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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친밀한 아버지

고전소설 속 아버지들

by 고은임


‘엄부자모(嚴父慈母, 엄격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는 오래도록 우리 사회 전통적 부모상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러나 최근 이상적 아버지상에 꽤나 많은 변화가 있는 듯하다. 부모 모두가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아이와 안정된 애착을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면서, 깊은 사랑을 전하며 아이와 정서적 친밀감을 형성하는 일이 아버지에게도 요구되고 있다.


이제 아이를 돌보는 능력은 ‘이상적 아버지상’뿐 아니라 ‘이상적 남성상’과도 결부된다. 최근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SBS 드라마 <완벽한 나의 비서>의 남주인공 유은호(이준혁 분)는 ‘완벽한 비서’이기 전에 ‘완벽한 아빠’인데, 그의 ‘완벽한 아빠’로서의 자질과 능력은 워커홀릭 CEO 강지윤(한지민 분)의 비서로 발탁된 핵심 요인일 뿐 아니라, 강지윤이 매료된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 로맨스에서 남주의 돌봄과 공감 능력은 여주에게 큰 매력 포인트로 작동한다.


유교적 가부장제하에서 창작된 고전소설의 아버지들은 대개 위엄을 내세우고 근엄한 태도를 보인다. 그런데 간혹 자애로운 아버지가 등장하기도 한다.


<옥원재합기연>의 소송은 아내가 출산 후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혼자 지극 정성으로 아들 소세경을 키운다. 조선시대 아내 잃은 남성은 양육과 살림을 위해 재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가사와 양육은 전적으로 여성의 몫이었고, 그것을 담당할 여성이 부재할 경우 다른 여성으로 대체하는 일이 당연했던 것이다. 그런데 소송은 주변의 강권에도, 새로 맞은 아내가 혹여 아이에게 상처를 줄까 염려된다며 재혼은 아들이 장성해 가정을 차린 뒤에야 생각해 볼 일이라고 마다한다. 그리곤 매사 아들의 말을 경청하고 그 마음을 섬세히 살피며 양육에 힘쓴다. 그의 자애로운 태도는 며느리와 손자녀에게도 이어지며, 작품 속에서 배려와 공감의 아이콘이 된다.


<쌍천기봉>의 이관성은 아내가 모함을 당해 가문에서 쫓겨나게 되자 몽현, 몽창 두 아들을 돌보게 된다. 영문도 모른 채 어머니와 생이별하게 된 두 아이는 적잖이 힘들어하는데, 특히 두 살배기 몽창은 엄마 품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다가 졸지에 엄마를 잃고 도무지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이제는 아버지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니 이관성은 몽창을 데리고 자기 시작한다. 조선시대 영유아는 친모가 아니더라도 안채의 여성들이 돌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어린 아기를 품고 자는 아버지의 모습은 이색적이다. 가족들 역시 이관성의 부성애를 유별나게 여긴다.


몽창이 삼촌 연성과 함께 놀다가 아버지를 보고 바삐 내달아 붙잡고 크게 반기니, 이관성이 가련하여 무릎에 앉혀 사랑함이 비길 데 없었다. 연성이 이때 여덟 살이었는데 웃으며 말하길, “형이 나갈 때는 제가 몽창에게 보채여 잠을 자지 못하고, 밤마다 한 번씩 형을 부르짖어 우니 도리어 형수는 생각지 않는 것 같더이다. 어찌 가련치 않습니까? 형이 칠 척 대장부로 어린아이 품어 기르는 거동은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할 노릇이며, 이 아이 형을 심히 따르는 것은 주접스럽고 우습도소이다.” (…) 관성이 웃어 말하길, “부자 천성은 인지상정이라, 이 아이 어미 멀리 있고 눈앞에 보이는 게 나뿐인데 따름이 괴이하리오? 너도 혼인이 멀지 않았으니 자식 낳아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보리라.”
<쌍천기봉> 3권


어린 몽창이 삼촌과 놀다가 아버지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반겨 달려드니 이관성이 무릎에 앉혀 애지중지한다. 이에 이관성의 동생들은 몽창이 아버지에게 연연하고, 형은 칠 척 대장부로 아기를 품어 기르는 모양이 우습다며 놀린다. 가족들이 보기에도 이들의 부자 관계가 유별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관성은 부자간 사랑은 인지상정이니 이상할 것 없다며 동생들의 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몽창을 스스럼없이 아끼고 사랑한다.


물론 이관성이 항상 자애롭고 너그럽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엄부로서의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다. 몽창이 방자하게 행동하거나 글공부에 태만하면 엄하게 훈육하기도 한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며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도록 다감하게 대한다. 이관성의 아이 사랑은 몽현과 몽창에게 그대로 대물림되어, 그들도 아이에게 자못 다정하고 곰살맞은 아버지가 된다.


한편 <창란호연록>의 한난희와 장희는 결혼 전후로 여러 갈등을 겪는다. 한난희는 본디 몸이 약했는데 남편 장희와 오랜 시간 갈등하면서 심신이 더 쇠약해지고, 둘째 아이를 조산하게 된다. 열 달을 못 채우고 태어난 아이도, 이미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 출산한 산모도, 모두 몸 상태가 매우 위태로웠다. 조산아는 엄마가 삼칠일을 품어야 건강해질 수 있다는 의원 처방이 내려졌지만 한난희는 잠시도 아이를 안고 있기 힘든 상태였다.

