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성록>의 소운성
우리나라 고전소설은 선악구조가 뚜렷하고 인물 형상이 입체적이기보다 평면적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다. 주인공은 선인, 그 주인공 반대 편에 놓인 인물은 악인이라는 구도가 익숙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고전소설도 꽤 많다. 지질한 소년에서 사랑의 히어로로 성장하는 몽룡과, 사랑 앞에서 과감하고 이별 앞에선 발악스러웠다가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춘향이 같이, 입체적이고 실감을 획득한 인물들이 후대 판소리계 소설에 이르러서야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닌 것이다.
17세기 소설인 <소현성록> 별전 <소씨삼대록>의 주인공 소운성은 비범한 영웅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악한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소운성은 어릴 적부터 범상치 않았다. 삼태성을 삼키는 태몽으로 태어난 그는 스승의 가르침이나 글공부에는 관심도 없이 제멋대로 굴기 일쑤였다. 여덟 살이 되도록 글을 배우지 않다가 어느 날 서고에서 병법서 육도삼략(六韜三略)을 보고 혼자 그 내용을 터득하고서는 3년 만에 만 권의 책을 통달한다.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 용모, 언변, 지력, 무력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빠지는 데 없이 출중한 청년이 된다.
그런데 그는 군자의 풍이 다분한 아버지 소현성과 달리 무력을 숭상하고 충동적이며 고집이 셌다. 미색을 탐해 가법을 어기며 창기를 가까이하고, 첫눈에 반한 형강아를 부인으로 삼으려 일을 꾸미기도 한다. 출세욕과 호승심이 강해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고는 어디에서 누구에게든 지는 것을 참지 못한다. 황제의 부당한 명에 분노하며 불쾌감을 숨기지 못하기도 한다.
그의 호방한 무인 기질은 기이한 사건들로 더욱 부각된다. 그는 누구도 길들이지 못한 사나운 말을 단번에 잡아 타 천리를 누비고, 상서로운 소리와 빛을 내는 신비한 보검을 손에 쥐게 된다. 기실 그 보검은 15년 전 어느 도인이 소운성에게 전하라 주고 간 검이었다. 기이한 보검의 출현에 형제들이 다투어 들어보려 하지만, 토르의 망치처럼 소운성 외에 아무도 그 검을 들 수 없었다.
기실 소현성은 아들의 호걸스러운 면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보검을 전해 받고도 오랜 시간 운성에게 전하지 않았던 것은 아들의 무인적 기질을 불편히 여기며 경계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보검이 마치 운성에게 감응하듯 기이한 현상을 보이자, 검이 주인을 찾아갔다며 더 이상 숨기지 않고 검과 얽힌 사연을 말해준다. 그러면서도 생을 마칠 때까지 운성의 호방한 기질을 걱정하며 유언을 남긴다.
“운성은 범사에 아름답기는 하지만 고집이 과도하고 무력을 좋게 여기니 이는 선비의 덕이 아니며 맑은 행실에서 벗어나는 것이어서 내가 늘 기쁘게 여기지 않았다. 내가 죽은 후에라도 너는 마땅히 아비의 유언을 지켜 문덕(文德)을 닦고 무력(武力)을 버려라” <소현성록> 15권 65면.
호승심과 의협심이 강하고 용맹한 소운성의 자질은 국내외의 위기에서 빛을 발한다. 운남국과의 전쟁에 파견되자 뛰어난 검술로 큰 공을 세우고, 산속에서 인간들을 해치는 요괴를 퇴치하며, 부녀자를 겁탈하고 재산을 강탈하는 강도 떼를 무찌른다. 그 밖에도 화려한 공적을 세우며 급기야 왕작을 받기에 이른다. 소운성은 여느 영웅소설의 주인공과 다를 것 없이 영웅적 인물인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일상은 문제투성이이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고집이 세며 호방한 면은 어떤 일을 결기 있게 추진하고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일상의 관계에서 수많은 갈등을 발생시킨다.
