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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지 Dec 04. 2024

죽을 용기가 없어서 제주로 도망치다.

(1) 

두 아이의 연이은 희귀병 진단, 갑작스러운 상황을 마주한 충격, 마음을 추스를만한 여유 없이 24시간 해내야 하는 간병, 한순간에 무너진 일상, 가정 내외에서 끊임없이 터지는 사건들, 멀어진 부부 사이, 턱 끝까지 차오른 숨.      


아이들을 돌보다가 우연히 고개가 거실로 향할 때면 그 너머의 베란다 창문이 더 크게 보였다. 두 시간마다 식사를 챙겨야 하니 주방에 자주 들락거렸는데, 때로는 날카로운 과도 끝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그래도 금세 ‘아차 이건 아니지’ 하며 고개를 저었다. 남편은 운전하다가 중앙선 너머의 맞은편에서 큰 화물트럭이 올 때마다 운전대를 왼쪽으로 세게 돌리고 싶다는 말과, 고요한 새벽에 아이들의 전분물을 챙기라는 알람 소리가 울리면 이대로 지구가 터져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도저히 더 이상 이대로 버틸 수가 없었다. 네 명이 동시에, 한 번에, 깔끔하게 세상에서 지워지고 싶었는데 그럴 용기가 없었다. 우선 이 재수 없는 집구석에서 가장 멀리 도망가기로 했다. 가장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니 신혼여행이었다. 같은 숙소에 덜컥 한 달을 예약했고, 그곳은 하필 제주도였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때 할 수 있던 세상을 향한 가장 큰 반항이었다.      



(2)

드디어 출발하는 날 아침이 밝았다. 안 그래도 매일 밤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조건인데 큰 일정을 앞두니 더욱 편히 쉬지 못한 상태였다. 그 와중에도 마음 한구석에선 ‘설렌다’라는 감정이 슬며시 피어올랐다. 제주로 옮기는 발걸음이 비록 ‘도망’이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여행과 휴식이 되어주기를 기대했나 보다. 심지어 다녀오면 무언가 크게 바뀌는 기적을 바라기도 했다. 항공권을 교환하는데 일반석에서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아이들은 한 시간 정도의 비행을 잘 견뎌주었다. 첫째 아이는 챙겨온 장난감에 푹 빠졌고, 둘째 아이는 아기띠 안에서 방긋방긋 웃었다. 시작부터 좋았다. 아, 역시 떠나는 게 정답이었구나. 제주는 내게 좋은 기운을 주는구나!     


제주 공항 근처의 밀린 도로를 빠져나와 한참을 달리다 보면 어느새 건물 높이가 점점 낮아진다. 낮아지다가, 사이의 간격이 조금씩 멀어지다가, 어느새 건물이 보이지 않는 동네에 이른다. 시야를 막는 것 없이 오직 초록과 파랑만이 존재하는 길을 달리니 이제야 제주에 도착한 것이 실감 났다. 마음이 편안해져서 창문을 살짝 열고 깊은숨을 들이켜려는 순간 첫째 아이가 울먹였다. “엄마 여기 이상해요. 집에 가고 싶어요.” ‘아, 망했다. 이게 아닌데. 그런데 어쩌지? 지금 그 집에 가는 중인걸. 한 달 동안 살 집.’      



(3)

차로 한 시간 정도 달리니 숙소에 도착했다. 신혼여행으로 왔을 때는 완전한 여행의 느낌이었는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그때와는 아주 달랐다. 서울에서 큰 사업에 실패하고 시골로 도망치듯 내려온 드라마 속 주인공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병원에서 ‘몇 개월 남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공기 좋은 곳에서 기적을 바라는 드라마 속 주인공의 기분일까? 이런 소소한 감성에 젖을 여유도 없이 정신을 차려야 했다. 차 안에는 유모차 두 대를 비롯한 여러 개의 짐 상자가 가득 실려 있었다. 도망자치고는 철저하게 준비한 짐들이었다. 문제는 건물 안의 엘리베이터를 타기까지 반 층 정도의 계단이 있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나와 아이들을 먼저 숙소로 올려보내고 혼자서 짐을 옮겨보겠다고 했다. 남편에게는 미안했지만, 우리 둘 중에 누군가는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고 다른 누군가 짐을 옮겨야 할 상황이라서 그 결정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과 먼저 올라가 한껏 들뜬 마음으로 방문을 열었다. 헉. 생각보다 너무 좁았다. 살던 집의 반의반 규모였다. 신혼여행 때 남편과 둘이 왔을 때는 넓게 느껴졌는데 넷이 오니 너무 작았다. 하지만 큰 아이는 감탄했다. 

