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선우 Oct 27. 2024

특별한 힘

중편 소설 ≪하늘을 사랑한 소녀≫

03.

 그날의 악몽을 기점으로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전부 스카이와 관련된 문제였다. 그 애가 그려 넣은 붉은 별이 내가 아는 붉은 별일지부터 시작해 그 애와 함께 있을 때만 겪게 되는 신비한 현상과 그에 대한 나의 상상. 정답을 모르기에 결국 풀 수 없는 문제들로 하루 종일 끙끙 앓기도 했다.
 “리버, 타이어가 필요해서 피엑 이모네 갈 거야. 같이 갈 거니?”
 엄마가 누워있던 내 등을 슬쩍 건드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생각 감옥에서 벗어나야 했다.
 배에서 내려 나무로 된 계단에 올랐다. 줄처럼 엮인 분홍색 비즈 장식을 헤치고 들어가자, 세상의 모든 고물이 미끼를 물고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피엑, 우리 왔어.”
 피엑 이모(사실 친척 관계는 아니지만 엄마가 이렇게 불렀다.)는 안쪽에 있는 건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이모를 찾아온다며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매끈한 기름이 발린 벽을 만지면서 물건들을 구경했다. 가족 대대로 운영하는 고물상이라는 어른들의 말처럼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다. 벽에 막혀서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가 엄마가 들어간 곳과 반대편인 왼쪽으로 조금씩 들어갔다. 세숫대야, 손잡이가 있는 작은 바가지, 선풍기 뚜껑도 있었고 대걸레 손잡이도 있었다. 이모네는 고물상이라고 불렸지만, 물건들의 상태가 좋아서 새 물건을 파는 만물상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갔다. 상점 불빛이 채 닿지 못해 어둑해진 그곳엔 물건이 뚝 끊겨 있었다. 대신 벽에 사진이 붙어있었다. 끄트머리가 울퉁불퉁한 게 잡지나 책에서 찢어낸 듯 보였다. 나는 눈길을 끄는 한 사진을 매만졌다. 종이는 물에 젖었다가 마른 듯 버석버석했다.
 그 사진엔 달과 까마귀, 사람 모양으로 조각한 기다란 기둥 앞에서 춤추는 사람들이 있었다. 격렬한 춤사위에 나무껍질로 엮은 옷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다른 사진에는 손을 대면 데일 듯 하늘을 향해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이 있었고, 또 다른 사진에는 부리가 긴 새 모양의 탈을 쓰고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어떤 의식을 거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질적으로 보이는 사진은 마흔 장이 넘게 붙어있었다. 그리고 사진마저 끊긴 벽의 우측에 방문 하나가 있었다. 어른이라면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높이가 낮은 방문이었다.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금속의 차가운 감촉이 손에 닿아왔다. 그것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리버!”
 멀리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왜 열려고 했지? 모닥불에 홀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나는 모든 걸 제쳐두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두 번이나 불렀는데.”
 그곳에는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있는 피엑 이모가 있었다.
 “이모,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 리버.” 그녀가 말했다.
 “많이 컸다. 네가 몇 살이지?”
 “열두 살이요.”
 피엑 이모가 놀란 듯이 입을 벌렸다.
 “벌써? 세상에, 우리가 못 본 지 꽤 오래되었나 보구나.”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못 본 지는 일 년도 채 안 되었을 것이다.
 “네 엄마랑 타이어 고르고 저기서 얘기하려는데, 너도 와서 과일 좀 먹으렴. 구경하고 싶은 게 있으면 둘러보고.”
 “그럼 조금만 둘러보다 갈게요.”
 “그럴래? 그러렴.”
 엄마와 함께 몇 발자국 가던 피엑 이모는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몸을 돌려 다가왔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 누군가 있거든 놀라지 말아라.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것 같으면 상대하지 말고.”
 “누구요?”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인데, 보수를 받는 대신에 이곳에서 지내고 있단다.”
 나는 마찬가지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어요.”
 그녀는 안쪽에 걸린 또 다른 비즈 장식을 휙 헤치고 들어갔다.
 나는 몇 걸음 뒤로 움직이다가 다시 그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듯 이상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문 앞에 도달하기 전에 우뚝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머리 위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탓이었다.
 “길라스(g̱ila’s).”
 닫힌 방문 앞에 한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무슨 말인지 모를 말을 내뱉고 씨익 웃는데, 이가 다 썩어있었다. 순간 놀라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벽을 짚은 손과 몸을 지탱하고 있는 다리에 힘을 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문 틈새로 그림자가 든다 했더니 너였구나.”
 그가 초승달처럼 눈을 휘었다. 썩고 벌어진 이 때문인지 발음이 새서 이상하게 들리긴 했지만 이해할 순 있었다.
 “관심이 있느냐?”
 그가 보지도 않고 사진 하나의 정중앙을 쿡 짚었다. 아까 보았던 새 모양의 탈을 쓰고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 사진이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냥 신기했을 뿐이예요.”
 그가 지켜봤을 것 같아 거짓말을 할 순 없었다.
 “관심이 있다는 말을 재미있게 하는구나.” 그가 껄껄 웃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이건 우리 부족의 사진이야. 지금은 흩어졌지만 우린 해안을 따라 살고 있었지. 그래서 물 위에 있는 이곳에 스며들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단다.”
 그의 말 중 반 정도는 울렁이는 파장으로 느껴졌다. 동시에 피엑 이모의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것 같으면’이 떠올랐다.
 적당히 대답하다가 도망가자. 중간에 엄마나 피엑 이모가 불러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어.
 내가 그 생각을 마쳤을 때 그가 말을 뚝 멈췄다.
 “이런, 나는 네가 반갑지만 엄마와 피엑에게로 돌아가고 싶은 게로구나.”
 속을 꿰뚫는 말에 어깨가 움찔 떨렸다.
 “어떻게….”
 그의 눈이 다시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
 “내 잔재주지.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중 소수는 특별한 힘을 부여받는단다. 우리 부족 중 극히 일부도 그랬지. 우리는 흩어졌지만 아직 살아있는 자들도 있으니 언젠가 마주칠 수도 있을 게다.”
 특별한 힘. 나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음영 진 기둥 앞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 사진과 마주쳤다. 불길 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그들이 무섭다고 생각한 찰나 그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
 “어른들은 용감했고 아이들은 용기를 배워가던 중이었지. 무서울 건 없단다.”
 그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게다가 한마디 한마디에서 묵직한 기운이 느껴졌다. 특별한 힘. 나는 얼마 전에 시린 바람이 일었던 팔목을 매만졌다. 정답을 모르기에 결국 풀 수 없다고 생각한 문제.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고 입을 열었다.
 “그 특별한 힘이 물속에 뿌리 박힌 나무를 뽑아내거나, 배를 공중에 띄울 수도 있는 건가요?”
 그의 반달 같던 눈이 뜨였다. 새까만 동공이었다.
 “누군가 본 게로구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멋대로 생각한 건지 정말 신비한 힘을 마주한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제가 멋대로 오해한 걸 수도 있어요.”
 “어린아이야, 무엇을 봤든 너 자신을 이상하게 몰고 갈 필요는 없단다.” 그가 말했다.
 “특별한 힘은 때로 큰 약점이 되기 때문에 그걸 가진 자들이 숨긴다고 숨길 테지만, 때론 원치 않는 대로 흘러가기도 한단다. 네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자면 그런 힘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는 게다.”
 정말 스카이도 저 할아버지처럼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 불현듯 나는 할아버지의 팔을 흘끔 쳐다봤다. 그러나 스카이의 팔에 있는 것 같은 붉은 문양은 없었다. 그가 내 생각을 읽은 건지 배시시 웃었다.
 두려움은 누그러지고 있었다. 그의 특별한 힘 때문일지도 몰랐지만, 뒤늦게 부끄러운 마음이 올라왔다. 처음엔 그의 말을 들어보려 하지도 않고 도망치려 했었다.
 “왜 할아버지를 이상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이해한단다. 자신과 다르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는 순간 거부감이 드는 거야. 그런 상태를 계속 놔두게 되면 멀어질 수밖에 없겠지만 이해하게 된다면 생각에 변화가 찾아오지.” 그가 말했다.
 “아니면 벽에 이런 사진들을 잔뜩 붙여놨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구나. 이건 내 잃을 수 없는 정체성이니 양해를 해주려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와 피엑 이모가 나를 찾았다. 나는 그에게서 도망치는 대신 꾸벅 인사를 했다.
 “잘 가려무나.”
 등 뒤로 그의 방문이 끼익 열렸다가 철컥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특별한 힘과 본능적인 거부감.
 우연히 만난 할아버지로부터 며칠 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의 힌트를 얻은 것 같았다.

