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아부지의 기름으로 불을 밝혔다니!
아부지를 떠올리다가 내 기억은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나는 기억력이 시원치 않은가 보다. 우리 아들은 세 살때 일도 기억하던데 아무리 연어처럼 빡세게 거슬러 봐야 일곱 살 정도까지 올라 가는 걸 보니 말이다.
아부지는 근골격계가 그닥 좋지 않았던가? 무릎에서 가끔 뼈 부딪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이유를 몰랐다.
어느 날 아부지를 따라 사두실 논에 촐랑촐랑 나섰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해였으니 일곱 살이다.
이른 새벽이었던 것 같은데 어린 것이 왜 그 시각에 논엘 따라 갔는지는 모르겠다.
마을을 벗어나 가파른 고개로 오르기 직전 길 왼편에 커다란 벚나무가 있었다. 벚나무 밑에서 아부지가 내 손을 놓더니 한 손으로 나무 줄기를 짚었다. 그리고는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다른 손으로 무릎을 주물렀다.
-종지기 뼈가 안 움직인다.
왜 그러냐고 묻자 아부지가 말씀하시면서 다리를 빙글빙글 돌렸다. 무릎에서 뽀득뽀득 뼈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것이 신기해서 나도 아부지를 따라 해 보았으나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니는 어리니까 지름이 많고 아부지는 많이 써서 이제 지름이 잘 안 고이는 거다.
아부지가 말했다. 사람 무릎에서 기름이란 것이 나오다니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었다.
내가 물었다.
-그라믄 이때까지 아부지 무릎에서 지름을 짜내 갖고 불을 썼어요?
얼마 후에 고모부랑 아부지가 벌목하러 가는 산에 또 촐랑촐랑 따라 갔다. 아부지가 웃음을 섞어서 고모부랑 그 일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이 놈은 뭐가 될랑가? 생각하는 것이 겁나게 우습단 말시. 그 뒤로 지름 아낄라고 저녁밥 묵자마자 집안에 있는 불이란 불은 다 꺼분단 말이네.
-뭐가 될랑가는 몰라도 확실히 효녀는 효녀요 성님!
아버지의 말을 듣고 그날 내가 떠올린 것은 호롱불을 밝히는 기름, 등유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