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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우 Oct 27. 2024

아빠와 배

중편 소설 ≪하늘을 사랑한 소녀≫

05.

 스카이는 마을 사람들을 데려다 줄 필요가 없는 날이 생기면, 두 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나를 찾아왔다. 이건 누구 아주머니가 가져다준 거야, 이건 누구네 집 애가 줬어, 같이 먹자. 그리고 다음에 만날 날을 약속했다.
 스카이는 자기 같은 외지인이 이곳에서 할 일이 있어 좋다고 했다. 그 애는 마을 사람들을 데려다주는 일 외에도 시간 나는 대로 뺏 아저씨를 도와 배를 수리하고, 페인트를 칠하고, 가끔 물고기를 낚기도 했다.
 스카이와 약속한 날이 흐리지만 않다면 아침엔 배를 타고 강 위를, 밤엔 바람을 타고 하늘 위를 날았다. 14층은 우리의 아지트가 되었다. 14층에 올라가기 위해 우린 더 이상 땀에 젖을 필요가 없었다. 그늘막이 진 곳에서 주변을 살피다가 사람이 없을 때 14층까지 단숨에 날아올랐다. 하늘을 가로지를 땐 옥상을 이용했다. 옥상이 일종의 이륙장인 셈이였다.
 마네킹 안 식물들은 갈 때마다 조금씩 자라있었다. 나만의 생각일까 싶어 스카이에게 물어보았는데 그 애 역시 그렇게 보인다고 했다.
 “깨진 창으로 빗물이 들어와서 자랄 수 있는 건가 봐.”
 우리는 숲 냄새가 감도는 그곳에서 자주 찐 옥수수를 먹으며 해가 저무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멀리 타오르는 주홍빛 강 위에 배가 떠다녔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끔은 해 질 무렵 배 위에 서 있던 아빠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아빠 물고기를 아주 잘 잡았었는데.”
 언젠가부터 하늘을 날 때면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정박한 배들을 유심히 내려다보곤 했다. 그중 하나에 붉은 별 두 개가 찍혀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요즘에도 다른 사람들은 아빠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엄마만큼은 단호했다.
 ‘죽었으면 떠올라야지. 그러지 않았으니 살아 있는 거야.’
 엄마가 그들에게 하는 말을 엿들을 때마다 내 믿음도 강해져 나 역시 아빠가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야, 잘 살고 있을 거야. 고기 잡으면서 새들에게 남은 미끼를 주면서. 옛날에도 그랬었으니까.”
 내 혼잣말에 스카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리버, 어떤 일이 있었던 거야?”
 나는 잠시 고민했다. 아빠에 대해 말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아니었다. 나 역시 스카이에게 비밀을 갖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스카이에게 말하면 편해지기까지 했다. 다만 대답의 무게와 정도에 대한 고민이었다. 내게는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주제였지만, 스카이에게 그 정도의 무게를 나누어주고 싶진 않았다. 그럼에도 어떻게 해야 잘 말하는 건지 알기 어려웠다. 결국 요령이 없는 나는 그날에 대해 떠오르는 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평일엔 거의 집에 안 계셨어. 새벽부터 고기를 잡고, 낮엔 상인을 만나 고기를 팔고, 시장에 가서 식재료를 구입한 뒤 깜깜한 밤이 되고 나서야 집에 돌아오셨지. 엄마는 집에서 가는 실들을 엮어 작은 깔개를 만들어서 팔았어. 나는 이쪽저쪽 기웃거리면서 크메르어를 공부하고, 엄마를 돕거나 집안일을 했지. 매일 달라질 것 없는 일상이었어.”
 그런데 완전히 다른 일상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조금 달랐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 한낮이었어. 나는 바닥에 엎드려서 과일을 집어 먹으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지. 그런데 멀리서부터 타타타타 동력기 도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뚝 끊기고 노 젓는 소리로 변했어.
 ‘어, 아빠다.’
 하지만 아빠가 돌아올 시간이 아니었지. 나는 문밖으로 달려 나가 고개를 내밀었어. 엄마도 같은 마음이었던 건지 방에 난 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어. 아빠가 이쪽으로 오면서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어. 엄마와 내 이름을 불렀지.
 ‘녀이! 리버!’
 그런데 아빠 뒤에 다른 사람이 타고 있었어. 그 사람도 우릴 향해 손을 흔들었는데, 앞니 하나가 빠져있는 것만 보였지. 아빠는 등 뒤에 있는 그 남자를 가리켰어. 남자는 밀렵꾼같이 때 탄 베이지색 모자를 쓰고 있었지. 아빠가 우리한테 말했어.
 ‘이 사람 외부에서 왔나 본데 영 낚지를 못해. 오늘 치 고기는 상인에게 넘겼으니 근처에서 낚시 좀 알려주다가 저녁거리 가지고 돌아올게.’
 아빠는 돈이 담긴 주머니를 엄마한테 건네주었어. 엄마는 영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어. 그리곤 아빠 손을 꽉 잡고 조용히 말했지.
 ‘멀리 가지 말고, 빨리 돌아와.’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어. 밤 10시가 되었는데도 까만 물살은 고요하기만 했지. 뒤늦게 엄마와 나, 마을 사람들이 아빠를 찾아다녔지만 아빠와 아빠가 탔던 배는 코빼기도 안 보였어.”
 나는 옅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은 거야.”
 그 애에게 말하고 나니 조금 시원한 기분이었다. 나는 엄마처럼 어른들과 얘기 나눌 수도 없었으니까. 스카이가 내 손을 잡아 왔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손에 닿아오는 부드러운 감촉에 딱딱하게 굳었던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그 따사로운 느낌에 여태 마음 한구석에 밀어두었던 얘기를 꺼냈다.
 “그래서인지 네 배에 오를 때마다 괜히 이상한 기분이 들어. 아빠가 생각나거든.”
 “내 배? 왜?”
 그 애가 무엇인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 같지 않았다. 스카이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별 그림은 다 우연이었을까?
 “네 배에 그려져 있는 두 개의 붉은 별, 네가 수호의 증표라고 했던 그림…”
 멋쩍은 웃음이 나왔다. 그렇다면 우연에 불과했던 일을 심각하게 생각한 것이 창피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빠 배에 그려 넣은 것과 똑같은 모양이거든. 아빠의 실종된 배 말이야.”
 스카이가 나를 잡았던 손을 스르륵 내려놓았다.
 “언제부터 돌아오지 않으신 거야?”
 “작년 11월부터. 네가 이곳에 오기 전일 거야.”
 “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을까? 노의 색깔도.”
 연이은 질문에 취조받는 기분이었다.
 “왜 그래?”
 그 애의 의중을 알고 싶어 까만 눈을 바라보았다. 스카이는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으나 눈빛만큼은 답을 채근하고 있었다.
 “그냥, 날아다니는 동안 눈여겨보려고.”
 내가 시장과 집 주변을 둘러봤을 때는 찾지 못했다. 하지만 스카이는 더 넓은 면적을 빠르게 돌아다닐 수 있으니 다를 수 있을까? 나는 약간의 희망을 품게 되었다.
 “에메랄드색의 배야. 원래 어두운 파란색을 칠해놨었는데, 그 위를 에메랄드색 페인트로 덧칠해서 까진 부분만 파랗게 보여. 앉아 있는 곳엔 빨간색 페인트를 칠했어. 내가 아빠 옆에서 같이 칠했거든. 그 부분은 물건을 많이 싣고 다녀서 색깔이 변해 마지막엔 자주색으로 보이긴 했지만. 배 왼쪽 면엔 아까 말한 두 개의 붉은 별이 있고, 노는 노란색이야.”
 스카이는 내 말을 듣는 내내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색이 좋지 않아 내가 괜찮냐고 묻자 그 애는 연신 ‘아니야, 아니야.’라고 말했다.
 나는 스카이에게 괜한 부담을 준 게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그럼에도 차마 아빠의 배를 찾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꺼내진 못했다.
 
