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소설 ≪하늘을 사랑한 소녀≫
04.
다음 날, 스카이의 배가 집 앞까지 찾아왔다.
“어머니는?”
나는 배에 훌쩍 올라탔다.
“고기 잡으러 가셨어. 그런데 이렇게 큰 배를 몰고 왔어?”
스카이가 몰고 온 배는 시장에 나갈 때마다 사람들을 태우던 그 배였다. 붉은 별이 두 개 그려진 배. 사실 사람이 둘 뿐이라면 조금 더 작은 배를 타고 가도 문제없을 터였다.
“음, 혹시라도 뺏 아저씨가 몰면 안 되거든. 이 배는 이제 내 배라서.”
스카이가 농담처럼 말했지만 나는 그 애가 진심을 말하고 있는 걸 깨달았다. 바닥이 뚫린 배를 뺏 아저씨가 몬다면 분명 침몰할 테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온몸을 태울 듯 내리쬐던 해는 한층 힘을 뺀 건지 따사로운 빛을 내뿜었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들은 일단 멈추기로 마음먹었다.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지만, 어제 봤던 그 애의 표정이 아직 눈에 선했다. 아빠는 여행길이 즐겁기 위해서는 즐겁도록 내버려두면 된다고 했었다. 나는 그 말을 마음에 새겼다.
나와 스카이는 지붕 아래 놓인 두 플라스틱 의자에 마주 앉았다. 털털털 의미 없이 돌아가는 동력기를 사이에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갔다. 대부분 나에 대한 얘기였지만 스카이는 즐거워했다. 그래서 나도 즐거웠다.
“리버, 네가 말한 곳에 가기 전에 잠깐 들를 곳이 있어.”
배에서 내린 스카이가 밧줄 고리를 말뚝에 걸어 고정하고 있었다.
“어디?”
스카이는 장난기 어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말해주지 않을 모양이었다.
“비밀이야, 따라와 보면 알아.”
바람이 부는 작은 숲에 우거진 나무들과 풀을 헤쳐나오자 시장으로 건너갈 수 있는 커다란 도로가 나왔다. 지난번 쌀 파는 아주머니를 따라 건넜던 곳이었다. 도로 너머로 북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스카이가 나를 돌아보았다.
“몇 번 와봤는데 내가 가려는 곳은 복잡하고 정신없어. 길을 잃기도 딱 좋아. 그래서 너만 괜찮다면….”
그 애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스카이의 손을 꽉 잡았다. 우린 도로를 건너 각양각색으로 물든 천막들과 각종 물건을 헤쳐 나갔다. 스카이를 따르는 내내 발걸음이 가벼웠고, 하늘은 푸르렀고, 구름은 하얬다. 어느 길에선 어깨 너머로는 나비들이 머리 위로는 새들이 날아다녔다.
작은 깃발을 매단 장식용 줄이 천막과 천막 사이를 메꾸는 곳에서 스카이가 멈추었다. 이렇게 시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적은 처음이었다. 스카이는 왼쪽에 있는 상점 하나를 가리키며 안으로 들어가자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나는 인사를 건네는 스카이를 따라갔다. 사방이 아름다운 색깔로 반짝이는 곳이었다.
“어서 오렴, 안 오는 줄 알았는데.”
시선을 빼앗겨 구경하고 있을 무렵, 금목걸이를 두 겹으로 건 풍채 좋은 여자가 가게 안쪽에서 나왔다. 그녀는 스카이 옆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를 쳐다보았다.
“이 아이구나? 내가 전에 신세 진 일이 있어서 우리 가게에서 아무거나 하나 가져가라니까, 물론 너무 비싼 건 말고, 나중에 다시 오겠다지 뭐야? 누굴 데려오겠다더니 깜찍한 아가씨였네.”
스카이가 손사래 치며 내게 속삭였다.
“그냥 근처까지 짐을 실어드렸을 뿐이야.”
“그때 난 다리도 다쳤고, 길도 잃어 네가 구세주로 보였단다. 지난번에 봤던 거 보여주면 되니?”
“네, 그 물방울 모양이요.”
스카이가 내 손을 잡아끌었고,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이끌려갔다.
