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소설 ≪하늘을 사랑한 소녀≫
06.
다음 날 아침, 내가 그 집에 도착하자마자 스카이는 배가 일렬로 늘어선 강가 쪽으로 날 데려갔다. 낮에는 사람들 눈에 띌 수 있어 조심하던 스카이였는데, 개의치 않는 건지 그 가까운 거리마저 특별한 힘을 써 재빠르게 움직였다.
스카이는 내 팔을 붙잡고 작은 창고로 들어갔다. 내 걸음도 덩달아 급해졌다. 배를 수리하는 데 필요한 각종 공구가 걸려있는 창고였다.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한 줄기의 빛만이 어두컴컴한 창고 안을 밝히고 있었다.
“네가 안 오는 줄 알았어.”
한 줄기 빛이 스친 스카이의 얼굴은 살이 더 내려 수척해 보였다. 나는 스카이를 꼭 껴안았다. 우리는 잠시 동안 차가운 온기를 나눴다.
스카이가 내 몸을 조심히 떼어놓더니 두 팔을 잡아 왔다. 그 애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도 단단해보였다.
“리버, 네 아버지가 계실 수도 있는 곳을 찾았어.”
나는 한동안 입도 벙끗할 수 없었다. 분명 제대로 들었으면서도 한 번 더 물을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나는 네 아버지의 얼굴을 모르기에 확실히 장담은 못 해. 그렇지만 희망은 있어. 네가 말한 그 배를 발견했으니까.”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정말이야?”
“응. 그곳은 여기서 많이 멀어. 메콩강을 따라 베트남 해안까지 가야 해. 하지만 아버지를 찾고 싶다면 네가 가서 아버지가 맞는지 확인해야 해.”
나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갈 거야. 지금 당장도 좋아.”
스카이가 힘을 빼자 팔이 스르륵 풀렸다. 그 애는 부드럽게 내 손을 감싸 쥐었다.
“오늘 밤에 출발하자. 이틀 동안 먹을 것도 챙겨야 해.”
스카이는 나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말했다. 통조림, 물, 겉옷, 우비, 잠수경 같은 것들. 며칠 동안 날아서 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이라고 했다. 나는 엄마의 심부름을 하듯 머릿속에 받아적었다. 아빠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니. 나는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에서 어떻게 아빠의 배 한 척을 찾아낼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어떻게 찾은 거야?”
스카이는 내 배가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일단은 돌아가서 어머니께 나와 뺏 아저씨네에서 며칠 동안 캠핑하면서 지내기로 했다고 말해. 아저씨께는 내가 잘 말해둘게.”
스카이는 배에 앉은 나에게 노를 쥐여주었다.
“그리고 네 질문에 대한 답은 오늘 밤에 말해줄게. 해줄 말이 많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 애가 말한 대로 하나씩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날 밤 다시 만난 스카이는 내가 메고 있던 가방에서 필요 없는 것들은 빼내어 창고 한편에 두고, 무거운 것들은 자신의 까만 배낭으로 옮겼다. 흘끗 본 그 애의 가방에는 나무로 깎은 조각품 같은 것도 들어있었다.
스카이는 자신의 가방에서 종이로 싼 꾸러미를 꺼냈다. 종이 포장을 풀자 길고 마른 잎사귀 몇 개가 나왔다.
“이건 네가 사용하게 될 거야.”
그 애는 잎을 사용하여 아빠를 데려올 계획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나는 세상의 모든 무게를 진 것처럼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가 올 것 같아.”
낮부터 가랑비가 내리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창밖을 내다보자 어둑한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껴있었다. 지금은 우기였다. 시기가 좋지 않았을 뿐 이상할 건 없었다.
“비가 오고 물도 불어날 거야. 시야가 잘 보이지 않을 테니 나와 떨어지면 안 돼.”
스카이가 말했다. 우리는 배낭을 메고 비닐로 된 우비를 걸쳤다. 목에는 잠수경을 걸었다. 스카이는 우비 밖으로 가지고 있던 끈을 둘러 배낭이 몸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묶었다. 그리고 내게도 똑같이 해주었다.
마중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벌써 불어난 수면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요람 태우듯 흔들었다. 창고 밖으로 나오자 미끄러운 돌들이 채였다. 스카이는 창고 뒤편에 빽빽이 들어선 나무 중 틈이 벌어진 두 나무 사이를 헤쳐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갔다. 나 또한 그 애를 따라 들어갔다.
안쪽에는 잡초가 무성한 풀밭이 있었다. 풀들은 발목 위까지 올라온 빗물에 머리만 내놓고 있었다. 그 가운데 잠기지 않은 바위 하나가 풀들의 왕처럼 우뚝 솟아있었다. 스카이는 그 모든 것들의 지배자처럼 바위 위로 올라섰다. 나도 그 애의 옆에 섰다. 이곳은 폭풍우 속을 헤쳐 나가기 위한 이륙장이었고 우리는 험한 항해를 앞둔 선장과 선원이었다.
엷은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비닐 모자를 톡톡 건드렸다. 스카이와 나는 잠수경을 썼다.
“리버, 준비됐어?”
먹구름이 낀 하늘에서 낮고 위협적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무 아래 숨어있던 새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나는 그 애를 바라보았다. 투명한 잠수경 안으로 보이는 스카이의 눈은 맑은 하늘이자 푸른 바다 같았다.
“준비됐어.”
나는 스카이의 손을 잡았고 스카이는 나의 손을 잡았다.
“가자.”
우리는 동시에 바위를 디뎠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우린 톤레사프 호의 아래 부근으로 가고 있었다. 그곳은 톤레삽 강과 연결되어 있었고 강을 타고 내려가다 보면 메콩강과 합류하는 지점이 나왔다. 그렇게 메콩강을 끼고 장시간 날다 보면 육지가 보이지 않는 부근이 나오는데, 오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했다.
“이곳까지는 한 번도 나와본 적 없어.”
아래로 보이는 광경은 낯설었다. 가끔 가던 시장 역시 호수의 위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톤레사프 호의 아래쪽으로 내려온 적은 처음이었다.
“단 한 번도?”
“응, 엄마가 못 가게 했어. 넓은 곳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잠시 동안 따라붙는 말이 없었다.
“네 어머니의 말이 맞을지도 몰라.”
하늘은 비를 흩뿌렸다. 눈앞은 빗방울 자국으로 뿌옇게 보였고, 가끔 목걸이 줄이 목에 쓸리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조용히 날았다.
“리버, 내 특별한 힘 말이야.”
나는 스카이를 바라보았다.
“부족이 흩어진 이후로도 난 그 힘을 이용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어. 주변에 물만 있으면 물고기고 해초고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었으니까. 살아남기에 유용한 힘이었어.”
