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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중학교 2학년, 그림 그리기 도전에서 실패하다.

by 신언니 Jan 06. 2025



가끔 내가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화방을 들락날락하며 새로 나온 미술용품을 구경하느라 바빴을 거다.



나는 어릴 적 미술시간을 좋아라 했었다.

미술학원을 다닌 적도 없었다.

친구들 사이에는 예쁜 캐릭터를 잘 그리는 아이도 있었다.

장래희망이 만화가인 친구도 있었다.

그 사이에 이미 진로를 정하고 미술학원을 다니며

자신의 꿈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친구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창의력이 많은 아이는 아니었다.

그저 그림을 잘 그려보고는 싶었지만 그려내고 싶은 그림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다른 사람들이 그려놓은 것을 보고 따라 그려볼 뿐이었다.

그림을 배운 적이 없었기에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따라 그려본 그림이 생각보다 잘 표현되었다 싶으면 뿌듯해했을 뿐이다.


어쩌다 미술시간에 포스터 그리기 수업이 있는 날이면

잘 그려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기도 했던 것 같다.

가장 얇은 붓으로 조심히 , 그리고 차분히 색을 입히는 와중에

조금이라도 삐끗하게 되면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헤매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도저히 수습이 안되면 마커펜이나 매직펜을 이용해

테두리를 정리해 주곤 했더랬다.


어느 날인가. 학교에서 포스터물감을 이용한 그리기 대회를 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확히는 포스터디자인 대회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주 거창한 대회는 아니었던 것 같다.

교내에서 진행하는 대회로 같은 학년 아이들끼리 경기를 펼치는 형식이었던 것 같다.

평일 하루, 다른 친구들은 정상수업을 진행하였고

그리기 대회에 참여하는 친구들은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온전히 대회에 집중하도록 하였다.

조회시간 종이 울리고 1교시가 시작되기 전,

대회에 참여하는 친구들이 학급마다 한, 두 명씩 무리를 지어 미술실로 집합하기 시작하였다.

나 또한 미술실로 향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자만심으로 대회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는지 모르겠다.

그저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도전한 대회에서 나는 큰 실패를 하였다.


1교시 수업 종이 울리고

모든 아이들이 미술실에 모이게 되자, 담당 미술선생님께서 출석을 부르시곤

주제를 바로 칠판에 적기 시작하셨다.

정확한 단어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칠판에 쓰인 글자엔  '자유' 내지는 '날다.'가 포함되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고는 바로 도화지가 개개인에게 배부되었다. 실수할 것을 고려하여 도화지는 한 장이 더 배부되었더랬다.

모두들 도화지를 받자마자 바로 스케치를 해 나갔다.

나는 스케치 연습을 빠르게 해 본 적이 없어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당황스러워 잠시 몸이 굳어 있었다.

주제를 미리 알려준 것도 아닌데 어쩌면 하나같이 빠르게 해 나가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1교시가 끝나기도 전에 다른 친구들은 스케치한 도화지 위에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나는 그 시간까지도 지우고 그리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선생님은 찬찬히 아이들의 그리기 속도를 지켜보며 주의사항도 일러주셨다.

물을 갈러 화장실을 갈 때에는 조심히 가야 하며, 속도가 느린 아이들에게는 시간을 다시 읊어 주셨다.


포스터디자인!

2교시 시작종이 울리고 나서야 나는 스케치를 마쳤다. 그제야 자연스레 아이들의 그림에 눈이 갔다.

어떤 친구는 패턴이 있는 문양디자인으로, 또 어떤 친구는 글자디자인으로 자신들의 그림을 표현하였다.

그들은 역시나 누가 보아도 고학년 수준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친구들의 그림을 보고 내 그림에 눈을 돌리니 그렇게 창피할 수가 없었다.

누가 보아도 초등학생 수준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색을 입혀 나갔다.

쉬는 시간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이 손은 바삐 움직였었다.

그럼에도 다른 아이들이 저만치 앞서나갈 때 나는 아직도 완성도를 높이지 못하였다.


4교시가 끝나고 다른 친구들은 점심을 챙겨 먹으러 잠시 자리를 비우고 각자의 교실로 향했다.

그 시각 나는 사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거의 거르다시피 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약 점심시간을 활용하지 못했더라면 작품제출을 포기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간간히 친구들이 미술실로 찾아와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을 구경하고 가긴 하였지만

점심시간이 되자 식사를 마친 많은 친구들은 우르르 끝도 없이 구경을 하러 왔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이 예민해져만 갔던 기억이다.

다행히도 선생님께서는 친구들 그림 그리는데 방해가 될 수 있으니 돌아가자고 말씀을 해주셨다.

5교시가 되니 그림을 완성하는 친구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작품을 제출하는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더랬다.

나는 6교시 종이 울리기 직전에서야 작품을 제출할 수 있었다.

작품을 제출한 친구들은 각자의 자리를 정리 정돈한 후 바로 자신들의 교실로 돌아갔다.

나 또한 자리를 치우고 교실로 향했다.

자리로 돌아가 앉은 나에게 친구들은 잘 그리고 왔냐며 모든 시선을 보내주었다.

그 기대감에 미숙했던 나의 그림실력을 느끼고 돌아온 하루의 시간을 말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하굣길이 무거울 뿐이었다.


그날 내가 느낀 패배감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자만에 빠졌던 나의 오만이 부끄러웠다.

좋아하는 것을 다 잘할 수 없음을 절실히 알려준 하루였다.


아직도 나는 가끔 내가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본다.


  


끼적임, 그리고 끄적임.

내가 좋아하는 것! 그러나 잘하지 못하는 것!! 그래도 잘해보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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