 스카이는 뺏 아저씨의 배를 책임지고 몰았다. 마을 사람들을 데려다주느라 바쁜 건지 맹그로브 숲에 가도, 뺏 아저씨네를 기웃거려도 코빼기도 안 보였다.
 “리버, 오랜만이구나.”
 뺏 아저씨는 자신의 집 앞에서 뒤집어진 배의 밑바닥을 두드리고 있었다. 주황색 페인트 두 줄이 칠해진 게 상점 아주머니의 배인 것 같았다. 나는 젓던 노를 멈추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스카이는요?”
 “오, 스카이를 아는구나. 녀석은 사람들을 태우고 시장에 갔단다. 그 애는 요새 강박증이 있는 것처럼 자주 나가. 너무 맡긴 것 같아 내가 대신 몰겠다고 하면 난리도 아니라 손을 댈 수도 없지. 덕분에 사람들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여기서 다른 일도 하니 좋긴 하다만.”
 그러고 보니 아저씨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다.
 “저,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말해 보렴.”
 물어볼 말을 머릿속으로 곱씹어 보자 손에 땀이 배어 나왔다.
 “혹시 스카이에게 제 이름을 알려주신 적이 있나요?”
 네 이름? 뺏 아저씨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적은 없는데.”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렇다면 이름을 알아내는 능력도 스카이가 가진 특별한 힘일 수 있는 것일까?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마주했던 능력과 상당히 범주가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내 마음대로 그 애의 힘을 정의 내려놓았을 뿐이고, 스카이에게도 들은 바가 없으니 진실의 과녁에 화살을 꽂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또 다른 사실이 이렇게 충돌하게 될 때면 답답해졌다.
 나는 특별한 힘을 가진 자들이 다른 범주로 보이는 능력을 넘나들 수 있는지 궁금했다. 예를 들어 예언할 수 있는 자가 불꽃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와 같은 질문에 대답이 필요했다.
 지금으로써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나는 뺏 아저씨에게 급하게 인사한 후 피엑 이모네를 향해 노를 저었다. 그곳으로 가면서 이번엔 할아버지의 이름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피엑 이모는 귀신을 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가게 구석구석 찹쌀을 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무슨 소리니? 이곳에 사람을 더 들이면 발 둘 곳도 없어, 리버.”
 이가 썩은 할아버지라니. 나는 몸서리치는 피엑 이모를 두고 왼쪽 복도로 달려 들어갔다.
 “거짓말.”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벽에는 종이 하나 붙인 흔적도 없었고, 닫혀있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 안엔 아직 미끼를 물지 못한 물건들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의 순간이 꿈이나 환상이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손으로 만졌던 종이 감촉이 아직도 선명했다. 그리고 문득 이 순간까지가 그의 특별한 힘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나와 얘기하기 위해 시공을 헤쳐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연관 있는 상황들을 그럴듯하게 조작한 것이다.
 그래, 생각해 보니 타이어는 얼마 전 시장에서 사 온 재료들로 보수했기 때문에 필요 없지 않았던가? 실제로 피엑 이모네에서 가져온 타이어는 아직 쓸 필요가 없을 것 같다며 밖에 기대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힘은 내 생각보다 큰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스카이 역시 내 이름을 알아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혹시 붉은 별도 한때 내가 아빠를 위해 그려 넣은 수호의 증표였던 것을 알았던 걸까? 다만, 모든 것은 스카이로부터 듣기 전까지는 내 예상에 불과했다.