소운성이 10세가 되던 해 서조모 석파는 운성의 혈기충천한 기운을 눌러줄 속셈으로, 집안 소녀들에게 앵혈을 찍다가 운성의 팔에도 찍어버린다. 주표(朱標)라고도 하는 앵혈은, 꾀꼬리 피로 여자 팔에 찍은 자국을 말하는데, 성관계를 하면 없어진다 하여 처녀성의 징표로 고전소설에 자주 나온다. 여성의 성을 대상화하며 통제하는 장치인바, 앵혈이 찍힌 운성은 여자들처럼 자신의 성적 순결이 폭로되고 대상화된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며 분노한다. 이에 석파에게 복수심을 품고 앵혈을 없애기 위해 석파의 외조카인 소영을 위협해 강간한다. 소영은 두려움에 떨며 얼어붙은 채 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운성은 첩을 삼아주겠으니 발설하지 말라 이르고 자신의 앵혈이 사라진 것에 “환희”하여 돌아간다. 석파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지만, 혁혁한 가문의 높은 신분 남성이 낮은 신분의 여성에게 가한 성폭력은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에서, 그나마 바랄 수 있는 것은 운성이 소영을 첩으로 삼아 조카 혼삿길이라도 막히지 않는 것이었다.(석파는 서조모, 즉 소운성 조부의 첩으로 서얼 출신이었고, 소영 역시 같은 출신으로 운성보다 성적, 신분적 위계가 한창 낮았다.)
몇 년이 흐른 뒤 소운성이 정식 혼례를 치르고 나서야 석파가 비로소 가문 어른들에게 소영의 이야기를 밝히며 첩으로 들이도록 청한다. 그런데 소영을 첩으로 삼은 운성은 기분 상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소영에게 칼을 들고 죽이겠노라 위협하며 폭력적 언행을 보인다.
소운성은 정실부인들과도 극심한 갈등을 한다. 우선 친구 집에 갔다가 우연히 형강아를 엿보고 반해, 부모 몰래 외조부에게 혼사를 주선해 달라 부탁한다. 예법에 따라 순조롭게 혼사가 성사되는데, 이번엔 명현공주가 조정에서 운성을 보고 반해 그와 혼인하겠다고 나서고, 황명이 내리자 소운성은 형강아와 파혼하고 명현공주와 혼례한다.
강제로 하게 된 공주와의 혼사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소운성뿐 아니라 그 부친도 부당한 황명에 강력히 저항하지만 가문의 안위를 걱정한 조모가 나서며 겨우 혼사가 치러진다. 그러나 운성은 호락호락 응하지 않고, 여자이면서 감히 남편을 직접 고른 명현공주를 향해 ‘흉악한 음녀’라 비난하면서, “공주의 평생을 방해해 황제와 황후의 마음이 밤낮으로 평안치 않게 할 것이고, 또 공주의 인륜을 마치게 하여 부부의 정을 모르게 만들 것”이라 다짐한다.
명현공주는 악녀로 형상화된다. 황가에서 개념도 버릇도 없이 자라, 오만방자하고 무도하며 감정적이다. 좋다고 결혼은 했지만 운성이 자신을 소대하자 곧잘 분노하며 운성 앞에서는 물론 시부모 앞에서도 막말을 내뱉고, 운성이 창기들을 불러 즐기자 그 창기들을 모두 인체(人彘, 한고조 부인 여후가 후궁 척부인을 질투하여 그 수족을 자르고 눈을 파내고 불로 귀를 태우고 말 못 하게 하는 차를 먹인 다음 돼지우리에 집어넣어 ‘인체(人彘, 인간돼지)’라고 부르게 했다고 한다.)로 만들어 버린다. 형강아에 대한 운성의 사랑이 갈수록 커지자 둘 다 죽이려 하기도 한다.
명현공주는 수용되기 어려운 캐릭터이긴 하나 소운성의 적대적 태도는 공주의 악의를 자극하고, 갈등을 악화시키며, 명현공주가 화병으로 사망하는 데 기여한다. 혼인하기 전부터 흉악한 음녀라 지목하며 이를 갈지 않았던가. 소운성은 단 한순간도 공주를 인간적으로 대하며 그 마음을 헤아려 본 적이 없다. 평소 공주에게 반감을 가졌던 이들조차, 공주가 혼인을 해서도 앵혈을 유지한 채 19세 어린 나이로 사망하자 그 죽음을 안타까워했는데, 운성은 도리어 크게 기뻐하며 공주 처소를 곧바로 헐어버린다. 악연이어도 부부였는데 명현공주에게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잔인하고 가혹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형강아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형강아와의 관계에서 역시 소운성의 자기중심적이며 거친 면모는 그대로 드러난다. 형강아는 공주와 달리 예법과 교양을 잘 익힌 요조숙녀이다. 소운성과 시가에 더없이 좋을 아내이자 며느리이지만, 운성이 명현공주와 얽히며 공연히 수난을 겪게 된다. 황명에 의해 시가에서 내쫓겼다가, 공주와의 혼인 생활을 거부하며 고집스레 자신을 찾는 운성의 발걸음에는 친정 전체가 멸문지화를 당할까 두려움에 떤다. 황제의 윤허에 다시 시가에 들어갈 때는 기쁘기보다 걱정이 앞섰다. 명현공주에게 시달릴 앞날이 너무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걱정은 현실이 되어, 기쁨에 못 이겨 형강아 처소만을 찾는 소운성의 행태에 명현공주의 화는 갈수록 커지고, 그 화는 형강아의 목숨까지 노리게 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운성은 자기 좋을 대로만 행동한다.