 스카이는 그 후 한참 동안이나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대신 내가 매일같이 뺏 아저씨네를 찾아갔다. 그때마다 뺏 아저씨는 스카이가 일하러 나갔다고 하더니 어느 날은 곤란한 얼굴로 사실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혹시 스카이가 아빠처럼 사라져 버린 걸까 봐.
 뺏 아저씨는 급히 말을 덧붙였다.
 “며칠 전 집을 나설 때부터 오랫동안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했어. 그렇지만 분명 돌아올 거라고 했단다. 스카이는 네가 걱정할 테니 말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네가 매일같이 찾아오니 말해 주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정말 스카이가 밤낮 없이 아빠의 배를 찾으러 간 걸까?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고. 사방이 물이었다. 호수는 강과 연결되어 있고, 강은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 물이 흐르는 곳은 때로 하늘보다도 넓어 보였다.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날 수 있다고 해도 물 위에서 우리의 몸은 턱 없이 작았다.
 “제가 찾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안 해서 스카이가 돌아오지 못하는 거예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리버, 괜찮니?”
 뺏 아저씨는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물었다.
 아저씨네 집 양옆으로 정박하여 있는 여러 배 중에 스카이가 몰던 배도 있었다. 놀랍게도 그 배는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전에는 부서진 밑바닥이 보이지 않도록 잘 포장이 되어있었다면 지금은 왼쪽의 절반이 완전히 파손되어 있었다.
 아무도 타지 못하게.
 나는 그걸 보고 스카이가, 이키가 어쩌면 한참이나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몸을 돌려 노를 저었다. 눈물이 양옆의 볼을 가르고 방울져 떨어졌다.
 내가 스카이를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스카이가 돌아오게 된 건 일주일이 더 지나고 나서였다. 비가 오는 어느 날 낮에 비를 쫄딱 맞은 뺏 아저씨가 우리 집을 향해 소리 질렀다. 스카이의 소식을 전하러 오신 것이다.
 “얘, 리버! 스카이가 왔단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아저씨, 지금 가도 되나요?”
 그러나 아저씨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안되는 건 아니지만,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약을 먹였단다. 지금은 자고 있어서 내일 오는 건 어떠니?”
 절망감에 몸이 푹 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스카이가 사라지지 않고 돌아왔다. 중요한 건 그것이었다. 나는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스카이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날 밤은 잠들 수 없어 꿈을 꿀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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