그리고 내려다본 유리장 너머엔 엄지손톱 크기의 물방울들이 햇빛을 반짝이는 강물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중 가장 가운데에 있는 푸른빛 섞인 에메랄드색 물방울엔 목걸이 줄이 달려있었다.
“네가 무슨 색을 좋아할지 몰라서.”
스카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아까 스카이가 한 것보다 더 큰 손사래를 쳤다.
“스카이, 난 괜찮아.”
“아니야, 그냥, 네가 이걸 했으면 좋겠어서. 네 이름이 리버니까.”
리버, 강이라는 뜻이니까 물방울이랑 잘 어울리잖아.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내 선택만 지긋이 기다리는 그녀와 스카이의 모습에 결국 하나를 택했다. 나는 가운데에서 빛을 내고 있는 물방울을 짚었다. 에메랄드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었다. 아빠의 배에 칠해달라고 보챌 만큼.
주인은 물건을 잘 볼 줄 안다며 내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진짜 보석은 아니지만, 가게에서 세공한 이 큐빅 지르코니아는 보석만큼이나 아름답지.”
“예쁘다.”
스카이가 씨익 웃었다. 나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고마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이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달달한 얼음을 갈아 만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인파를 파헤치다 보니 금세 노란 폐건물에 도착했다. 1층에 고여있는 물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코를 막고 계단을 올랐다. 두 개의 층을 벗어나자 악취도 잦아들었다. 계단을 오르는 내내 흔들리는 목걸이가 빛을 반사해 벽에 푸른 자국을 냈다.
“괜찮아? 안 힘들어?”
뒤를 돌아 스카이를 바라보았다. 열심히 따라오는 중인지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리버, 너 대단하구나.”
“아직 여섯 층은 더 올라가야 하는데. 일단 14층에 가야 하거든.”
스카이는 내 말에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갑자기 달리기 시합을 하듯 나를 제쳐 빨리 뛰었다.
“같이 가!”
나 역시 질세라 뛰다 보니 금방 14층에 도달했다. 사실 벽 아래 ‘14’라고 페인트칠 된 빛바랜 숫자를 보기도 전에 그곳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곳만이 가진 푸르고 서늘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하얀 기둥과 바닥 일부를 뒤덮은 두껍고 얇은 나무뿌리와 이끼들, 정제되지 않은 덩굴에 매달린 나뭇잎들. 문이 떨어진 채 방치되어 있는 건너편 비상구 계단에서는 금방이라도 온몸에 이끼 낀 괴물이 나타날 것 같았다.
역시 이런 광경을 처음 보는 듯 스카이의 입이 조금 벌어져 있었다. 그 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숲 냄새가 나.”
그 애는 느린 걸음으로 주변을 걸어 다니다가 기둥 한편에 쓰러져있는 마네킹을 발견한 듯 그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얼마 전 내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스카이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마네킹에 내려앉은 흙먼지를 쓱쓱 쓸었다.
“오래된 건가 봐.”
마네킹은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었다. 구멍 안에는 흙이 채워져 있어 줄기가 얇은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마네킹 속에서 자라나는 식물이라니.
“어떻게 이 층만 이럴 수 있는 걸까?”
옥상 역시 신비한 느낌이 있었지만 14층과는 다른 의미였다. 옥상이 구름에 닿을 것 같은 기분이라면, 14층은 구름 안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내가 아는 곳 중에 가장 신비한 공간이었다. 세상에서 유일할지도 몰랐다. 이곳을 아는 사람이 스카이와 나 둘 뿐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만의 아지트인 것이다.
“우리 이곳을 14층이라고 부르자. 앞으로 14층이라고 말하면 이곳이야.”
내가 말했다.
“좋아.”
스카이가 대답했다.
14층엔 간혹 작고 하얀 새가 날아왔다가 포르르 사라졌다. 빈 통조림 캔이 발에 채였고 깨진 유리창으로 빛줄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누가 더 신기한 걸 찾아내는지 시합이라도 하듯 우린 부서진 돌 조각을 들었다 놓았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옥상에 가자, 스카이.”