그 애는 앞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내 도망은 여섯 살 때 북서 해안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처음엔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북태평양 아래쪽으로 내려갔어. 어둠이 찾아오면 무작정 날다가 동이 트기 전에 근처에 있는 육지나 섬에 내려섰지. 해 아래선 절대 날지 않았어. 전에 특별한 힘을 가진 부족민 하나가 침입자들에게 힘을 들킨 적이 있었는데, 그 힘을 과도하게 두려워한 이들이 결국 처형이라는 이름 아래 그를 끔찍하게 죽였거든.”
그렇게 듣고 싶었던 스카이의 얘기였는데, 스카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피해 오랜 시간 동안 강과 바다 위를 떠돌아다녔어. 세상에 있는 모든 곳을 지나쳐봤을지도 몰라. 그러다 닿은 건 캄보디아를 가로지르는 메콩강 유역이었어. 그곳은 모든 게 적당해 보였어. 내가 떠나온 곳과 거리도 있었고, 강 아래 식량도 풍부했고, 폐가 두 채가 있었지만 사람도 살고 있지 않았지. 난 그곳에 자리를 잡았어. 그리고 가끔 심심한 밤이면 주변을 날아 인공적인 불빛과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다시 돌아오곤 했지.”
“캄보디아를 가로지르는 메콩강 유역이면 톤레사프 호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었구나.”
“응, 맞아.”
스카이가 외부인인데도 톤레사프 호의 생활에 잘 스며들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애가 해안 생활을 했던 것도 한몫 했겠지만.
“그런데 리버, 오랜 시간 사람들과 떨어져서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이름을 잊어버릴 것 같았어. 내 이름은 ‘이키(ik̓i)’인데,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으니까. 두려움은 충동적이고 갑작스럽게 찾아왔어. 나는 바닥에 있던 뾰족한 돌로 팔에 이름을 새기고 폐가에 버려진 빨간 염료를 그 위에 발랐어. 마치 침입자들과 전투를 앞두고 온몸에 승리의 표식을 그려 넣었을 때처럼 말이야.” 스카이가 말했다.
“그 행위를 통해 잠깐 안정은 되었지만 두려움의 뿌리를 뽑진 못했어. 어느 순간 욕심이 생겼던 것 같아. 사람들과 더불어 살진 않더라도 근처에 가고 싶었지. 가끔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는 곳 말이야. 고요한 강가에 더 있다가는 귀가 멀어버릴 것 같았어. 그래서 나는 강을 타고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갔어.
내가 멈춘 곳은 강 맞은편으로 민가 몇 채가 보이는 장소였어. 가끔 사람이 나와 빨랫줄에 옷을 걸어 말리기도 하고, 다시 옷을 걷어가기도 하고, 어린아이 하나가 엄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기도 했어. 나는 그곳에 자리를 잡았어. 근처에 굴러다니던 버려진 날붙이로 나무를 다듬고 기둥을 세워 지낼 곳을 만들었지. 그곳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가끔 그 집 앞에 잡은 물고기를 가져다 놓기도 했어.”
하지만 스카이의 표정은 괴로워 보였다.
“이 힘은 양날의 검이었어. 날 살리기도 했지만 위험에 빠뜨리기도 했어. 어느 날 분명 혼자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주변에 숨어있었던 거야. 그들은 내가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올려 바로 작살에 꿰는 것을 보고 내 머리 위에 까만 천을 씌웠지. 숨이 막힌 나는 얼마 안 가 까무룩 기절했어. 그렇게 그들이 날 자신들의 기지로 납치한 거야.”
납치. 나는 스카이의 손을 꽈악 잡았다. 납치를 당했었다니. 심장이 쿵쾅거렸다. 동시에 물 위에서 사라진 아빠와 그 뒤에 있던 앞니 하나가 빠진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납치, 실종, 부재, 그 끔찍한 것들이.
“천이 벗겨진 후 마주한 곳은 생전 처음 보는 곳이었어. 기다란 작살들이 야생적으로 널려있고,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비린내가 많이 났어. 아직 가죽이 덜 분리된 고래가 모랫바닥 한 가운데를 뒹굴고 있었지. 그들은 사람들을 납치해서 강제로 노역을 시키고 불법으로 고래를 잡는 사람들이었어.
그들이 작살이 마구잡이로 꽂혀 있는 곳에 날 던져놨어.
‘자, 아까처럼 이곳에도 가득 꿰어봐라.’
내 팔은 등 뒤로 묶여있었고, 바다는 30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지. 땅 위로 떠오른다고 해도 고도가 낮아 금방 잡힐 터였어. 난 그들의 어떤 요구와 질문에도 응답하지 않았어. 그들이 칼날을 깊이 들이밀면 그걸 딱 막을 정도의 힘만 사용하면서. 그들은 빗겨나가는 칼을 이상하게 쳐다보다가 멀리 던져버렸지.
‘하여튼 기다려 보슈. 아까도 봤잖수? 그 여자 말대로 희한하게 생선을 잘 잡더이다. 굶어 죽을 때가 되면 알아서 꿰어놓것지. 한가득!’
그들은 끌끌 가래 낀 목소리로 웃으며 나를 저들의 거처에 있는 암석 기둥에 묶어놨어. 난 최소한의 물과 질긴 생선 몇 조각만을 받아먹으며 며칠을 지새웠어.”
일순간 몸이 둥실 뜨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고도가 낮아졌다. 언젠가부터 스카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스카이….”
나는 그만둬도 된다는 의미로 그 애의 이름을 불렀지만, 스카이는 고개를 저었다.
“들어야 해 리버, 들어야 돼.” 스카이는 다시 얘기하기 시작했다.
“기둥에 묶여있는 동안 본 것은 나 말고도 가끔 사람이 잡혀 온다는 것이었어. 멀리서도 데려오는지 말이 도무지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얼굴에 피딱지를 달고 그들과 같이 일하고 있었지. 도중에 사라져 버린 사람도 있었어.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자면, 탈출에 성공했다기보다는 그들의 손에 죽었을 가능성이 높았지.
열흘이 넘는 밤을 보냈을까? 그들은 내 앞에서 고기를 뜯으며 나를 죽이느니 마느니 하는 얘기를 떠들어댔어.
‘곧 벌일 잔치까지만 두고 보자고. 그때 쓸데없는 건 싹 태워버릴 테니 말이야. 야, 꼬마야, 알아들었지?’
꺼져가는 정신 속에서도 하나만 또렷하게 생각났어. 물, 물이 있는 곳만 가까워지면 된다고.”
