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가 한 달 동안 머문 동네는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이었다. 세탁실 창문을 열면 성산일출봉이 정면으로 눈에 담기고, 바다 냄새가 실린 바람이 두 뺨에 스친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하고 경건한 시간이었다. 이 느낌이 좋아서 매일 아침 창문을 열었고, 겨우 1~2분이지만 이 순간을 만끽했다. 또한 이따금 뛰어내리고 싶던 베란다 창문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하는 고마운 창문이었다. 구름, 성산일출봉, 듬성듬성 남은 유채꽃, 무밭, 잡초더미, 텅 빈 2차선 도로, 새 지저귀는 소리, 닭 울음소리, 주인집의 늙은 리트리버의 짖는 소리를 직접 확인하며 집을 떠나 다른 곳에 와 있음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공간뿐 아니라 시간까지도 다른 시대로 옮겨진 기분이었다. 눈에 보이고 뺨에 스치는 모든 것이 우리만을 위해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판타지 세계의 주인공이라는 주문을 끊임없이 외웠다. 이 마법이 풀리지 않길 바랐다.
그날의 날씨를 예측하는 목적도 있었다. 아무리 일기예보가 한 시간 단위로 예측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제주도 날씨는 그렇지 않다. 핸드폰에는 해님이 방긋 웃고 있는데 실제로는 비가 내리기도 하고, 그 반대이기도 하다. 그렇게 날씨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후 하루치의 일정을 정한다. 보통은 오늘 하루, 길게는 내일까지만 생각한다. 24시간 식이 시간표대로 쳇바퀴 굴러가는 하루, 어제인지 오늘인지 구분되지 않는 날들, 식이 시간표의 가로세로 선들이 감옥의 쇠창살이 되어 그 안에 갇힌 내 모습, 몸과 마음이 모두 조이는 날들을 살아왔다. 제주에서는 하루 이틀의 계획만 세우며 즉흥적으로 지내는 사실이 내겐 일탈처럼 느껴졌다. 식이 시간표는 그대로인데 공간만 옮겨졌다고 해서 이런 기분이 든다는 사실이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오전 햇살이 좋으니까 따뜻한 낮에 외부 활동을 해야겠다’ 혹은 ‘아침부터 어둑하니까 일단 실내 활동을 하다가 오후에 날씨를 보고 다시 장소를 이동해야겠다’라는 식이었다. 하루가 온전히 우리를 위해 열려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매일 아침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더욱 일부러 창문을 열었고, 매번 아침 간지럽고 벅찬 기분을 즐겼다.
그때쯤 우리 집 남자 세 명이 한 명씩 차례로 깨기 시작한다.
(2)
“오늘은 어디 갈까?”
남편이 부스스 일어나서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내게 묻는다.
미리 일어나서 날씨를 확인한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한다.
“아침부터 햇볕이 따뜻하고 공기가 포근해. 바람도 안 불어. 오전에 동화마을에 가서 아이들이랑 뛰어놀자. 점심은 내가 미리 봐둔 근처 한식집 있거든. 후기 사진 보니까 밑반찬도 우리 아이들이 고민 없이 먹을 수 있는 것들이더라고. 아이들 식사 시간에 맞춰서 한 끼 먹으면 될 것 같아. 드라이브할 겸 30분 정도 차를 타고 김녕으로 넘어가자. 지난번 주원이가 좋아했던 물고기 카페에 한 번 더 들르자. 그럼 시간과 동선이 딱 맞을 거야. 지금부터 준비하면 되겠다!”
“그래, 좋아. 애들아, 옷 갈아입자!”
즐겁고 유쾌한 대화 같지만, 머릿속에서는 바쁘게 시간 계산기가 째깍째깍 돌아간다. 우선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한 끼 해야 한다. 먹은 시간을 확인한 후, 그다음에 전분물 마실 시간에 알람을 맞춰둔다. 동화마을에서 식당으로 이동하는 시간까지 계산한 후에야 동화마을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정해진다. 머릿속으로는 하루의 식이 시간표를 계산하고, 동시에 두 손은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저울에 전분 가루 통을 올리고 영점조절을 한 후 정확한 용량을 담아낸다. 몇 타임 분량, 혹시나 흘릴 것을 대비한 여유 분량까지 두 아이 몫을 준비한다. 전분물을 거부할 때 대체할 간식도 챙긴다. 기저귀, 물티슈, 여벌 옷 보통 아이들에게 필요한 준비물은 물론이다. 이렇게 준비를 마치면 이미 시간이 훌쩍 지났다. 동화마을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만큼 말이다. 할 수 없이 동화마을 가기를 포기한다. 아침부터 기세가 한풀 꺾인 채 하루를 시작한다.