“옥상?”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이 건물에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층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실제 옥상과 연결된 사다리가 있었지만 반이 부러진 상태라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창틀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턱이 겨우 모서리에 있을 뿐이어서 옥상에 견줄 만큼 확 트인 느낌을 주었다.
“응, 분명 너도 좋아할 거야.”
나는 다시 앞장서서 철제 계단을 올랐다. 아까 올라온 만큼 올라오자 더 이상 이어지는 계단이 없었다. 마지막 층계와 연결된 바닥에 발을 딛자, 저 멀리 한 면이 뻥 뚫린 채 빛 덩어리를 내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 거대한 창에 다가갔다. 그곳엔 나무도 풀도 없었지만 창밖으로 자유가 내려다보였다.
“스카이, 이쪽이야.”
스카이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와 같은 곳을 내려다보았다.
“정말 네가 말했던 대로구나.”
수많은 건물과 천막 사이를 누비는 작은 사람들, 저 너머에 흐르는 강과 모든 것들을 감싸고 있는 푸른 하늘이 보였다.
“리버, 앞으로 이곳을 옥상이라 부르자.”
스카이가 아까 내가 했던 말을 따라 했다.
“좋아, 앞으로 옥상이라고 말하면 이곳이야.”
우리는 한참을 킥킥 웃었다.
웃음이 잦아들 때쯤 하얀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세 뼘 높이의 턱에 앉았다.
“여기까지 날아오다니. 거의 30층이 되는 곳인데.”
“더 높이도 날아.”
“정말? 어떻게 알아?”
내가 스카이를 바라보자 그 애도 나를 바라보곤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언젠가 본 적 있어. 하늘 높이 나는 것을.”
비둘기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모양새가 귀여워서 만져보려 슬쩍 손을 뻗자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비둘기는 하늘을 가로지르며 저 멀리 사라졌다.
일순간 맑은 하늘을 가로지를 수 있는 비둘기가 부러웠다. 나는 조금이라도 그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싶어 신고 있던 샌들을 벗어두고 턱에 올라섰다.
“리버, 위험해.”
“괜찮아, 나 중심 잘 잡아. 이것 봐.”
나를 향해 뻗은 스카이의 손을 잡지 않고 두 팔을 벌려 균형을 잡았다. 나는 비행하려는 새고, 두 팔은 날개인 것처럼. 밖으로 떨어지는 상황은 원치 않았기에 아주 잠시 동안만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스카이 쪽으로 몸을 휙 돌렸다. 스카이는 내밀었던 손은 거두었지만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곳에 온 지 두 번 만에 턱에 홈이 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는 못했다. 그저 매끈한 바닥으로 보였을 뿐이었다.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이 미처 보지 못한 홈을 디뎠고 그곳에 걸린 오른발이 순식간에 안쪽으로 비틀어졌다. 균형을 잡기 위해 팔을 움직였지만 나는 새가 아니었다. 팔을 휘젓는다고 날 수 없었으며 인간이기에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잠깐 자유롭고 싶었을 뿐인데. 결국 기우뚱하고 균형을 잃은 몸이 앞으로 쏠렸다.
분명 코가 깨졌을 것이다. 부딪혔다면. 뼈가 부서지고, 피가 나는 코를 부여잡고 계단을 타고 휘청휘청 내려갔을 것이다. 코를 잡은 덕분에 1층의 악취는 맡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큰길 앞에 멈춰서서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스카이의 배를 타고 다시 긴 시간 물 위에서 흔들렸을 것이다. 집 근처에서 엉성한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부목을 대고 나을 때까지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부딪혔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부딪히지 않았어.”
처음엔 눈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자세히 보니 그건 바닥이었다. 그러나 내 몸은 바닥과 닿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스카이를 바라보았다.
“스카이, 나 떠 있는 것 같아.”
딱 목걸이 줄에 매달린 물방울이 땅에 닿기 전만큼.
스카이는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긴장이 풀린 듯 몸에 힘을 빼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내 몸도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조심해.”
스카이가 말했다. 목소리 끝이 떨렸다.
나는 엎어져 있던 상체를 일으켰다. 잠시 덮어두었던 생각들이 물밀듯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러면 아침의 다짐을 망쳐버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네가 했지?”