스카이는 고도를 조금 더 낮추었다.
“이틀 뒤, 낮에서 저녁으로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어. 한 사람이 또 들어왔는지 그들이 부산스럽게 굴었어. 대부분이 잔치를 위한 고래를 잡으러 나간 상태였기 때문에 기지에 남아있는 인원은 얼마 없었어.
‘거기 누구 없어? 빨리 도우란 말이야!’
바닷가에서 일당 중 누군가가 쩌렁쩌렁 소리를 질렀어. 뭔지 모를 것들을 들어 올리라고 명령했지. 하도 난리를 피워대서 남은 인원 전부가 나가야 할 판이었어. 그때 그들의 눈에 걸린 건 나였지.
‘이놈은 어쩝니까?’
‘도망치면 안 되니까 데려와.’
그들은 내 팔을 묶은 밧줄을 잡고 나를 끌고 갔어. 바다, 물이 있는 곳으로 말이야. 그들은 정확하게 몰랐거든. 내가 물 위에서 어떤 능력을 쓸 수 있는지. 그저 고기를 잘 잡는 줄만 알았던 거야.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스카이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휘몰아치는 비와 바람 사이에서도 스카이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그들은 나를 바다 쪽으로 데려가서 배를 정박시키는 말뚝에 묶어놨어. 그리고 그 난리통에 하나둘씩 합류하기 시작했지. 슬쩍 드리운 어둠에 뚜렷하게 보이진 않았는데, 작은 배 한 척이 있었고 누군가 악을 질러댔어. 그에 견주듯 일당들 또한 고함을 지르며 애를 쓰고 있었지. 나는 그 정신 없는 틈을 타 말뚝에 묶인 밧줄을 풀기 시작했어. 그리고 마침내 다 풀었을 때, 10미터 앞에 있는 바다를 향해 질주했어. 그들이 있는 쪽을 주시하면서, 누군가를 결박하던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몸부림치는 남자의 벗겨진 한 짝 신발을 보고, 욕지기를 내뱉으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또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마지막으로 그 작은 배 한 척을 보았지.”
작은 배 한 척.
“리버, 네가 어떻게 찾았냐고 그랬지? 네 아버지의 배.”
등에 땀이 배기 시작하고 신경이 곤두선 듯 온몸의 피부가 따끔거렸다. 직감적인 반응이었다.
“그들과 함께 있어. 내가 바다 위로 비상하면서 본 마지막 모습은 두 개의 붉은 별이 그려진 에메랄드색의 배였어.” 스카이가 말했다.
“그리고 네 아버지의 배는 아직도 그곳에 있어.”
그 애의 눈에서 눈물 한줄기가 뚝 떨어졌다.
우리는 사람이 없는 곳에 착지했다. 상상 속의 달에 착륙한 듯 진흙이 철벅 밟혔다. 우리는 커다란 나무 밑으로 들어갔다. 스카이는 그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나면서 마지막으로 본 그 배가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어렵게 되찾은 자유를 기억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수호의 표지로 뺏 아저씨의 배에 별을 그려 넣은 것이라고 했다. 그 애는 미안하다고 말하며 주룩주룩 울었다.
“넌 아무 잘못도 없어.”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애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그 애는 몸을 잘게 떨며 통조림과 담요를 내밀었다. 스카이가 불을 피웠지만, 통조림을 먹는 내내 온몸이 파들파들 떨렸다. 우리는 떨고 있었다.
타오르는 불은 사람을 안정시키는 힘이 있었다. 몸의 떨림도 서서히 잦아들더니 이내 멈추었다. 나는 노란 불꽃을 바라보다가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스카이, 아빠는 특별한 힘이 없어. 그러니 아직 그곳에 있겠지?”
그 애는 머뭇거렸다. 스카이는 신중한 얘였다. 함부로 속단하지 않는 그 애에게 어려운 질문이었을 거란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하지만 허풍이 섞인 말이라도 좋으니 아무 말이나 듣고 싶었다.
“죽거나 다치지 않고 그곳에 잘 있을 거야, 그치?”
그 애는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분명 그러실거야.”
그리고는 내게 다가와 날 안아주었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문제없이 고래잡이를 했으면 좋겠다. 아빠는 고기를 잘 잡았으니까.
떠날 때가 다가왔을 때 스카이는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그 애는 죄책감에 물든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리버, 난 그곳이 두려웠어. 혼자 도망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 애는 자신을 과거에 가두고 고통스러워했다.
“스카이.”
나는 두 손으로 그 애의 마른 얼굴을 들어 올렸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아빠를 찾아서 데려오는 것. 출발하기 전 얘기를 나눴던 대로 틀어짐 없이. 그것만이 아빠를 향한 나의 불안과 과거를 향한 스카이의 후회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였다. 나머지 것들은 나중에 생각해도, 아니,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스카이는 나의 방향키였다. 방향키가 흔들리면 우리는 하얀 포말 아래로 가라앉고 말 것이었다. 그러면 또 다른 고통이 반복될 게 틀림없었다.
“네가 말한 계획이 있잖아. 흔들리면 안 돼. 네가 흔들리면 나도 흔들리니까.”
그 애는 천천히 그러나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 리버.”
“미안할 건 아무것도 없어. 네가 아니었으면 아빠가 있는 곳을 영원히 몰랐을 거야.”
난 스카이의 차가운 손을 꼬옥 쥐었다.
“응, 과거의 일에 겁을 냈던 것 같아. 이젠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출발하기 전에 다짐한 걸 꼭 지키겠어.”
스카이의 눈빛이 또렷하게 돌아와 있었다. 우리는 다시 날아올랐다.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비는 그쳤고, 어두웠던 하늘에 푸르스름한 안개가 겹치기 시작했다. 스카이가 속도를 줄였다. 우리는 공중에 멈춰있는 상태였지만, 어떤 중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우주선 안에 둥둥 떠 있는 사람들처럼.
아래 보이는 육지는 곧 끊기려 했고 눈앞으로 광활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스카이가 말했던 목적지가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리버, 선택해야 해. 이곳을 넘으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육지가 나오지 않을 거야. 사람들이 없기에 날이 밝는다 해도 목적지까지 날아가는 건 문제 없지만, 휴식이 필요한 경우 지면에 착륙하는 건 불가해. 지금 이 아래에서 쉬었다 가거나 쉬지 않고 가는 것, 둘 중 하나를 정해야 해.”
“넌 어때, 스카이?”
스카이는 나를 보더니 슬며시 웃었다.
“너와 같은 생각이야.”
나도 그 애를 따라 웃었다.
우리는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우비와 잠수경을 벗고 자유와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며.
