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10월 두 번째 토요일
10월 두 번째 토요일은 조금 달랐던 토요일이었다.
유난히 길었던 추석 연휴. 남편의 모발이식과 연휴에도 어김없는 출근 때문에 우리 부부는 이번 명절에도 친정에 가보질 못했다.
편하고도 불편한 곳.
나의 뿌리와 근원이면서도 닮고 싶지 않은 그림자가 있는 곳.
따뜻한 추억과 외면하고 싶은 상처가 공존하는 곳.
익숙하고 친근하면서도 꺼려지고 멀리하고 싶은 곳.
나에게 친정은 그런 곳이었다.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에 나는 학교 근처에 원룸을 얻어 혼자 살게 되었다. 나는 그리 살가운 딸은 아니었고, 부모님은 훌륭한 분들이셨지만 애정표현이 쉬운 분들은 아니셨다. 우리는 애틋한 부모자식사이는 못되었기에 내가 따로 나와 살면서부터는 서로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거리의 완급조절을 하고 살았다. 그러다 내가 레지던트 수련을 받는 4년 간 친정엄마가 한 집에 같이 살며 육아와 살림을 도와주시면서 엄마와 나, 장모와 사위, 남편과 아내, 이 모든 관계에 틈이 생겨버렸다.
떨어져 산 기간이 길었기에 서로의 생활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아이를 키우는 데에도 차이가 있었다. 큰사위가 최고인 줄 알았던 장모님은 막상 같이 살아보니 술과 친구를 좋아하는 철딱서니 사위의 모습을 보고 말았다. 처가살이를 하게 된 남편은 더 이상 집이 편하지 않았고 일한다는 핑계로 소홀해진 아내가 미웠다. 이 모든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나는 의식적으로 친정을 더 멀리하게 되었다. 고마운 마음이 컸지만 그보다 야속한 마음이 더 강했다.
그래서였을까. 할로를 학원에 직접 데려다주고 싶어서 아침 일찍 온다는 엄마의 연락이 반갑지 않았다.
냉장고에 왜 이리 아무것도 없냐, 빨래를 왜 이리 쌓아놨냐 잔소리를 듣는 게 싫어서,
못 본 사이 더 늙은 부모님의 얼굴을 바로 쳐다보지 못할 것 같아서,
옛날부터 대답조차 잘 안 하시는 아빠와 무슨 얘기를 꺼내야 할지 막막함이 불편해서,
나만 보면 들어가 쉬라고만 하는 엄마가 고맙고도 미워서.
나는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
엄마의 마음을 알 리 없는 할로는 초인종 소리가 들리자마자 맨발로 뛰어나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반겼다. 폴짝폴짝 뛰는 아이를 보니 괜히 미안했다.
학원으로 가는 길, 할아버지가 손을 잡으려고 하자 할로는 장난스럽게 손을 뿌리치고 저만치 앞으로 뛰어가다가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활짝 웃고는 다시 할아버지에게 달려와 안겼다. 그렇게 할로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내가 뭘 하자고 하면 늘 싫다고 하는 우리 엄마, 힘들게 번 돈 쓰지 말라고, 피곤할 테니 시간 나면 잠이나 자고 뒹굴거리라는 엄마에게 오늘도 거절당할까 봐 조금 겁이 났지만 그래도 한번 말이나 꺼내보자 싶어서 입을 열었다.
“여기 근처에 카페 가서 커피나 한잔할까?”
“그래. 너 자주 가는 데 있어?”
엄마의 흔쾌한 오케이가 낯설고 반가웠다. 우리는 아메리카노 한 잔과 유자차 두 잔을 시켜놓고 마주 앉았다.
남편이 모발이식을 한 덕분에 쉽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아빠도 반편생을 탈모인으로 살아오신 터라 관심이 많으신 듯 평소와 다르게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셨다. 자연스레 모발이식 때문에 시댁에도 못 가본 터라 시댁 이야기, 얼마 전 시부모님이 시조카와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온 이야기, 아직 기저귀를 하는 사촌동생과 할로가 같이 놀았던 이야기, 할로의 학교 이야기까지. 별 것 아닌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1시간 50분이 후딱 지나갔다.
카페의 포근한 노란 조명, 컵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유자차의 달큼한 향기, 오랜만에 듣는 아빠의 목소리, 엄마의 웃는 모습, 조금은 너그러워진 나의 마음.
지난밤 나의 걱정이 민망하리만큼 편안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할로와 함께 근처 브런치 가게에서 식사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았던 할로가 피아노연주, 춤, 노래, 방금 뮤지컬 학원에서 연습한 것, 그동안 학교에서 만든 것들까지 잔뜩 꺼내와 자랑하는 동안 나는 낮잠을 잤다.
평소 낮 시간에 소파에 앉는 일도 없는 나인데, 오늘 토요일 오전이 적잖이 피곤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