그 애는 아무 말도 없었다.
“배도 네가 띄운 거야.”
스카이는 내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나무도 네가 뽑은 거고, 맹그로브 숲에서, 그치?”
“이제 내려가자.”
스카이는 계단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잠깐만! 나는 소리쳤다.
“넌 누구야? 너도 해안에 살았던 부족이야? 특별한 힘을 가진...”
“누가 그래?”
스카이가 한달음에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 예상치 못한 속도에 놀라 뒤로 물러섰다.
“어, 어떤 할아버지가.”
할아버지? 스카이는 무어라 말하려다가 입을 꾹 닫았다. 그 애는 많은 것을 억누르다 손을 잡아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할 수 있으면서도.
“그게 뭐가 되었든…” 침묵 끝에 들은 말은 제일 듣기 싫은 말이었다.
“넌 아무것도 못 본 거야.”
스카이는 다시 몸을 돌렸다. 그 모습에 울분 섞인 반발이 튀어나왔다.
“누구에게도 말할 생각 없어! 하지만 내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하는 거야? 단 한 개도?”
스카이의 눈이 흔들렸으나 그 애는 결국 고개를 저었다.
“위험해질 거야.”
“어째서? 나 이미 많은 걸 묻어두고 있어. 그게 특별한 힘이라는 거 알아.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날이 갈수록 생생하게 기억나는 걸 어떡해. 뺏 아저씨가 내 이름을 알려준 적 없는 것도 알아. 밑바닥이 뚫린 배가 침몰하지 않도록 네가 배를 떠오르게 하는 것도 알고, 네가 뽑은 나무들의 뿌리가 사실 온전하다는 것도 다 알고 있어.
그런데 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으려는 거야? 그냥 네가 특별하다고, 조금 특별할 뿐이라고 말해주면 모든 답답함이 사라질 텐데….”
어쩌면 나는 오기를 부리는 걸지도 몰랐다. 꼭 어떤 말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어야만 저주가 풀리는 것처럼.
하지만 스카이가 옆에 있는데도 한없이 멀어 보이는 게 싫었다. 대화할 때면 내 얘기만 하는 것도 싫었고, 나만 그 애의 비밀에 대해 생각하느라 바보 같은 하루를 보내는 것도 싫었다. 보이지 않는 벽 때문에 더 이상 그 애에게 가까워질 수 없는 것은 더 괴로웠다.
우리는 한참 동안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할 거면 이런 건 왜 주냐고 목걸이를 빼내려는 생각도 해봤지만 차마 그렇게는 하지 못했다.
일몰이 시작되었다. 스카이의 주변이 온통 주황빛과 파란빛으로 물들었다. 이래서는 깜깜해지기 전에 집에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꾹 다문 입도 아렸고 다리도 저려왔다.
시간은 끓어오른 감정을 삭였다. 이만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행길이 즐겁기 위해서는 즐겁도록 내버려두어야 했는데. 약간의 후회를 하며 내가 먼저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리버.”
스카이가 내 이름을 불렀다. 예상을 깨고 울리는 목소리에 눈이 크게 뜨였다.
“나는…”
어디서 온 지 모를 바람이 온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팔목에 빨간 자국을 남겼던 그 힘이었다.
스카이의 특별한 힘.
“물 위에 떠오를 수 있어.”
그리고 바닥으로부터 한 뼘, 두 뼘, 세 뼘. 스카이가 떠올랐다. 아주 천천히, 고요히.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보이는 것 너머의 더 넓은 공간으로부터 바람이 밀집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것들도, 그렇게 만들 수 있어.”
바닥에 있는 모든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모래시계 속 모래 같은 흙먼지부터 깨진 유리 파편과 부서진 콘크리트, 철렁이는 소리를 내는 철근들.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떠올랐다. 내 주변엔 얼씬거리지 말라고 불호령이라도 들은 듯 나와는 멀찍이 떨어져서.
언젠가 강가에서 엽서를 주운 적이 있었다. 외지인이 떨어뜨리고 간 건지 엽서에는 뭔지 가늠하기 어려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엄마는 그림이 우주선 안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자신 없는 목소리였지만, 가끔 상점에 들러서 보는 텔레비전에 나온 적이 있다고 덧붙이면서.