자신의 안위를 생각해서라도 부디 공주 마음을 헤아리고 그 처소에도 들라는 형강아의 간절한 부탁에도, 운성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형강아를 위로하고 보듬어도 부족할 판에 오히려 형강아가 만남을 거부하며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때면 무력으로 위협하기도 했다. 소운성이 그렇게 공주를 냉대하며 거리낌 없이 형강아만 찾는 행위의 대가는 고스란히 형강아가 치러야 했다. 공주의 폭언과 협박에 시달려야 했고, 목숨이 위험했던 일도 여러 번이었다. 한없이 무력하게 공주와 남편 사이에서 시달렸던 형강아는 목을 매기에 이른다.
다행히 때마침 발견되어 목숨은 구하지만 이후에도 형강아의 수난은 끝나지 않는다. 그를 직접적으로 괴롭히는 것은 명현공주였지만 그런 상황에 처하도록 만든 것은 소운성이었다. 그런데도 운성은 형강아의 두려움과 고통에 놀라울 정도로 무신경했다. 형강아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욕구에만 몰두한 채 강압적 태도를 보이는 일도 잦았다.
그런데 이토록 자기중심적이고 때로는 가학적이며 잔인하기까지 한 소운성은 <소씨삼대록>의 당당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가장 출중하며 멋있는 영웅적 인물로 추앙받는다. 국가적으로나 가문 내에서나, 그리고 남녀관계에서도 히어로의 자리를 꿰찬다.
어째서 이렇게 문제투성이의 인물이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사랑받을 수 있었을까. 이 소설은 특히 여성들이 좋아했던 작품인데 말이다. 우선 소운성의 문제적 면모는 전통적 신분질서와 유교적 가부장제의 사회문화에서는 용인되었던 바였다. 칭찬받을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의 명성과 명예를 크게 실추시킬 일도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만 접근하면 <소씨삼대록>은 공감하기 어렵고 매력적이지 않은 작품이 되어 버린다.
반대로 이 소설이 출중하고 영웅적인 남성의 문제적 면모를 폭로한 작품이라 생각해 보면 흥미롭다. 이 작품이 출현하기 이전의 고전소설 남자 주인공들에게는 큰 결함이 발견되지 않는다. 초창기 소설 <이생규장전>, <만복사저포기> 등의 전기소설 주인공들은 나약하거나 불우한 면이 있더라도 사람을 진정성 있게 대하며 품은 뜻을 지키려 한다. <소씨삼대록>과 비슷한 시기 창작된 <구운몽>, <사씨남정기>, <창선감의록>의 주인공들 역시 올곧은 선인들이다. <구운몽>의 양소유는 여러 여성과 관계 맺으면서도, 모든 만남에 순정을 바치며 모든 이에게 더없이 다감하고 친절하다. <사씨남정기>의 유연수는 교씨의 계략에 휘말려 사씨를 내쫓지만, 사씨가 간통하고 아이를 죽이려 한 악녀라 오해하면서도, 분노를 표출하거나 욕설 한번 하지 않는다. 가문에서 내쫓을 때도 매우 이성적이며 차분하게 예법에 따라 떠나게 한다.
그런데 <소씨삼대록>에는 누구보다 예법을 잘 지키노라 자부하는 상층 사대부 남성들의 민낯이 드러나 있다. 혁혁한 공업을 세우며 사회적 명성이 자자한 남성인물이 권력에 기대어 가정에서 얼마나 자기중심적이며 지질하고 폭력적인지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현성록>, <소씨삼대록> 연작은 그 이전의 소설들과 확연히 다른 인물 형상을 창조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적나라한 폭로에 속이 시원했던지 상층 여성들 사이 인기리에 읽혔고, 이후 비슷한 유형의 소설들이 대거 창작되기에 이른다.
소설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들 한다. 특히 자신의 언어조차 갖는 것이 힘들었던 전통시대 여성들은 허구적 세계에서나마 공감하고 즐거워하며 위로받으면서,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내고 견뎌내었다. 조선시대의 소설은 그렇게 여성들과 함께 성장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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