마지막 육지를 떠나온 건 새벽녘이었으나 벌써 낮에 가까워졌는지 태양이 뜨거웠다. 스카이는 이카로스 신화에 대해 얘기하다가 뚝 멈추었다. 아직 기지에 도착하기 전이었지만 배 한 척이 바다를 가로지르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끌어당기는 힘에 왼쪽으로 휙 쏠렸다.
“미안, 눈에 띄면 안 될 것 같아서.”
“괜찮아.”
우리가 숨어든 곳은 높은 절벽이었다.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발끝으로 바위의 튀어나온 부분을 딛으려고 했다. 눈치챈 스카이가 내 몸을 조금 아래로 내려 발을 디딜 수 있게 해주었다. 스카이는 절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저들은 멀리까지 나와. 오늘의 고래잡이가 시작된 거야.”
그 애가 자신의 가방을 열더니 쌍안경을 꺼내 건네었다.
“리버, 저기에 네 아버지가 있는지 봐봐.”
“응.”
나는 두 차례 심호흡하고 쌍안경을 눈에 가져다 대었다. 멀리 떨어진 그들이 보일 때까지 좌측에 있는 톱니바퀴를 돌려 배율을 맞추고, 우측에 있는 톱니바퀴를 돌려 초점을 맞췄다.
사람들이 보였다. 일곱, 여덟… 여덟 명.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어 아직 정수리만 보였다. 배의 크기는 큰 편이었는데 15미터 길이의 고래 한 마리가 올라오면 꽉 찰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꺾어가며 그들의 얼굴을 보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네 번째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을 때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머지의 얼굴도 확인했다.
나는 쌍안경을 스카이에게 건네주었다.
“저곳엔 없어.”
“그래?”
스카이가 쌍안경을 받아들었다.
“하지만 스카이, 앞니 빠진 남자가 있어. 저 사람 분명히 기억해. 아빠가 실종되던 날, 아빠의 뒤에 탔던 사람이야.”
스카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들은 해가 지고 나서야 돌아올 거야. 전체 인원의 반의반도 안 나왔을 테니 나머지는 기지 쪽에 가면서 확인해 보자.”
스카이는 절벽을 벗어나기 전 쌍안경으로 그들을 하나하나 내려다보았다. 파도도 잠잠한 바다에서 갑자기 배가 이상하게 기울더니 절벽 아래를 쾅 하고 박았다. 그곳에서 서로를 헐뜯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고 스카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했다.
“가자, 리버.”
바다에는 커다란 절벽이 군데군데 솟아있었다. 스카이는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여 절벽을 넘어 다니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날아가다가 멀리 지나다니는 배를 발견하면 절벽에 붙어 몸을 숨겼다. 두 사람이 타고 있는 배가 두 번 지나갔지만, 아빠는 없었다.
뜨거운 열기에 입이 바짝 말랐다. 스카이는 그럼에도 비가 오지 않는 것이 행운이라고 했다.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했다. 쌍안경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말을 들은 스카이가 말했다.
“맞아, 그리고 비가 온다면 저들이 전부 기지에 있기 때문에 네 아버지를 데려오기 쉽지 않을 거야.”
우리는 가방에서 물을 꺼내 한바탕 목을 축였다. 저 너머에 보이는 해안에 사람의 흔적이 있었다. 크고 작은 배 여덟 척과 각종 도구, 소수의 사람이 들어갈 만한 천막도 쳐져 있었고 모래사장 위에 쓰레기들도 즐비했다.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푸르스름한 아빠의 배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스카이는 나를 한 번 돌아보더니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 애는 목적지와 가장 가까운 절벽에 도착해서 멈추었다. 스카이는 절벽 한 가운데에 있는 작은 동굴의 입구에 날 내려놓고 자신도 들어왔다. 동굴 안으로 빛이 들어와 적당한 밝기를 유지했다. 스카이는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내 가방도 내려놓았다. 몸은 한결 편해졌지만 마음의 무게는 가중된 느낌이었다.
그때 햇빛을 받은 목걸이가 반짝하고 빛을 냈다. 물방울 모양의 큐빅은 작은 동굴에 푸른 빛을 반사시켰다. 머나먼 비행에도 떨어지지 않았다니. 물방울을 꼬옥 쥐자 안정감이 찾아오는 것 같았다.
“리버, 여긴 입구 밖으로 몸을 내밀지만 않으면 그들의 눈에 띄지 않는 사각지대야. 보아하니 밖에 나와 있는 사람이 없어서 기지에 몰려있는 게 맞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아. 내가 금방 다녀오는 동안 누군가 밖으로 나온다고 하더라도 조용해야 해. 우린 적당한 때에 움직일 거야.”
“응, 알겠어.”
스카이는 쌍안경만 가지고 동굴을 나섰다. 그 애는 절벽 머리 부분에 있는 나무들을 건너다니며 쌍안경으로 아래를 보았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스카이가 사라진 지 3분쯤 되었을 때, 아래서 대화 소리가 들렸다. 슬쩍 내려다본 아래엔 두 사람이 바다 쪽으로 가고 있었다. 아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고동쳤지만, 거리가 멀어 형체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이 고개를 쳐드는 바람에 나는 고개를 팩 돌리곤 서둘러 동굴 안으로 몸을 숨겼다. 진정이 되기까진 한참이 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카이가 들어왔다. 그 애는 희망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서른 명쯤 되는 사람들이 기지에 몰려있어. 그때 못 봤던 얼굴이 많아. 난 네 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 없으니 어쩌면 저 중 하나일지도 몰라.”
“응, 빨리 확인해 보자.”
마음 깊숙한 곳에서 희망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절벽에 있는 나무를 타고 가서 기지를 내려다볼 거야. 비가 오지 않기 때문에 곧 인원의 대부분이 밖으로 나와 고기를 잡으러 갈 테니, 그들이 흩어지기 전에 네 아버지를 확인해서 물가로 나왔을 때 이곳으로 데려오면 돼.”
“좋아, 그런데 아빠를 이 위로 데려올 때는 하늘을 날게 하려는 거야?”
내 물음에 스카이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음, 이건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급소를 눌러 잠깐 정신을 잃게 할 생각이었어. 어쩔 수 없어, 리버. 그건 국왕 구출 작전이었어도 그렇게 했을 거야.”
우리는 서둘러 나무 위로 올랐다. 나무를 옮겨 다니는 내내 스카이가 특별한 힘을 사용해 낮게 뛰어올라 안전하게 착지했다. 절벽의 끄트머리를 넘어 조금 더 아래로 내려왔을 때, 스카이가 팔을 들어 멈추라는 신호를 주었다. 우리는 두꺼운 나뭇가지 위에 서서 숨을 죽였다. 그 애는 쌍안경으로 어딘가를 내려다보았다.
