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방에 내가 없다 5화
297만 원이었다.
나의 첫 월급.
아르바이트를 해 본 적은 있었지만 직업을 갖고 받게 된 돈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번 돈 중에 가장 큰돈.
옛날 그 어느 드라마에서처럼 봉투 두둑하게 현금으로 받았다면 기분이 더 째졌겠지만, 첫 월급은 통장의 잉크자국으로 나를 만나러 왔다.
생활비와 부모님 용돈을 제외하고 나니 남은 돈은 100만 원도 안 되었다.
나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연속 당직으로 초췌하고 당장이라도 잠들 수 있을 만큼 피곤했지만 오늘이 아니면 안 되었다. 첫 월급의 기쁨이 사그라들기 전에 물성으로 남기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다들 화사한 봄인데 코트를 입은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나만 칙칙한 겨울인 게 마치 다른 세계로 공간이동을 한 것 같은 생경함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문을 열자 퀴퀴하면서도 뽀송뽀송한 백화점의 향기가 첫 월급을 떠올리게 했고, 명품매장으로 들어가는 나의 걸음걸이는 누구보다 당당해졌다.
그동안 몰래 모아둔 비상금까지 모아서 가방 하나를 샀다.
한참을 기다려 받은 내 몸집만 한 진한 오렌지색 쇼핑백을 들고 다시 버스를 탔다.
퇴근길 만원 버스에 커다란 쇼핑백은 어울리지 않았다. 좁은 공간이 불편해서, 혹은 명품 쇼핑이 부러워서 나를 쳐다보는 걸까. 명품가방의 포장은 왜 늘 과할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엄마들의 직업은 ‘주부’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하던 많은 친구들이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전업맘‘이 되었다. 여전히 부부 중 누군가 일을 그만둬야 할 상황이 생기면 어김없이 그건 여자 쪽이었다.
내가 번 돈으로 산 명품가방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나의 성취의 증거물이자 위로와 응원이었다.
나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안정감.
인정받고 있다는 자신감.
내 수고에 대해 대가를 받고 있다는 떳떳함.
스스로에게 보상할 줄 안다는 뿌듯함.
이 모든 것을 담아야 하기에 명품가방의 쇼핑백은 그렇게 컸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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