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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오해

엄마의 10월 네 번째 토요일

by 김수다

할로를 뮤지컬 학원에 보내고 근처 카페에 앉아 책을 펼쳤다. 눈도 침침하고 괜히 입도 심심한 게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책을 덮고 휴대폰을 켜서 온라인 동네 맘카페에 들어가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본다. 이번 주말에 특별한 계획이 있는지, 무엇을 먹을 건지, 어디 좋은 구경거리는 없는지. 엄마들의 관심거리는 여름이나 겨울이나, 평일이나 주말이나, 아침이나 저녁이나 늘 거기서 거기다.


딱히 끌리는 재미난 글도 없고 차라리 동네나 좀 걷자 싶어 밖으로 나왔다. 출산율이 저조하다고 하는데도 토요일 오전의 우리 동네 학원가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나도 이 시간에 아이를 학원에 보낸 엄마지만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주말에도 학원에 가는 현실이 씁쓸하다. 공부하는 학원 아니고 춤추고 노래하는 뮤지컬학원이니 나는 좀 ‘다른 엄마’라고 스스로 위안 삼으며 할로를 데리러 갔다.


“엄마, 나 오늘 키즈카페 갈래!”

“그래? 오늘 누가 키즈카페 간다고 했어? 혼자도 괜찮아?”

“응. 상관없어. 나 혼자서도 잘 놀아.”

키즈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우다다닥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괜히 마음이 짠하다. 할로는 혼자서도 참 잘 논다. 그런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미안하기도 하다.

가끔 외롭지는 않은지, 친구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지, 주말에 친구를 만나고 싶은지 넌지시 물어볼 때가 있다. 아이는 외롭지도 않고, 이미 친구는 충분하고, 주말에 친구랑 놀아도 되고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아직은 엄마와 함께 노는 것이 더 즐거운 다 큰 아가, 그런 아이를 보며 안쓰럽게 생각하는 건 엄마의 오해일까.



나는 어린 시절 골목길이 이리저리 나 있는 주택가에 살았다. 집집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둘셋은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학원에(피아노나 주산, 태권도) 다녔다. 엄마가 저녁준비를 하는 동안이나 주말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골목길에 모여들어 고무줄게임이나 술래잡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에 돌아오면, 엄마는 우리에게 저녁밥을 챙겨주고 언니랑 놀아, 동생이랑 좀 놀아줘라고 말하며 집안일을 서둘러 정리했다.


지금은 외동인 아이들도 꽤 많은 데다가 다들 학교도, 학원도 제각각의 상황에 맞춰 다닌다. 나도 그렇지만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경우가 많아서 어울려 놀게 해 줄 기회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틈날 때마다 편하게 불러서 같이 놀 동네친구가 있으면 좋겠지만 등하교도 겨우 하는 바쁜 워킹맘은 아이와 코드가 잘 맞으면서 재미나게 놀 수 있는 동네친구를 만들어주는 데에 실패했다.

언젠가 아이와 함께 갔던 아이 친구의 생일파티, 아이들은 잘 놀았고, 나도 엄마들 틈에 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웃고 있었지만 아이 등교 후에는 늘 커피 한잔 하며 서로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엄마들 사이에서 어찌나 뻘쭘했는지. 물론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이었지만 이미 친해진 엄마들 틈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은 편치만은 않았다.




할로는 참 잘 놀고 있었다.

가끔은 엄마를 불러 이거 밀어달라, 저거 잡아달라, 같이 공놀이를 하자고 부르기도 했지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웃고 뛰어다닌다. 재밌게 노는 모습에 안심이 되다가도 이렇게 같이 놀 친구 하나 만들어주기 어려울 줄 알았으면 동생이라도 만들어줄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유독 임신이 쉽지 않았고 입덧과 뱃속 아기의 기형사실에 힘든 시간을 보냈기에 임신기간이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있지는 않았다. 게다가 바쁜 남편 덕에 홀로 아이를 돌봤고, 출산 전에는 한번 다툰 적 없던 우리 부부가 아이 키우는 문제로 싸우는 일이 잦아지면서 나는 스스로 더 이상의 임신과 출산은 없다고 확정했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와 아내와 남편으로 살고 싶어 결혼한 것인데 아이로 인해 부부사이가 멀어진다면 애초에 결혼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확연히 다른 자녀교육관과 부모로서의 가치관으로 남편과 부딪힐 때가 많고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집안살림과 육아를 오롯이 혼자 해내고 있는 현실에서 아이를 하나 더 낳아 키운다는 것은 나에게는 무리였다.


친정부모님은 별말씀 없으셨지만 시부모님은 늘 아이 하나 더 낳는 게 어떻겠냐며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할로아빠가 더 많이 도와준다면 모를까, 지금도 혼자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데 더 이상은 할 수 없고 나도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아이 키운다고 모든 걸 참고 살 수는 없다고 정색하며 말했다.


“나중에 할로가 외롭지 않겠어?”


아무리 단단하게 마음먹은 일에도 이 질문에는 여전히 흔들리는 것이다. 외동확정이라 못 박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나중에 후회하지는 않을까, 엄마아빠 모두 떠나고 없는 세상에 우리 할로만 덩그러니 남아있으면 많이 외로울까, 하는 걱정과 불안이 괜한 조바심을 내게 했다.




조금 더 놀다 가면 안 되냐고 조르는 아이를 바라보며 물어본다.

“할로 동생 있었으면 좋겠어?”

“아니, 그러면 엄마가 동생 돌보느라 나랑은 못 놀아주잖아. 그리고 지금 동생 생기면 내가 동생 돌봐야지, 동생이랑 나랑은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같이 놀지도 못해.”


동생이 있으면 덜 외로울 거라는 건 엄마의 오해였을지도 모른다.

친구나 동생이 없어 아이가 안쓰러운 게 아니라 오늘도 엄마가 충만하게 채워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의 핑계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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