 나는 스카이가 시장에서 돌아올 때쯤 찾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먼저 찾아온 건 스카이였다. 스카이는 우리 집 문 앞에서 들어와도 될지 머뭇거렸다. 내가 옆으로 비켜나자 스카이가 들어왔다.
 “안녕, 리버.”
 스카이는 메고 있던 하얀 천 가방에서 과일 세 개를 꺼냈다. 코코넛이었다. 하나는 집을 비운 엄마를 주라며 한편에 두었다.
 “내일은 배를 탈 사람이 없어. 오랜만에 있는 일이지.” 스카이가 긴장한 것처럼 잠시 말을 멈추었다.
 “지난번에 네가 말한 그곳 말이야, 내일 가지 않을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스카이가 활짝 웃었다.
 이 모든 고민의 소용돌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밤의 편안함과 아침의 포근함을 가진 그 애의 미소가 좋았다.
 아삭거리는 코코넛이 고소했다. 우리는 입안에 가득 찬 하얀 코코넛을 보이며 한참 장난쳤다. 코코넛을 다 먹었을 때쯤 바람이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머리카락을 흩뜨려놓았다. 나는 바람에 흘려보내듯 스카이에게 물었다.
 “스카이, 너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밀 같은 게 있어?”
 “비밀?”
 “응, 예를 들어 이곳에 오기 전에 지냈던 곳이라거나… 그냥 가벼운 것들 있잖아.”
 나는 괜스레 창밖의 물살을 바라보았고, 스카이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이전엔 근처 다른 지역에 살았었어. 비밀은 없어.”
 나는 가슴이 꽉 막혀오는 기분에 스카이를 돌아봤다.
 그러나 잠깐 동안 마주친 스카이의 눈이 겁먹은 사슴처럼 크게 일렁였다. 난 더 이상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