엽서에는 콩알 같은 눈과 휘어진 선으로 웃고 있는 여자와 남자가 있었고, 복슬복슬한 강아지도 있었고, 빨간 뚜껑을 가진 잼 통도, 파란색으로 칠해진 치약도 있었다. 그곳에 있는 모든 것들은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지금처럼.
“스카이.” 나는 그 애를 불렀다. 그리고 마음에서 나오는 말을 그 애가 만들어낸 바람에 실어 보냈다.
“네게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야.”
떠올랐던 물체들의 높이가 서서히 낮아지더니 이내 원위치로 돌아갔다. 스카이는 깃털처럼 가볍게 착지했다. 그 애의 얼굴에는 많은 표정이 뒤섞여있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꼬리를 꾹 올려 보였다.
“다른 건물이었으면 어려웠을지도 몰라. 난 물이 어느 정도 있어야만 떠오를 수 있으니까.”
“항해하는 것처럼?”
스카이는 예상 못한 답을 들은 듯 잠시 멈칫하더니 눈썹을 찌푸리고 작게 미소 지었다.
“그런가 봐.”
“비밀은 꼭 지킬게.”
우리는 마주 보고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들고 있던 무거운 짐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아직 궁금한 점은 있었지만, 지금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애가 말해줘서 고마웠다.
“리버.” 내 쪽으로 한 걸음 다가온 스카이가 잠시 머뭇거렸다.
“높은 곳이 무섭지 않아?”
전에 집으로 돌아가던 배 위에서 들었던 질문이었다. 나는 그때 이렇게 대답했었다.
“응, 무섭지 않아.”
변한 게 없었기에 같은 대답을 했다. 그러자 스카이가 말했다.
“그럼 하늘을 날아볼래?”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이질감이 느껴지는 두 단어에 멍해졌다. 하늘, 날아? 창 너머 붉은 하늘을 담고 있는 스카이의 눈을 마주쳤다.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날고 싶어.”
그게 가능하다면. 하늘을 가로지르던 하얀 비둘기처럼.
우리는 턱을 앞에 두고 섰다. 밖은 어느새 깜깜해졌고 상인들은 장사를 접거나 줄줄이 엮인 전구를 켜기 시작했다. 스카이가 턱 위로 한 발을 디디자 나도 같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깍지를 낀 상태였다.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스카이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우릴 보면 어떡하지?”
“어두워서 잘 안 보일 거야. 그리고 최대한 위로 날 거거든.”
그 애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깃들어있었다. 스카이는 검지 손가락을 들어 허공에 경로를 그렸다.
“건물을 벗어나 천막이 모여있는 곳을 가로지르면 우리가 지나왔던 숲과 강이 나와. 이쪽 경로는 지하수가 흐르고 있고 주변엔 하천도 있어서 안전할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
“네가 이곳을 말한 이후로 근처에 몇 번 와봤어.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서.”
옥상에서 곤두박질칠 뻔한 기억에 뜨끔했다. 스카이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아픈 코를 부여잡고 있었을 것이다. 스카이는 위험을 대비해 공중에 떠올라야 하는 상황도 고려하는 것 같았다.
“물이 없는 곳에선 떨어질 테니까?”
“그건 아니지만, 날 수 있는 높이가 매우 낮아지고 힘도 금방 들어. 힘의 조종도 어렵고.”
나는 스카이의 손을 꽉 잡았다. 스카이가 나를 바라보았다.
“무서워?”
“안 무서워. 네 손 절대 안 놓을 거니까.”
“좋아, 처음엔 놀랄지도 몰라. 하지만 날 믿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밑을 바라보자 온통 어두운 허공이었다. 어둠의 똬리를 튼 거대한 뱀이 날 집어삼키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몸엔 줄 하나 달려있지 않았고, 연결된 것이라곤 오직 스카이와 맞잡은 손뿐이었다. 28층 높이의 건물에서 스카이를 향한 신뢰로 그 애와 함께 떨어지는 것이었다.