“장작이 쌓여있는 곳이 기지의 중심이야. 그곳에 넷이 있고, 그 주변을 두르고 있는 세 개의 시설과 큰 천막 두 곳에도 사람이 들어가 있으니 잘 확인해야 할 거야.”
“알겠어, 잘 살펴볼게.”
스카이가 내게 쌍안경을 주려다가 다시 손을 거뒀다. 나는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그 애를 쳐다봤다.
“리버,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그 애는 팔까지 동원해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참았다. 두 볼이 빵빵해진 스카이는 자신을 따라 하라는 듯 손짓했다. '어서.' 붉어진 얼굴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 그 애를 따라 끝까지 숨을 들이마시자, 이번엔 스카이가 땅이 꺼지도록 숨을 내뱉었다. 내가 그 애를 따라 숨을 내뱉자 그 애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쌍안경을 내밀었다.
“천천히 꼼꼼하게 살펴봐. 넌 할 수 있어.”
경직되었던 몸이 조금 풀린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목에 걸린 물방울을 잠시 쥔 다음 렌즈에 두 눈을 맞췄다.
기지의 중심에는 스카이의 말대로 네 사람이 있었다. 나무 밑동 두 개에 각각 한 사람씩 두 사람이 앉아 있었고, 장작을 쌓아놓은 곳에 한 사람이 걸터앉아 있었다. 뒤에는 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었는데 그 초입에도 한 사람이 널브러져 있었다. 나무 밑동에 앉은 둘은 저들끼리 재밌는 얘기라도 하는 건지 허리를 굽히며 웃어젖혔다.
얼굴이 잘 안 보여. 배율을 조금 더 높이려 했지만, 왼쪽 손가락에 톱니 날이 걸릴 뿐 돌아가진 않았다. 이게 최대인 듯했다. 나는 눈썹을 찡그리고 범인의 발자국을 쫓아가듯 그들의 얼굴을 추적했다.
“기지 중앙에 있는 사람들은 아니야.”
나는 맨눈으로 기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스카이에게 말했다. 아빠가 아니었다. 아빠는 턱이 단단했다. 아첨이나 끝내주게 할 것같이 생긴 저런 알량한 얼굴들과는 달랐다.
나는 시계방향 순으로 살펴볼 요량으로 12시 방향에 꾸려진 공간을 보았다. 그곳은 고래를 포함해 잡은 동물들의 가죽을 말리고, 살을 바르고, 부속물을 제거하는 곳이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은 여섯이었다. 마른 가죽을 걷어내는 사람 하나, 칼로 고기를 손질하는 사람 둘, 내장을 꺼내는 사람 하나, 송곳같이 날카로운 꼬챙이에 고기를 끼워 넣는 사람 하나, 감시자로 보이는 사람 하나였다. 모두 아니었다.
벌써 열 명째 허탕이었다. 손에 땀이 나서 들고 있던 쌍안경이 미끄러웠다. 나는 손을 옷에 문지르고 2시 방향을, 4시 방향을, 7시와 10시 방향을 차례로 보았다. 각종 요리 도구가 있고 음식을 만드는지 연기가 피어오르는 취사장, 날카로운 쇠붙이가 번쩍이는 대장간, 각각 일고여덟 명의 사람들로 차 있는 두 개의 천막.
그러나 아니었고, 아니었고, 아니었다. 중간중간 볼일을 보려는 건지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곳을 헤치고 들어갔다가 나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마저도 이미 봤던 얼굴이거나 새로웠지만 아빠가 아닌 사람들뿐이었다.
내가 쌍안경을 들고 봤던 곳을 다시 살펴보는 행동을 반복하자 스카이가 조심스럽게 쌍안경을 내렸다. 고개를 돌리자 눈앞이 스카이로 가득 찼다.
“없나 봐, 스카이.”
눈가가 뜨거워졌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스카이 역시 잠깐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 급히 갈무리했다.
“우리가 놓친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기지 밖과 바다도 둘러보자. 반대쪽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갔을 수도 있으니까.”
우리는 다시 나무를 타고 절벽을 내려갔다.
그러다 번뜩 한 장면이 머리를 스쳤다. 대화하며 물가 쪽으로 가던 사람 둘. 방금 확인했을 때 기지의 출입구로 들어오던 사람은 없었으니, 그 사람들은 아직 그곳에 있을 터였다.
“스카이! 밖에도 두 사람이 있어.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네가 기지를 보러 갔을 때 물가 쪽으로 걸어가던 사람들이야. 바다로 나갔거나 모래사장에 있을 거야.”
“응, 가보자.”
스카이는 더욱 속력을 냈다. 우리는 금방 동굴에 다다를 수 있었다. 스카이가 쌍안경을 들고 아래를 쭉 살펴보았다.
“배는 우리가 이곳에 왔을 때와 변함없어. 그렇다면 둘은 여기 어딘가 있을 텐데.”
노란 모래사장 위엔 죽은 고래와 천막, 사냥을 위한 도구 및 잔재물만 있을 뿐 사람은 털끝 하나 보이지 않았다.
“저 안쪽인가.”
스카이와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천막을 응시했다. 그러나 내려다보는 위치에선 사각뿔 형태의 천막 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웠다. 약간의 틈이 벌어진 천막 입구의 내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스카이가 내 손을 잡았다.
“아래로 내려가서 봐야겠어. 사람들이 더 나오기 전에.”
나와 스카이는 바다를 향해 뛰었다. 그러나 물 한 방울 튀지 않고 소리 하나 없이 절벽 안쪽으로 굽어 있는 모래밭에 착지했다. 그 다음엔 스카이가 앞장섰고 나는 스카이를 따라 절벽에 몸을 붙인 상태로 한 발 한 발 움직였다.
“리버, 누군가 있어.”
천막을 유심히 바라보던 스카이가 속삭였다. 내 눈에도 똑똑히 보였다. 살짝 벌어진 틈 사이로 누군가 왔다 갔다 했다. 안에서는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 꿈 깨! 나도 여기에 온 게 언젠지 신물이 날 지경이라고. 그런데도 오늘이 며칠이고 여기가 어딘지 천치처럼 아무것도 모르지. 앞으로도 그럴 테니 그놈의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는 내뱉지도 말어. 밥이나 안 굶으면 다행인 줄 알라고.”
그리고 한 사람이 천막의 입구를 발로 차며 밖으로 나왔다. 나는 재빨리 쌍안경을 그곳에 맞추었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스카이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빠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한 사람이 더 남아있었다.
