘 살아. 안녕.
엄마가
*
다은은 한 손에는 편지 봉투를, 한 손에는 화분을 들고 어디론가 향했다. 도착한 곳은 월광책방이었다. 책방 앞에 있는 우편함에 편지를 넣고, 곧이어 익숙한 듯 책방에 들어섰다. 책방 구석에 짐을 두고, 사다리에 올라가 조용히 책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노인은 그런 다은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왜 자꾸 자기 서점 놔두고 여기 와서 청소하는 건가, 다은 양?”
“아이, 깨끗하면 좋잖아요. 이러고 나면 제일 기뻐하시면서…”
“빨리 내려오게. 다은 양한테 할 말이 있어.”
“출근하라거나, 연애 좀 하라는 말씀이라면 안 들을래요.”
“그런 거 아니니, 빨리 내려와서 바람이나 쐬자고.”
노인과 다은이 투닥거리는 사이, ‘딸랑-’ 익숙한 문종소리가 울렸다. 다은은 문쪽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시간이 멈춘 듯했다. 문 앞에는 도현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다은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서점 구석의 화분에는 작은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 꽃의 이름은 자생화, 은방울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