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2025년 3월 28일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마태복음 10:16)
이 구절은 뱀같이 지혜롭다는 말이 주는 어감 뿐만 아니라 뱀과 비둘기라는 상반되는 특성을 다 가지라고 하시는 말씀 때문에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혜롭다는 건 무엇일까? 그것도 뱀처럼! 뱀을 떠올리면 세상이 말하는 약삭빠름에 더하여 자기는 쏙 피해하면서 다른 이를 미혹에 빠뜨리는 느낌이 있다. 과연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무엇일까? 고민이 많았다.
그러던 중, 현용수 박사님의 책(하부르타식 4차원 영재교육의 비밀) 중에서 ‘슈르드(shrewd) 교육’이라는 장을 읽으며 이 구절의 의미를 다시 묵상하게 되었다.
히브리어 ‘아룸’(עָרוּם), ‘올마’(עֹרְמָה)에서 유래된 이 단어는 단순히 ‘교활함’이 아니라, 악의 올무에 걸리지 않기 위해 자신을 지키는 "절제된 지혜"를 뜻한다.
예수님은 유다의 배신을 처음부터 아셨지만, 그를 정죄하거나 드러내지 않으셨다. 오히려 유다의 발을 씻기셨고, 떡을 손수 건네셨다.
- 예수께서 떡 조각을 찍어 가룟 유다에게 주시니… (요한복음 13:26)
유다의 본 모습을 드러내는 대신, 예수님은 그가 할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셨다.
- 네가 하려는 일을 속히 하라. (요한복음 13:27)
예수님은 악을 피하지 않으셨지만, 악에 말려들지도 않으셨다.
또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는 질문을 할 때마다 되묻는 방식으로 진리를 드러내셨다. 공격적인 말로 대항하지 않으셨다.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마태복음 22:21)
-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요한복음 8:7)
이 모든 응답은 슈르드했다. 예수님은 지혜롭되 순결하셨고, 강하지만 유순하셨다.
어느 날, 오래 알고 지냈던 누군가의 내면을 알게 되었다. 동고동락했던 사람이었지만, 그 안에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
그 사람을 향한 실망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그 사람의 진실에 대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였다. 예전처럼 웃으며 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람의 본 모습을 말해 주어야 할까? 라는 질문이 내면에서 올라왔다. 일단은 예수님이 가룟 유다에게 하신 행동을 마음에 새기기로 한다.
침묵은 비겁함이 아니라, 때로는 진리를 지키는 방식일 수 있다. 상대방이 악의적으로 왜곡하려 하거나, 내 말이 분노나 오해를 불러 일으킬 것이 뻔할 때, 그 순간의 진실은 "침묵" 속에서 더 순수하게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도 빌라도 앞에서 자신을 방어하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침묵을 우리는 비겁함이나 도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의 말은 정의를 구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자신의 감정을 정당화하려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말은 그 자체보다도 말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진리를 드러내는 수단이 될 수도 있고 감정을 분출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혹시라도 내가 정의를 위해 하는 말이 사실은 내 안의 분노, 실망, 억울함을 토로하거나 상대방을 비난하려는 의도로 사용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이 분명 나쁜 사람이고 잘못 되었는데 왜 아무도 말하지 않지?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정의를 위해 말해야지라고 결단하기 전에 하나님께 나의 분노, 실망, 억울함을 먼저 해소하고 아무런 감정이 없을 때 그렇게 하고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슈르드는 교활함이 아니라, 사탄의 올무(내가 분노에 차서 이야기하는 것, 상대방을 미워하는 것 등은 사탄이 좋아하는 것)에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절제된 전략이지 않을까?
진실을 안 후에도 나는 여전히 예배자이고 싶다. 예배처럼 말하고 예배처럼 침묵하고 싶다. 말하되 분노가 아니라 사랑으로 말하고, 침묵하되 비겁함이 아니라 주님 앞에 경건함으로 침묵하고 싶다.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지혜롭기 원합니다. 그러나 나의 지혜가 비웃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순결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순결이 도피나 비겁함이 되지 않게 하소서.
지혜롭지만 그 지혜로 냉철하다 못해 냉정한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또한 순진하게 사랑이 넘쳐 악인의 올무에 넘어가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람들을 상처없이 사랑하고 진실 앞에서 흔들림없으며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게 하소서. 나의 말과 침묵 모두가 주님 앞에 드려지는 예배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