의원이 말하기를, “옛날에도 이런 아이 있다 하더니, 그 어머니가 삼칠일을 품어 지내면 열 달 채워 나온 아이 같아집니다.” 공이 크게 기뻐 왈, “산모가 병들어 능히 품어 보호치 못할 것이니, 그 아비 소임을 해도 해롭지 않겠는가?” 의원 왈, “어머니 품지 못하면 아비가 대신할 수 있으려니와, 장부(丈夫)가 보호하는 태도 소홀할까 염려됩니다.” (…) 장희가 대답하길, “부자지정이 막대하오니 어찌 괴롭더라도 구할 도리 있는데 소홀히 하오리까?” 장희가 아이를 속에 품고 주야로 앉았으니, 유모 젖먹일 때는 젖부리를 들이밀어 먹이고 물러나면 더욱 단단히 품어 주야로 앉아, 밤이라도 한번 움직여 조는 일이 없고 낮에도 그러하니 (…)
아이를 품어 삼칠일이 차니, 과연 기골이 단단해져 옥 같은 골격, 눈 같은 피부가 평범한 아이와 달랐다. 부자가 크게 기뻐 비로소 유모에게 맡겼다.
<창란호연록> 5권


이때 장희가 나선다. 남자가 아기 돌보는 일을 잘할 수 있을지 염려된다는 의원의 말이 무색하게, 장희는 삼칠일 밤낮을 꼬박 아이를 품에 안고서, 혹여 잘못될까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렇게 정성 들여 품은 아기는 삼칠일 후 몰라보게 건강해진다.


갓난아기가 온갖 감각이 예민해져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부모가 아기를 맨살에 맞대고 심장 가까이 안고 있으면 옥시토신이 분비되며 아이의 상태가 좋아진다고 한다. 이를 캥거루 케어(Kangaroo mother care)라고 하는데, 조산아나 저체중아의 상태가 호전되는 데 효과적임은 물론 정상 분만 아기에게도 낯선 외부 환경에서 안정을 찾고 적응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의원의 처방이 바로 ‘캥거루 케어’라 할 수 있는데, 장희는 친모에 비해 돌봄에 서툴 것이라는 통념을 깨고 성심성의껏 아이를 돌보아 건강을 회복시킨다. (실제로도 친모만이 아니라 아버지나 다른 보호자의 캥거루 케어 역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장희는 어머니의 의무이자, 어머니만이 잘할 수 있는 역할이라 여겨졌던 갓난아기 돌보는 일에도 서슴없이 나섰던 것이다.


이 소설들이 향유된 조선시대 아이 보살피는 일이 어머니의 역할만은 아니었다. 특히 상층 가문에서, 유아기 아이는 많은 시간 유모가 돌보았고, 남자아이가 학령기(學齡期)에 이르면 기초적인 교육에서부터 과거 준비에 이르기까지, 남아의 교육은 부친이나 조부, 숙부 등 가문 내 남성 어른이 담당하거나 주관하였다. 확대가족으로 구성된 가문 안에서 아이는 어머니뿐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갓난아기를 돌보거나 아이와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친밀감을 형성하는 일은 아버지보다 어머니 역할로 간주되며 ‘엄부자모’의 전통적 부모관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소송과 이관성, 장희와 같은 인물들은 엄부나 가부장의 권위에 갇히지 않고 양육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아이의 몸과 마음을 케어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특히 소송과 이관성은 자식 교육, 훈육의 문제에만 관심을 보인 것이 아니라 아이의 내면, 정서적 차원의 문제까지 살뜰하게 보살피며 다감하게 교감하는 아버지였다.


양육의 문제가 궁극적으로는 어머니 소관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유가 강조될수록 한편에선 왜곡된 모성이데올로기가 강화되고, 친모의 직접적 양육을 받지 못한 성장 과정은 심각한 결핍의 상태 혹은 불행한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물론 인간의 성장 과정에 있어 양육자의 사랑 가득한 보살핌은 매우 중요하다. 양육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녹록지 않은 일이며, 그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도 아이를 사랑하며 오롯이 성장시키는 것은 중대하고 숭고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반드시 어머니만이 온전히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며, 어머니만의 의무인 것도 아닐 것이다.


가부장의 권위가 중시되며 엄부의 미덕이 추앙된 고전소설 속에도 이토록 다정하고 살뜰한 아버지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이의 몸과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도록 가장 안전하고 따뜻하며 친절한 우주가 되어 주었다.



*참고자료

『옥원재합기연』(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 21권 21책)

『쌍천기봉』(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본 18권 18책)

『창란호연록』(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13권 13책)

고은임, 「<쌍천기봉>에 나타난 양육 양상과 그 의미」, 『동서인문학』 61, 계명대 인문과학연구소, 2021

이지하, 「여성주체적 소설과 모성이데올로기의 파기」,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6,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04

한길연, 「대하소설에 나타나는 부모–자녀관계 연구⑵ —〈옥원재합기연〉을 통해 본 부성의 새로운 가능성」, 『여성문학연구』 51, 한국여성문학학회, 2020

커버이미지 : Pixabay로부터 입수된 Mohamed Hassan님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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