“이야! 정말 멋지다! 여기 누구 집이에요?” 

“주원아, 이 집 어때? 이제 여기가 우리 집이야.”

“여기가 주원이 집이에요? 그러면 여기가 제주도예요? 주원이 집 좋아요! 제주도 좋아요!”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살던 집보다 훨씬 작고 장난감도 거의 없는 텅 빈 숙소이지만 ‘여기 멋지다’라고 반복하는 아이 덕분에 한숨 돌렸다.     


그러는 사이에 남편은 혼자서 모든 짐을 숙소로 올렸다. 아무리 성인 남자여도 한 번에 옮길 수 없는 양이다 보니 주차장에서 숙소까지 혼자서 여러 번 오르내렸다. 남편이 없었다면 이번 여행은 시작조차 못 했을 것이다. 가족을 위한 마음으로 애써준 남편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런 마음에 숙소가 작다는 말은 굳이 꺼내지 않았다. 이렇게 배려하는 마음은 서로 같겠지. 그동안은 상황이 힘들어서 그랬던 거겠지. 이번 기회로 부부가 되던 초심을 찾고, 다시금 단단해지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첫째 날 일정은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정리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4)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에서 서둘러 배를 채웠다. 네 명이 순서대로 씻고 자려고 누웠다. 잠자리에 예민한 남편은 장소와 이불 모두 낯설어서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다른 감정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펼쳐질 날들에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어쩌면 그동안 마음 기댈 곳이 없었는데 판타지 세계에 들어온 듯한 생각에 살짝 흥분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부모 결정에 이끌려온 아이들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긴장되기도 했다. 당장 내일부터 한 달간 어린이집을 보내지도 못하고, 육아를 잠시 부탁할 사람도 없다.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낯선 곳에서 두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불안이 들었다. 


그건 마치 낯선 이불의 감촉이 차가우면서도 포근한 것과 같았다. 잠든 두 아이를 번갈아 내려다보았다. 집에서 자던 모습과 똑같았다. 새벽에 울릴 알람도 똑같았다. 그저 여기에 머무르는 동안 아이들이 아프지 않기 많을, 저혈당에 빠지지 않기만을, 그 일로 큰 병원에 갈 일만 없기를 바랐다. 그거면 된다. 더 바랄 것이 없다. 여기까지 와서도 나는 그것만을 바랐다.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사이에 첫 번째 알람이 울렸고 두 아이에게 전분물을 먹였다. 희미한 간접 등에 의지한 어둠 속에서 낯선 이불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이불 끄트머리에 실밥 하나가 삐죽 튀어나왔다. 그 실밥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너도 내 처지와 같구나. 멋진 이불에 합류하지 못하고 혼자 삐죽 튀어나왔구나. 생각하다가 시선이 이불의 가운데 쪽으로 갔다. 천은 아주 가느다란 실이 무수히 많이 모여 가로세로로 단단하게 짜인 것이다. 삐죽 튀어나온 한 가닥의 실로는 이런 형태를 낼 수가 없다. 마치 우리 넷 같았다. 이번 경험을 통해 삐죽 튀어나왔던 삶에서, 저 이불 한가운데의 삶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실밥을 탁 뜯어서 끊어버리려다가 손을 멈추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길다. 꼭 지켜야 할 일정도 없었다. 말 그대로 자유로운 조건이니 매사에 서두르지 말고 하루하루를 여유롭고 천천히 보내기로 다짐했다. 이불 한가운데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것 또한 말이다.      


그렇게 첫 번째 밤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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