밖으로 나온 남자는 한참 모래 위를 갈팡질팡하다가 천막 안쪽을 향해 말했다. 이전과는 달리 언성을 낮춘 상태였다.
“어이, 언젠가 우리가 좀 더 용기가 생기면 반란을 한번 일으켜보자고. 아직은 꿈같지만…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말고.” 그는 기지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듯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곧 나올 테니 허튼짓 말어.”
그 또한 잡혀 온 사람인 것 같았다. 그가 바다를 등지고 사라지자 우리는 순간 얼음이 된 듯 멈추어버렸다.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에 천막 안을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천막까지는 거리가 있었다. 안쪽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우리의 모습도 드러내야 했다. 만에 하나 일당에게 모습을 들켰다간 더 큰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다.
우리가 마지막 남은 사람을 어떻게 확인할지 머리를 맞댄 사이, 천막이 걷히며 한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느릿한 걸음으로 이쪽, 바다를 향해 걸어왔다. 푸석한 머리에 멍이 든 이마. 그것만 제외하면 내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의 아빠가 맞았다.
“아빠가 맞아!”
나는 숨을 죽이고 낼 수 있는 목소리 중 가장 큰 소리로 스카이에게 말했다. 두 다리는 모랫바닥을 깡충깡충 뛰었다. 스카이도 긴장이 풀린 얼굴로 웃었다.
“다행이야.”
아빠는 족쇄라도 채워진 것마냥 발을 직직 끌었다. 그리곤 바다를 내다볼 수 있는 널찍한 바위에 앉아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물결을 바라보았다.
아빠가 저 앞에 있어. 아빠가 살아 있어. 벅차오르는 마음을 눌러 겨우 진정시켰다. 나는 아빠를 부르기 위해 두 손을 입가로 모으고 소리치려 했다.
“아…!”
그러나 소리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갑자기 솟아오른 벽에 먹혀들어 갔다. 스카이가 순식간에 입을 막은 탓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스카이를 바라보았다. 스카이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 애의 까만 눈을 마주하자 깨달았다. 지금 소리치면 안 된다는 것을. 하마터면 일을 그르칠 뻔한 것을.
“아직 사람이 있어.”
스카이의 말에 숨을 죽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애의 손이 입 아래로 내려가기 무섭게 기지 입구에서 사람 하나가 튀어나왔다.
“어이, 트누! 배를 준비해놔. 전부 나갈 거야.”
트누. 아빠의 이름이 맞았다. 아빠는 바위 위에 앉아 알았다는 듯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대답을 확인한 사람은 다시 기지로 쑥 들어갔다.
이제는 망설일 것이 없었다. 스카이를 바라보자 스카이도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최대한 조용히 이쪽으로 유인하자.”
“어떻게?”
바위는 천막과 몸을 숨긴 절벽의 사이 정도에 있었다. 20미터가 조금 안 되어 보이는 거리였다. 그때 작은 돌멩이 하나가 아빠가 앉아 있는 바위를 스쳤다. 스카이가 던진 것이었다. 그러나 아빠는 돌멩이가 날아간 곳을 쳐다보지도 않고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걸로는 안 되겠어.”
그 애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그 애의 눈에 닿은 건 내 목걸이였다. 에메랄드색 빛을 내는 큐빅 물방울.
“리버, 네 목걸이를 빌려줄래?”
“여기.”
나는 목걸이를 풀어 스카이에게 주었다. 그 잠깐 동안에도 사방에서 내리쬐는 빛을 반사한 목걸이는 무엇보다도 빛났다.
스카이는 사람과 강아지와 잼 통과 치약처럼 목걸이를 띄웠다. 반짝이는 물방울은 서서히 바위 쪽으로 날아가 아빠 앞에 멈추었다. 작은 파도를 만들어내는 바람이 목걸이를 흔들자 얇은 종잇장을 넘기는듯한 광채가 반짝였다. 그 푸르고 맑은 빛을 눈치챈 아빠의 고개가 서서히 들렸다.
아빠는 목걸이가 하늘에 떠 있는 기묘한 광경에 잠시 환상에 빠진 듯 그것을 바라보았다. 아빠가 목걸이를 잡으려 손을 뻗자 스카이가 시기 좋게 슬쩍 뒤로 빼냈다. 아빠가 바위에서 일어나 바닥을 디뎠다. 그리고 스카이가 조금씩 당겨오는 대로 사막 한가운데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손을 허우적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빠가 절벽에 가까워졌을 때, 스카이는 내 뒤에서 목걸이를 잡아챘다. 아빠는 목걸이가 사라진 절벽으로 급히 뛰어 들어왔다. 그리곤 절벽 앞에 서 있던 나와 딱 마주쳤다.
아빠는 입을 벌린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기 얼굴을 손바닥으로 몇 번 때리더니 눈을 찌푸리고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떨리는 손으로 내 머리를 어루만져보았다.
“리버?”
나는 아빠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아빠가 나를 와락 껴안은 순간, 뒤에 있던 스카이가 아빠의 급소를 눌러 정신을 잃게 만들었다.
동굴 안에는 똑, 똑, 똑 물이 떨어졌다. 스카이는 물이 떨어져 웅덩이에 고이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더니 가방에서 종이 꾸러미를 꺼내 내게 주었다. 마른 잎사귀가 들어있는 꾸러미였다.
“리버, 출발하기 전에 말했던 것 기억하지?”
“응, 기억해.”
밖에선 이제 막 사람들이 나온 듯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 애는 마찬가지로 빠른 속도로 가방에서 몇 가지를 꺼내 바닥에 두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티셔츠와 바지를 벗더니 나무껍질로 엮은 치마를 꿰어 입었다.
“말했던 대로 세 번에 나눠 잎사귀를 먹여야 해. 가장 처음 잎사귀를 먹이고, 저기에 있는 웅덩이의 물을 퍼내. 웅덩이 가득 물이 차오르면 두 번째 잎사귀를 먹이고 또다시 물을 퍼내서, 마지막으로 물이 차오른 순간 남은 잎사귀를 먹이면 돼.”
그 애는 아빠의 옷자락을 찢은 천과 아빠가 신고 있던 너덜너덜한 샌들 한 짝도 손에 들었다.
“스카이! 어디 가?”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반대편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얼굴에 썼다. 그 애가 나를 돌아봤을 때 하마터면 비명을 내지를 뻔했다. 나무 조각품인 줄 알았던 물건은 흉측한 모양의 도깨비 탈이었다.
“금방 올게. 네 할 일을 잊지 말고 해야 해.”
