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선우 Oct 27. 2024

평온한 불편함

중편 소설 ≪하늘을 사랑한 소녀≫

07.

 스카이가 나를 찾아온 날은 마을에서 벌어진 며칠 동안의 잔치가 지나간 뒤였다. 아빠의 무사 귀환을 축하하던 잔치의 흔적으로 집 한편에는 구운 닭고기와 말린 과일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사람들은 호수 어귀에서 아빠를 발견한 나를 영웅 취급했지만, 진짜 영웅은 나만이 알고 있었다.
 스카이는 예전처럼 코코넛을 가지고 찾아왔다. 이제 그 애가 가방에서 꺼낸 코코넛은 네 개였다. 나는 그 애가 너무 반가워 뛰어가서 와락 안았다. 우리는 힘을 겨루듯 한참 동안 서로를 꽉 안고 있었다.
 “리버, 네 부모님은?”
 집 안을 둘러보던 스카이가 물었다.
 “같이 나가셨어. 이제 다 같이 다니거든.”
 “너는 왜 같이 안 갔어?”
 말해보자면 나는 바빴다. 아침에 일어나면 쪽배를 타고 뺏 아저씨네에 찾아가 스카이가 왔는지 확인했고, 그 애와 지나다녔던 길도 쭉 둘러보았다. 그것이 그 애를 기다리는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시간을 보내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면 한참 동안 문간을 바라보기도 했다.
 “네가 올까 봐 기다리고 있었어.”
 “난 네가 어디 있든 찾아갈 수 있어. 그러니 걱정 마.”
 하지만 나는 널 찾을 수 없는걸. 그건 꼭 승자가 정해진 술래잡기 같았다.

 우리는 저녁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주 오랜만에 14층으로 향했다. 시장에 갈 때 이용하던 배는 아직 수리되지 않은 채로 호숫가 한편에 놓여있었다. 대신 우리는 하늘을 물결 삼아 유연하게 뻗어나갔다. 나는 그 애와 날 수 있는 하늘과 그 애를 날게 해주는 물과 그 애가 좋았다.
 “기지로 납치되었던 사람들이 잘 돌아갔는지 보고 왔어.”
 “어떻게 됐어?”
 “느리지만 메콩강을 따라 잘 올라가고 있었어. 몇 명이 안전하게 내리는 것까지 확인하고 돌아왔어.”
 “그 사람들도 집을 잘 찾아갔겠지?”
 “그렇지 않을까?”
 우린 그 기점으로 아빠를 구하기 위해 기지에 다녀왔던 날들에 대해 얘기했다. 깃털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간혹 웃기도 하며. 불안할 정도로 평온한 밤이었다.

 이후 스카이는 오전부터 이른 오후까지 뺏 아저씨를 도와 일을 하다가 오후 5시가 되면 나를 찾아왔다. 나 역시 푸르스름한 동이 트는 오전부터 엄마 아빠를 따라나가 고기 잡는 일을 돕다가 두 분이 시장에 갈 때 집으로 돌아와 공부했다. 그러다 오후 5시에 나를 찾아온 스카이를 만났다. 스카이와 나는 우리 집 혹은 뺏 아저씨네 집에서 저녁을 챙겨 먹고 어둑해지길 기다렸다가 어김없이 하늘을 날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가끔 목걸이 집 주인을 찾아가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녀의 추천으로 조금 더 떨어진 곳에 있는 분수대를 찾아가 시원한 물을 맞고 주변을 둘러 걷기도 했다. 얘기를 하며 걷는다는 건 간혹 상대와 나 둘만의 구덩이에 빠져있는 기분이어서 거리가 뒷전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멀어진 것을 깨달으면 걸음을 멈춰 다시 돌아가곤 했다. 가끔은 아빠를 찾으러 호수 멀리 떠났던 날들이 아득한 꿈처럼 느껴졌다.

 그날은 14층의 턱에 앉아 전구가 켜진 시장을 내려다보고 있던 날이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바람이 살랑이는 익숙한 풍경에는 낯선 광경 하나가 끼어있었다.
 “광고판이 바뀌었어.”
 원래는 노란색 배경에 빨간색 칠리소스 광고가 붙어있던 곳이었다. 먼지가 뒤덮인 광고판은 칠리소스고 배경이고 까만 목탄처럼 보이기만 했었다.
 바뀐 광고판에는 자주색 옷을 입은 여자가 자신의 손 위에 떠 있는(그렇게 표현해 놓은) 장소를 놀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광고판 위에 고정된 다섯 개의 조명이 워낙 강해서 꼭 여자의 눈이 레이저를 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손 위엔 알록달록한 별들이 춤추는 둥근 밤하늘이 올려져 있었다. 눈을 찌푸리고 자세히 보자, 어두운 하늘 아래 많은 사람과 화려한 전광판이 찍힌 사진이었다. 광고판에는 강조하기 위해선지 각기 다른 글씨체로 적힌 문장들이 있었다.
 “리버사이드 야시장. 매일 10잔 무료 음료. 온갖 즐거움 보장. 차로 30분 이동.”
 턱을 괸 채로 고개를 돌려 스카이를 바라보았다. 그 애와 조금 더 새롭고 즐거운 곳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저 먼 망망대해도 다녀왔으니까.
 “스카이, 우리 저곳에 가볼까?”
 스카이는 내가 가리킨 광고판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왼쪽 아래, 리버사이드 야시장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를 살펴보던 스카이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근처에 시엠레아프 강이 흐르고는 있지만, 그곳은 어느 시간대나 사람들이 많아서 날아서 갈 수 없어.”
 “그럼 걸어가는 건?”
 “걸어간다고?”
 나는 내가 말해놓고 놀랐고, 스카이는 내 말에 놀랐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뱉고 보니 별거 아닌 것처럼 보였다.
 “가장 가까운 길로 걸어간다고 하더라도 세 시간이 넘게 걸릴 거야.”
 하지만 내 안에는 ‘왜 안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이른 시간에 출발하면 되잖아. 너와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어. 사람도 많고, 즐거운 곳에.”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호수와 멀어지잖아. 부모님이 걱정하실 거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네가 함께 있잖아."
 그 애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가지 않는 게 맞는 듯 했지만, ‘꼭 그래야만 할까?’하는 의문을.
 스카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