이렇듯 우리에게 즉흥은 불가능이다. 당원병 간호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식이요법. 그게 힘들어서 도망친 건데 떠나온 곳에서도 같은 이유로 힘들었다. (이날 이후에도 송당리에 있는 제주 동화마을은 결국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이곳 때문에 제주를 다시 방문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 제주를 가게 된다면 꼭 가보고 싶다.)
물론 매일 이렇게 서러운 건 아니었다. 예정한 관광지에서 즐겁게 지낸 날이 더 많다. 하지만 그런 날엔 식사가 문제다. 어느 날은 주변에 아이가 먹을 만한 메뉴가 없었다. 남편과 둘이었다면 삼각김밥을 먹어도 훌륭했을 텐데, 터무니없이 비싼 관광지 물가로 온종일 식사를 때우기도 했다. 고등어구이, 성게미역국, 보말미역국, 고기국수. 앞으로 몇 년은 안 먹어도 그 맛들이 입 안에서 생생하게 느껴질 것 같다. 지겹지만 어쩔 수 없이 어제와 같은 메뉴를 시켜 아이들을 먼저 먹인다. 우리가 밥을 먹기 시작하면 첫째 아이는 자기 배가 채워졌으니 당장 나가자고 보챈다. 유튜브도 무용지물이다. 다른 손님들의 눈치를 보느라 허겁지겁 먹어서 체하나, 한 입도 먹지도 못하고 나가나 매한가지였다.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면서도 비싸고 뻔한 맛의 메뉴를 주문하곤 했다.
(3)
숙소에서 차를 타면 아쿠아플라넷까지 2분, 섭지코지까지 4분, 성산일출봉까지 6분, 성산항까지 7분이 걸린다. 부지런한 관광객은 성산읍에서 굳이 숙박하지 않아도 하루 안에 모든 곳을 둘러볼 수 있다. 심지어 성산항에서 배를 타고 우도 관광까지 다녀오기도 한다. 보통은 하루, 길어봤자 이틀이면 다 둘러볼 수 있는 동네에 우리는 한 달을 머물렀다.
즉흥 여행이 불가능한 우리가 관광지 한 코스를 포기하고 나면, 유모차를 밀고 동네를 산책했다. 천천히 걷다 보니 그동안 차를 타고 주요 관광지만 돌아다닐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돌담 아래에 할머니 두세 분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제주 방언을 듣고 싶어서 일부러 발걸음을 더 느리게 했지만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내용은 모르지만, 표정과 말투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느긋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당신들의 모습에 만족해하는 듯 보였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추어 내가 그 장면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걷지 않았으면 결코 보지 못했을 장면들을 보면서 심리적 안정을 느꼈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했던 관광지에 대해 아무런 아쉬움이 없었다. ‘딱 이 골목까지만, 아니 저 골목까지만’이라고 생각하며 고요한 골목을 어슬렁어슬렁 걸었다. 물론 처음 가는 길이었고 지도도 켜지 않았다. ‘시골 돌담길이 다 이어지겠지 뭐’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이 닫는 대로 걸었다. 작고, 낡고, 조용하고, 멈춘 듯한 풍경에서 나름의 여유를 느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제주 시골 특유의 고요함 덕분에 내면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낯선 곳에 놓인 우리 가족의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원래 살던 집에서는 인식하기 어려웠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들은 이후에 건강한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켜켜이 쌓아 올린 돌담, 제주 특유의 흰 모서리의 지붕, 이름 모를 해산물이 널려있는 주택 마당, 심지어 살랑살랑 흔들리는 유채꽃까지 눈에 들어왔다. 날씨는 좋고, 발걸음은 느리고, 딱히 정해진 일정 없이 천천히 걷다 보니, 피곤함에 절어 살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됐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주변을 돌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가던 날들, 더 멋있어 보이는 직장으로 옮기려고 허덕이던 날들, 아직 임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복직 후 승진을 위한 계획까지 미리 세우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바쁘게 살다가 출산 후에도 신생아 육아하느라 여전히 정신이 없었다. 첫째 아이의 돌쯤, 육아에 여유가 생기려고 하니 희귀병을 진단받았다. 쉬지 못하고 또다시 숨이 막히던 날들이었다. 그렇게 최근 몇 년간은 몸과 마음에 여유 없이 지내왔음을 깨달았다. 며칠 간격으로 반복되는 시골 동네 골목길 산책을 통해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는 경험을 했다. 이후에는 일부러 천천히 사는 방법을 터득하게 됐다.