나는 스카이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그 애가 바다 쪽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래, 내게도 신속히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종이 포장을 풀어 잎사귀 한 장을 꺼낸 뒤 아빠의 입에 밀어 넣었다. 웅덩이에 차 있는 물을 두 손 가득 몇 번이고 퍼내자 웅덩이가 바닥을 드러냈다. 오른쪽 천장에서 똑, 똑, 똑. 초읽기 같은 물이 그곳을 다시 채우기 시작했다.
“이 끔찍한 녀석들!”
동굴 밖에서 스카이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서둘러 스카이가 두고 간 쌍안경을 들어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스카이가 던진 것인지 모래사장 위에는 아빠의 옷자락과 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트누는 내가 잡아먹었다.”
스카이는 사자의 거친 울음소리를 흉내 내듯 양팔과 양다리를 쭉 뻗은 채로 바다 위에 떠 있었다. 해안에 있던 사람들이 소리의 근원지를 찾다가 하늘에 떠 있는 스카이를 보고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태양을 가린 스카이의 몸 앞면은 그림자 져 새까맸고, 치마처럼 엮인 술들이 기괴하게 나풀거렸다.
“귀, 귀신이다!”
누군가의 외침에 천막에서도 몇 사람이 튀어나왔다. 그들 역시 모두의 시선이 향한 곳을 쳐다보고는 얼굴이 시퍼레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불비처럼 작살이 쏟아져 내렸다. 스카이는 달리는 사람들의 바로 앞에 작살을 꽂아 그들을 넘어뜨렸다. 그들은 바닥을 뒹굴다가 부들부들 떨었다. 온몸을 더듬으며 제 몸에 작살이 박혔는지 확인하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멈추어라. 감히 이 바크와스의 허락도 없이 내 제물을 갈취하려 하다니.”
스카이의 뒤로 해일 같은 파도가 밀려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스카이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그들이 우는 소리를 내며 스카이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한참 동안 파도가 밀려들지 않고 잠잠해지자 하나둘씩 실눈을 뜬 상태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스카이는 그들을 쭉 둘러보더니 팔을 뻗어 어느 한 사람을 가리켰다.
“너, 네 녀석들이 데려온 사람들을 모두 내게 바쳐라. 그렇지 않으면 이 바크와스를 화나게 한 대가로 이곳에 사지를 꿰어주지.”
스카이는 주변에 있는 모든 작살을 띄워 날카로운 쇠붙이가 그를 향하도록 조준했다. 일정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 작살들을 모두 합하면 서른 개가 넘어 보였다. 스카이에게 지목당한 민머리의 빨간 코가 모래 위를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면서 몇몇의 뒷덜미를 잡아 앞으로 끌어냈다. 작살의 날카로운 촉이 그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움직이며 쉭쉭 소리를 냈다. 주변을 둘러보던 빨간 코가 옆에 있는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트누, 트누 녀석은!”
“저기 먹었다잖아!”
그가 바닷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아빠의 잔재를 보더니 ‘제기랄!’ 욕을 내뱉었다. 그러다가 사색이 된 얼굴로 비굴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여, 여기 이놈들입니다. 전부 데려가십시오!”
그의 손에 끌려 나온 사람은 총 열 명이었다.
“거짓말을 하는 거면…”
스카이가 작살 하나를 들어 올려 죽어있는 고래의 살갗에 내리꽂았다. 작살은 깊숙이 더 깊숙이 들어가 끄트머리가 겨우 보일 정도까지 박혔다.
“가만두지 않겠다.”
그때 뒤에 있던 누군가의 거친 손길에 한 사람이 더 밀려 나왔다. 민머리 남자는 실수로 놓친 거라며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스카이는 나온 사람들을 쭉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내 제물, 너희는 가장 큰 배에 타라.”
두려움에 찬 사람들이 달달 떨고만 있자 스카이가 ‘어서!’ 불호령을 쳤다. 혼비백산이 된 사람들이 큰 배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스카이가 저들을 어쩔 생각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애가 말한 계획에 이런 얘긴 없었다. 나는 이제 막 웅덩이에 물이 다 채워진 것을 보고 잎사귀 하나를 더 꺼내 아빠의 입에 넣었다. 아빠의 빠르게 뛰던 맥박이 가라앉고 있었다. 처음 보는 아빠의 평온한 얼굴이었다.
스카이는 큰 배와 말뚝을 연결한 밧줄을 끊었다. 그리곤 순식간에 큰 배를 절벽 뒤로 보냈다. 모든 것이 바다 위에 떠오른 채로 손 하나 까딱하는 것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도깨비 탈을 쓴 스카이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 정말 늪에서 사람을 잡아먹고 사는 도깨비처럼 보였다.
스카이는 아직 모래밭에 머리를 대고 있는 일당들에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모래알 하나하나에까지 선포하는 듯한 강인한 울림이 있었다.
“네 녀석들은 네 녀석들끼리 알아서 살아라. 하지만 호수와 강, 그리고 바다 곳곳에 퍼져있는 내 제물, 인간들을 너희가 다시 착취하는 날에는 내가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내 눈이 기억하는 너희 모두의 숨통을 고통스럽게 끊어주지.”
그들이 신음을 내며 끝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카이는 해안가에 있는 모든 배와 천막, 그들의 기지에 있는 모든 것들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한순간에 떨어뜨렸다. 그중에는 붉은 별 두 개가 그려진 배도 있었다. 사방에서 나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남은 사람들은 제 머리를 감싸며 절규했다. 그들이 그것을 다시 이루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
스카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이 절벽 뒤로 보낸 큰 배를 향해 날아갔다. 그곳의 갑판 위에서 사람들에게 뭐라 말한 후(여기에선 들리지 않았다.) 그들을 멀리멀리 보냈다. 배 위에 있는 사람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스카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닥에 납작 엎드려있었다. 그중에는 아빠와 천막에 같이 있던 남자도 있었다.
나는 퍼냈던 웅덩이가 다시 가득 채워진 것을 보고 마지막 잎사귀를 들어 아빠의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스카이가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이 정도면 알아들었겠지.”
“스카이!”
나는 스카이에게 달려갔다. 스카이가 탈을 벗자 윤이 나는 까무잡잡한 얼굴이 드러났다.
“세상에, 그 탈은 뭐야?”
그 애는 탈을 흔들었다.
“우리 부족이 의식 때 쓰던 탈이야. 시간이 날 때마다 날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만들었던 거지. 만들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어.”
문득 피엑 이모네에서 만났던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그가 사진을 모아 지키려던 정체성과 같은 걸까? 나는 스카이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것 같았다.
“저 사람들에겐 뭐라고 한 거야? 네 제물?”
“다 듣고 있었구나.” 스카이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었다.