스카이는 내 손을 꽉 잡는 것으로 신호를 주었다. 발이 허공을 내디뎠고, 나는 차마 앞을 볼 수 없어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었다. 중력이 온몸을 내리누르며 요동쳤다. 수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심장이 텅 비는 느낌이 들며 온몸이 간질거렸다.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영원한 낙하의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곧 더 이상 떨어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참았던 숨을 파아 내쉬는 것이었다. 그다음은 소리에 집중했다. 사방은 귀가 먹먹할 정도로 고요했다. 아무도 없는 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조용했다. 몸을 감싸오는 바람의 감촉이 아니었다면 세상이 소리를 잃었다고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스카이!”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언제 비상했는지 상상 이상으로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막 무더기는 겨우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스카이의 한쪽 어깨에 매달려버렸다. 스카이는 조금 흔들렸을 뿐 나를 꽉 잡아주었다.
“괜찮아.”
그 애는 침착하게 하늘을 유영했고 나는 그런 그 애를 바라보았다. 아직 아래를 보는 건 무서우니까. 그 애를 봤을 뿐이다.
천막 무더기를 지나 작은 숲에 도착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스카이는 잠시라도 휘청이거나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부드러운 파도처럼 날았고 착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복부를 아래로 향한 채 수평을 유지했던 자세가 서서히 수직으로 바뀌며 발 아래 풀이 닿아왔다.
난 그 즉시 다리가 풀려 풀썩 주저앉았다.
“리버, 괜찮아?”
스카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살폈다. 그 애의 이마에 땀이 옅게 배어 있었다.
“괜찮아. 조금 놀랐을 뿐이야.”
나는 한껏 고양된 기분에 쿵쾅거리는 심장을 콩콩 쳤다. 어서 제 박자를 맞춰야 할 것 같았다.
“다행이다.”
스카이가 숨을 길게 내쉬며 웃었다.
점차 어둠에 익숙해지자 주변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배를 매어둔 위치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았다.
“스카이, 배는?”
“이제 괜찮아졌어?”
스카이는 대답하지 않고 다른 얘기를 했다. 잠시 동안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몸은 진정이 되었으나, 정신은 아직 아니었다. 하늘에 날아오른 경험이 탱탱볼처럼 뇌리를 건드리고 또 건드렸다. 하지만 이건 앞으로 기억을 떠올릴 매 순간마다 그럴지도 몰랐다. 그러니 스카이가 묻는 것은 육체적인 진정일 것이었다. 우리는 배도 타야 했으니까.
“응, 괜찮아졌어.”
스카이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그 애의 하얀 티셔츠가 바람에 나부꼈다. 바람은 내가 입고 있는 하얀 원피스의 치맛자락도 흔들고 머리칼도 흩뜨렸다.
“그럼 가자. 더 아름다운 것을 보여줄게.” 그 애가 말했다.
“이제 배는 필요 없잖아.”
그랬다. 내가 스카이의 특별한 힘을 알게 된 순간부터, 하늘을 날아오른 순간부터 우리에게 배는 필요 없었다.
달빛이 내리는 밤의 강은 어둠에 스며들 수 있을 만큼 어두웠고, 길을 찾을 수 있을 만큼 밝았다. 간혹 민가의 불빛이 보일 때면 스카이는 멀리서부터 서서히 우리 몸을 수면과 떨어뜨려 놓았다. 수면이 다시 가까워질 때면 나는 손을 뻗어 물살을 갈랐다. 달빛을 머금은 물은 시원했다.
“우리 언어로 달은 ‘마크왈라(‘ma̱kwa̱la)’라고 불러.”
“마크왈라…. 피엑 이모네에서 만났던 할아버지와 같은 부족인 거야? 그 부족은 동물 조각이 된 커다란 기둥 앞에서 모닥불을 피운 채로 춤을 추고 있었어. 해안을 따라 살다가 부족이 흩어졌다고 했어.”
“네가 말하는 할아버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와 같은 해안에 살았던 네 부족 중 한 부족이었을지 몰라. 우리 역시 여름과 겨울에 의식을 치렀는데 동물 조각이 된 커다란 기둥 앞에서 모닥불을 피운 채 춤을 추었지.”