또 다른 발견도 있었다. 골목길의 구옥들이 겉으로 보기에 모두 가정집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아닌 때도 있었다. 식당, 카페, 사진관, 심지어 요가원도 있었다. 그런 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일도 즐거웠다. 제주가 좋아서 무작정 내려온 후에 할 줄 아는 게 사진찍기밖에 없어서 용돈을 벌다 보니 어느덧 경력 10년이 됐다는 사진사, 제주살이를 온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고향에서 직업을 가진 거였던 고깃집 청년, 우리처럼 한달살이를 왔다는 가족,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맞춰 일부러 입도했다는 가족 등 각자의 삶은 달랐다. 모든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각자의 사연을 갖고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남의 삶과 비교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또 다른 재밌는 점도 있었다. 두 아이와 함께 움직이니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우리 가족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른 채 아이라는 존재 자체로 경계 없이, 편견 없이, 예쁘게만 바라봐주었다. 불쌍하다거나 측은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사실 ‘우리 아이들은 다른 아이와 달라, 우리 가정은 다른 가정과 달라, (불쌍한 처지야)’라고 생각하며 우리 가정과 세상 사이에 스스로 선을 그었다. 그 울타리 안에 갇히기를 스스로 자처했던 날들이었다.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한 본능이었다. 그래서 웃지 않았고, 남들의 웃는 모습 역시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미소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랜만에 평범한 대접을 받는 게 낯설면서도 포근했다. 아무 편견 없이 아이의 눈빛과 미소에 똑같이 화답해주는 그 찰나가 너무 행복했다. 어쩌면 그 평범한 대접은 내 마음가짐에 달린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자연스럽게 닫힌 마음을 조금씩 열렸고 타인이 들어올 수 있는 연습이 되었다. 물론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절대 쉽지만은 않았다. 여러 번의 반복을 위해 오랜 시간도 필요했다. 제주살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이 마음가짐을 잊지 말고 가까운 지인들 속에서 차근차근 연습하기로 다짐했다. 우선 타인과 눈을 마주치는 일부터 연습해야 했다.
(4)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첫째 아이가 “엄마 졸려요”라고 말한다. “거의 다 왔어, 조금만 참아”라고 알려줬지만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숨소리가 바뀐다. 싸한 마음에 뒤를 돌아보면 두 아이 모두 잠들어 있다. 이럴 때는 ‘이럴 수가!’가 아니라 ‘앗싸!’를 외친다. 대낮에 두 아이 모두 잠들었다니? 남편과 나만 깨어있다니? 이건 일주일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자유시간이다. 엄청난 해방감이 몰려온다. 물론 아이들만 두고 차에서 내릴 수도 없고, 잠든 아이들을 숙소로 옮길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둘만의 데이트가 시작된다.
경치 좋은 곳에 잠시 차를 세우고 한 명이 커피 두 잔을 사서 차로 되돌아온다. 차 안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우리 둘만의 풍경 좋은 카페가 된다. 그동안 함께 밥을 먹을 시간은 고사하고 짧은 대화를 나눌 여유조차 없었다. 비로소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의 사랑이 식은 게 아니었다. 각자 외로웠고 서로를 그리워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노력하는 마음도 똑같았다. 2교대 하는 동료의 삶이 아니라 이렇게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쌓였던 오해가 풀리며 이 사람이라면 이 힘든 삶을 함께 걸어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두 아이가 카시트에서 잠이 들 때마다 해안도로를 달리며 드라이브를 즐겼다.
성산읍 근처의 해안도로는 광치기 해변을 달려 섭지코지로 가는 도로만 알고 있었다. 찾아보니 딱히 해안도로의 이름도 없었고 그저 ‘섭지코지 입구’일 뿐이었다. 아이들이 깰 때까지 같은 도로를 돌고 또 돌았다. 돌다 보니 바다를 가운데 둔 채 맞은편에도 왠지 차도가 있는 것 같았다. 동네 이름을 모르니 그저 감에 의지한 채 무작정 그쪽으로 향했다. 남편이 ‘우리 둘이 왔으면 저기서 맥주 한잔하면 참 좋겠는데’라고 말했던 다람쥐 포차를 끼고 좌회전하여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니 굉장한 장면이 펼쳐졌다! 좁은 2차선이었고 차를 되돌릴 만한 면적도 되지 않았다. 무작정 달렸다. 차량의 왼쪽으로 펼쳐지는 넓은 바다를 만끽했다. 섭지코지 쪽에서 볼 때는 잔잔한 물결이었는데, 반대편에서 바라보니 깊고 거센 파도였다. 그렇게 20분 정도 달리니 해안도로가 끝나고 한 블록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왔다. 빠져나오니 표선 해수욕장 이정표가 보였다. 다시 해안도로로 들어가서 반대로 20분을 되돌아오면 아이들이 슬슬 낮잠에서 깨어난다. 남편과 나는 만족스러운 데이트였다는 눈빛을 찡긋 주고받는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우리가 달린 도로는 성산에서 온평을 거쳐 표선까지 이르는 해안도로였다. 내가 성산의 안내 책자를 쓴다면 광치기 해변보다 이 해안도로를 더 강조하고 싶다.
비록 아이들 때문에 완벽하진 않았지만 반대로, 아이들이 없었다면 이런 기회조차도 없었을 것이다. 제주에서 펼쳐질 날들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