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중학교 1학년, 악기 배우기를 이루다.
나는 악기를 잘 다루는 사람이 부럽다.
학교에서 치르는 실기시험 중 가장 떨리던 시간은
미술실기도 체육실기도 아니었다.
음악실기가 있는 날이면 온몸이 굳어버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며
슬슬 배까지 아파오는 것 같았었다.
초등학교 때에는 음악 실기시험이라 하면 무조건 리코더 부르기였다.
왼손잡이인 나는 오른손이 잘 말을 듣지 않는다.
리코더를 불고 있으면 정확한 음이 나오지 않고 늘 바람 빠진 소리가 들렸다.
연습을 아무리 해도 그 실력은 형편없었다.
좀 더 정확히 말을 하자면 오른손은 연습이 문제가 아니라
신체구조 상 잘 되지 않는다는 표현이 맞았다.
외관상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오른손을 사용하지 않고
늘 왼손만 사용하는 아이였었다.
아주 어릴 적 엄마는 그런 내가 너무도 이상해
병원까지 데리고 가서 진료를 받아본 것도 여러 번이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학교 수업 중 하모니카를 배운 적이 있다.
정확히 몇 학년에 처음 배웠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중학교1학년 실기시험이 있던 때에 나는 하모니카를 다룰 수 있었다.
숨을 내뱉고 또 숨을 마시면서 한음씩 나오는 소리가 신기해했던 기억이다.
학교에서 배운 하모니카는 재미도 있어서인지 집에서도 혼자 자주 불어 보았다.
중학교1학년 1학기 음악 실기시험이었나 싶다.
음악선생님께서는 이번 실기시험은 악기로 치른다고 하였다.
악기는 무슨 악기든 상관없으며 음악은 몇 가지 예시를 들어주셨었다.
아주 어려운 곡도 또 아주 쉬운 곳도 아닌 여러 개의 보기를 내주셨던 것 같다.
그 시절 피아노를 배우는 친구들이 많았었다. 그래서 피아노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피아노를 택했다.
별다른 악기를 생각하지 못했거나 악기를 다루지 못하는 친구들은
초등학교때와 다름없이 리코더를 선택하였다.
가장 무난하면서 또 가장 안정적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아무런 고민 없이 하모니카를 선택했었다.
가장 자연스러운 자세로 두 발은 긴장 없이 곧게 서있기만 하면 되었고
두 손은 편안하게 하모니카 양 옆을 잡아주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전에는 뭐 별 거 없고 어려울 것 없어 보이는데 왜 이렇게 힘들어하냐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손가락을 사용하면서 악기를 다뤄야 하는 피아노, 기타, 리코더 같은
악기는 무턱대고 겁이 났었던 기억이다.
한 반에 서른 명이 넘는 인원이 시험을 보기에는 하루 만에 다 볼 수 없었다.
늘 두 번에 나누어 시험을 보았다.
번호로 순번을 정하거나 남, 여로 구분하여 이틀에 걸쳐 시험을 보았다.
시험을 보는 날 모든 악기들이 총동원된 듯했다.
집에서 기타며 플루트를 들고 온 친구도 있었고, 음악실에 있는 피아노를 이용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시험은 시험인지라 그리 편안한 마음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모니카를 부르는 도중에 멈칫하거나 틀렸던 것 같진 않았었다.
다행이었다.
또 한 가지, 그 수많은 악기들 중에 하모니카는 나 혼자 뿐이었단 것이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친구들을 집중시킬 수도 있었다.
우연히 배운 하모니카 악기는 그렇게
중학교 3년 내내 음악 실기시험을 함께 한 가장 귀한 친구가 되었다.
나에게 어울리는 악기를 만날 수 있었던 그 시절 그 음악실 공기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