그때 부리가 긴 새가 스카이와 내 주변을 잠깐 머물더니 숲으로 사라졌다.
“새다.”
“이곳에선 친구나 다름없어.”
우린 얼굴에 닿아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적당한 빠르기를 유지하며 날았다.
“그 할아버지도 특별한 힘이 있었어. 내 생각을 읽었고 갑자기 나타나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
그는 공간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억에서도 완전히 사라질 수 있었다. 다시 떠올려도 등에 쭉 소름이 돋았다. 덕분에 스카이와 하늘을 날게 되었으니 귀인을 만난 게 분명했다.
“그런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부족에도 있었어. 그 힘은 말 그대로 특별해서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던 부족민 오백 명 중 열두 명만이 가지고 있었지. 그들은 부족을 위해 그 힘을 사용했어.”
“너도 그중 하나였고?”
스카이는 고개를 저었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난 열두 명에 포함되지 않았어. 내 힘은 부족이 흩어질 때가 되어서야 얻게 되었으니까.”
스카이의 부족이 어쩌다가 흩어졌는지 궁금했지만, 분명 좋지 않은 일 때문이었을 것 같았다. 나는 그 애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나도 특별한 힘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농담 반 진심 반으로 물었다. 스카이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대부분은 태어났을 때부터 힘을 가지고 있었어. 우리는 신께서 공동체를 위해 특정 사람에게 힘을 부여했다고 생각하지. 그렇기 때문에 너 역시 신과 함께라면, 그리고 신이 네게 그런 목적을 부여한다면 가질 수 있을지도 몰라.”
조금 어려운 말이었다. 그렇다면 부족이 흩어지고 나서야 얻게 된 스카이의 힘도 공동체를 위한 힘이었을까? 들은 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벌써 하늘에 적응한 것 같았다. 더 이상 스카이의 손을 잡지 않아도 멀어지지 않았다. 사이가 벌어지면 수영하는 것처럼 몸을 움직여 다시 돌아왔다. 스카이는 내게 수영을 잘하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지금 아래로 떨어진다 해도 살아남을지 몰라.”
우리는 물속을 가로지르듯 다양한 자세로 수영, 아니 비행했다. 개헤엄도 치고 달에게 배를 보이며 배영을 하기도 했다. 촘촘히 박힌 별들과 한층 어둠이 드리운 구름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스카이의 손을 잡았다. 반딧불이같이 빽빽이 모여있는 빛들이 사실 악어의 눈이라는 사실에 땀을 흘리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하늘을 날았다. 위에서 아래로 또 아래서 위로.
스카이는 흐린 불을 깜빡이는 전구가 달린 우리 집 뒤편의 풀숲에 나를 내려주었다. 나무가 듬성듬성 자라있고 잡초가 무성한 곳이었다. 그곳에는 가까운 거리를 움직일 때 이용하는 커다란 세숫대야와 노가 있어서 집까지 가는 데 문제 없었다.
나조차 이곳이 우리 집인지 알지 못했는데 하늘에서 보고 정확한 위치에 내려주는 스카이가 놀라웠다.
“어떻게 그렇게 길을 잘 알아?”
내 물음에 스카이는 하늘을 쳐다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혼자 많이 날았으니까.”
스카이의 목소리에서는 즐거움보단 외로움이 느껴졌다.
스카이는 내일 오후에 뺏 아저씨의 배를 몰 일이 있어서 다시 배가 묶여있는 곳으로 가봐야 한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에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스카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내 이름을 불러 고개를 들게했다.
“리버, 내 본래 이름은 ‘이키(ik̓i)’야. 우리의 언어로 ‘하늘’이라는 뜻이지.”
“이키….”
나는 그 이질적이고 아름다운 이름을 불러보았다. 스카이는 제 팔 안쪽에 있는 붉은 문자를 가리켰다. 그 문자는 자신의 언어로 새긴 진짜 이름이었다.
“내 본래 이름은 네 가슴에 담아두고, 이곳에선 스카이라고 불러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카이가 등을 돌려 다시 상공을 향했다.
실감 나지 않았다. 모든 게 꿈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