“트누는 내가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놨다고, 나는 화평을 좋아하는 요괴니 잡아먹히기 싫으면 차례차례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어. 그리고 오늘 날짜와 그들이 가야 할 길을 알려주었지.”
“잘됐다, 스카이.”
“남은 일당들은 꽤 오래 고생할 거야. 작살 몇 개를 남겨두었으니 굶진 않겠지만.”
사실 그건 상관없었다. 사람들을 납치해 죽이기까지 한 자들이 굶든 말든. 하지만 돌아가는 길에 위해를 가하거나 방해가 될 것 같지 않아 다행이었다.
“리버, 네 아버지는 어떠셔?”
스카이가 아빠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겉으로 보기엔 괜찮은 것 같은데, 정확하게는 모르겠어.”
스카이는 아빠의 코 아래 손을 대어보고 안색을 유심히 살폈다.
“괜찮으신 것 같아. 네게 준 잎사귀는 우리 부족에서 마취제를 대신해서 쓰던 거야. 수면의 효과가 있어 돌아갈 때까지 깨어나시는 일은 없을 거야.”
“다행이다.”
남아있던 걱정이 쌓인 먼지를 훅 분 듯 파스스 흩어졌다. 스카이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내 손을 붙들었다.
“리버, 지금부터 너와 네 아버지를 톤레사프 호 어귀까지 데려다줄 거야. 그곳에서 아버지가 깨어나시는 대로 넌 ‘호수 어귀에 쓰러져있는 아빠를 발견했을 뿐’이라고 말해야 해. 아버지에게도 누구에게도 마찬가지야.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게 어긋난 이야기처럼 들리기 시작할 거야. 뺏 아저씨네서 캠프를 즐기던 소녀가 저 먼 망망대해에서 발견된 것이니까.”
“알겠어. 그렇게 할게.”
“다행인 건 네 아버지가 이곳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실 거라는 거야. 저들은 인질이 도망갈까 봐 여기가 어디인지 절대 말해주지 않았거든. 그다음은 배를 타고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면 돼.”
“고마워, 스카이.”
고맙다는 단어로는 턱 없이 부족할 만큼 모든 게 고마웠다. 나는 그 애를 꽉 껴안았고, 그 애도 나를 꽉 껴안았다.
“고마워, 리버.”
스카이의 고맙다는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어째서? 나는 한 게 없어.”
나를 도와주기 위해 고생을 한 건 스카이였다. 나는 그저 스카이의 옆에 있었을 뿐이다. 내가 고맙다는 말을 들을 만한 자격이 있었나 떠올리는 사이 스카이가 말했다.
“네 덕에 전엔 할 수 없었던 일을 하게 되었어. 혼자 도망쳤던 과거를 되돌릴 수 있게 해줘서, 내가 두렵지 않게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그 애는 진심 어린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스카이의 볼에 쪽 뽀뽀했다. 그 애는 해사하게 웃더니 마찬가지로 내 이마에 꾹 입술을 붙였다 뗐다.
스카이는 어느새 술이 달린 치마와 탈을 가방에 넣고 다시 원래 옷을 입었다. 배가 고파왔다. 우리는 돌아가기 전 만찬으로 통조림 뚜껑을 열었다. 파도가 철썩철썩 치고, 밖에선 사람들의 원망 섞인 목소리가 들리다가 바크와스의 눈치를 보듯 쥐 죽은 듯 조용해지길 반복했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은 평온했지만 중심을 잡을 수 없는 아빠를 등 위에 올린 스카이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나는 그 애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그 애는 전에도 비슷한 일을 해본 적 있어서 익숙하다며 힘들지 않다고 했다.
“다른 사람을 태워서 날아본 적이 있어?”
“응, 아주 예전에.” 스카이는 궁금해하는 내 얼굴을 한 번 보더니 말을 이었다.
“내가 여섯 살 때, 부족이 흩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어. 우리 땅에서 나는 자원을 노리고 쳐들어온 침입자들과 전투를 벌이던 때 수많은 부족민이 죽거나 다쳤고, 나는 이 힘을 이용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부족민들을 안전한 땅으로 옮겨놓았어.”
공동체를 위한 힘. 나는 스카이가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네 힘 역시 부족을 위한 힘이였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신은 일관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특히 내 힘은 죽다 살아나면서 얻은 것이기에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어.”
스카이는 톤레사프 호로 돌아가는 길에 힘을 얻게 된 날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 가족도 다른 부족민들과 마찬가지로 침입자들에게 내몰렸어. 우리가 아까 있었던 절벽보다도 더 높은 벼랑 끝에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내가 서 있었지. 그들은 우릴 죽이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총구는 우리의 가슴을 겨누고 있었어. 그들은 방아쇠를 당기진 않았어. 하지만 기다란 총구로 우릴 밀었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스카이는 그때가 생생한 것처럼 가슴 한가운데를 꾹 눌렀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가장 어린 시절은 새의 탈을 쓰고 춤을 추고 있었을 때야.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떨어지면서 그 춤을 추던 때가 생각났어. 팔을 뻗어 세상의 모든 공기를 주워 담을 것처럼 손에 쥐고, 신성한 영혼을 집어삼키듯 입으로 가져갔지. 죽더라도 평온이 우릴 감쌀 거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어지는 내내 머리를 울렸고, 나는 그렇게 수면과 가까워졌어. 그리고 양옆으로 바다에 빠지는 부모님을 보며 홀로 날아올랐지.”
스카이는 찰나의 순간 동안 눈썹을 찡그렸지만, 곧 모든 걸 순응한 표정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안타깝게도 힘을 받은 건 나뿐이었고 내 힘은 비극으로부터 생겨났지만, 신은 내게 가장 필요했을 때 새의 힘을 부여했던 거야.”
스카이는 말했던 대로 나와 아빠를 톤레사프 호수 어귀에 내려주었다. 스카이가 미리 살펴둔 장소인지 쓸만한 배 몇 척이 있었다. 스카이는 집으로 가는 길에 이 배를 타면 된다고 말했다. 그 애는 가봐야 할 곳이 있다며 아빠와 무사히 돌아가서 곧 만나자고 했다.
나는 누워있는 아빠의 심장에 손을 가져다 댔다. 느리게 뛰던 심장이 이제 나와 비슷한 박자로 뛰고 있었다. 나는 팔을 들어 스카이의 손목을 잡았다.
“날 찾아올 거야?”
가끔 말도 없이 없어져 버리는 스카이였기에 조바심이 난 걸지도 몰랐다.
“널 찾아갈 거야. 그러니 잘 지내고 있어.”
나는 그렇게 아빠가 깨어나길 기다렸다. 어둠의 터널을 지나 푸르스름한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