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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지 Dec 13. 2024

제주 바다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

(1)

나는 이십 대 초반부터 바다를 좋아했다. 평생 바다 냄새가 닿을 수 없는 내륙 지방에서 줄곧 자랐지만 어릴 적부터 친정 아빠가 서해에 자주 데려가 주셔서 그런지 바다가 친근하다. 특히 가벼운 기분 전환이나 힘든 일을 마친 후의 보상이 필요할 땐 동해, 서해, 남해, 제주를 막론하고 무조건 바다를 찾는다. 바다는 내게 어떤 조언도 충고도 잔소리도 하지 않고 묵묵히 내 이야기만을 들어준다. 그러고는 썰물과 함께 내 마음의 짐을 가지고 가고, 밀물과 함께 위로와 응원을 건넨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파도의 일렁거림은 마치 거대한 바다가 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바다를 다녀올 때마다 일상을 살아 낼 원동력을 얻곤 했다. 그래서 바다가 좋다. 때로는 아무런 조언 없이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것,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해 주는 것이 가장 힘이 된다.


숙소에서 광치기해변까지 걸으면 12분이 걸렸다. 바다와 이만큼 가까운 동네에 언제 살아보겠냐며 매일 오후마다 광치기해변을 찾았다. 남편과 나는 각자 유모차 한 대씩 담당하여 두 아이를 태우고 우리만의 장소로 걸어간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위치와 떨어져 있지만 우리끼리 즐기기엔 충분했다. 도착하면 당연하게 맥주 한 캔을 딴다. 네 명이 바다를 향해 나란히 앉아 각자의 시선으로 바다를 즐겼다. 내가 좋아하는 바다를 남편과 아이들도 좋아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첫째 아이는 그저 세 돌이 채 되지 않은 장난꾸러기 남자아이일 뿐이었다. “우와, 바다다! 상어네 집이다!”라고 외치며 잽싸게 유모차를 이탈한다. 모래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양손에 챙겨온 공룡과 상어 장난감을 모래에 파묻었다가 파헤치는 놀이를 하며 즐거워한다. 둘째 아이는 형을 따라 “에베베베” 옹알이하거나 곤히 자곤 했다. 이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맥주 한 캔을 금세 비운 남편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던 걸까?      


나는 매일 이 시간마다 바다와 대화를 나눴다. 지난 시절처럼 바다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내 이야기만을 들어줬다.      


‘바다야, 오늘은 첫째 아이가 좋아할 것 같아서 동물 먹이 주기를 하러 갔는데 땅바닥이 흙바닥이라서 싫다는 황당한 핑계로 내 품에 안긴 채 내려오지를 않았어. 사실 남편과 나는 동물을 무서워하거든. 그런데도 아이를 위해서 기꺼이 준비한 시간이었는데 아이가 땅을 한 번도 밟지 않느라 몸은 몸대로 지치고 시설은 즐기지도 못했어. 남편도 한숨만 푹푹 내쉬더라고. 완전 망한 거지. 그래도 SNS에는 즐겁게 지낸 것처럼 올렸어.’      


‘바다야, 오늘은 사진관에 갔어. 넷이 제대로 된 사진을 남기고 싶어서 제주에 오기 전부터 여러 사진관에 비싼 돈을 주고 예약했거든. 그런데 첫째 아이가 예상치 못한 말썽을 부리고 자리를 이탈해서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몰라. 남편은 힘들다고, 이딴 거 왜 하냐고, 그냥 돈 날리고 나가자고 화를 내기도 했어. 그래도 SNS에는 행복한 가족사진이라고 올렸어.’     


‘바다야, 어젯밤에는 어두운 숙소에 나랑 아이들밖에 없었어. 남편이 또 우울과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답답하다며 숙소를 뛰쳐나갔거든. 밖은 어둡고 비도 오는데 어딜 간다는 건지. 걱정은 됐지만 내가 따라 나가면 아이들은 누가 돌보나 싶어서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어. 새벽에 아이들에게 전분물을 먹이려고 일어나보니 거실에 공룡 장난감 새것이 올려져 있고 남편은 술 냄새를 풍기며 자고 있더라고.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남편이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움직이는 것뿐이었어. 아, 이불은 덮어줬어. 이럴 거면 여기에 왜 온 걸까? 그래도 살던 집보다 나은 것 같기도 하고.’     


바다는 내게 왜 그랬느냐고 묻지 않았다.     


바다와 조용한 대화를 마치면 남편과 대화를 나눴다. 오늘의 일정을 되돌아보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우리 가족의 패턴과 각자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용량에 대해 나눴다. 오늘 지낸 이야기를 마치면 내일 일정과 앞으로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멀어진 사이를, 서서히 좁혀갔다.


강렬한 오후 햇살과 함께하는 바다도, 선선한 바람과 함께하는 바다도 좋았다. 육지에 살면서 수시로 보고 싶었던 이 풍경을 원 없이 누렸다. 바로 이것이 나의 원동력이기에 마음에 가득 채웠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우리 넷이 함께 매일 나눴던 시간을 각자 다르게 기억하겠지만 그 기억을 오래 간직해주길 바란다.      



(2)

숙소에서 12분 정도 걸으면 신양섭지 해수욕장에 떡 하니 위치한 대형 카페에 도착한다. 1층은 반지하의 느낌이라서 창밖의 시야는 아쉽지만, 산책로와 연결되는 출입문이 있다. 2층은 삼면이 유리창으로 둘러쳐져 있고 고운 모래와 반짝이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3층에 올라가면 더 이상 모래사장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하늘과 바다, 그 경계 없는 넓은 푸르름만 보인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마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다. 바로 그 자리가 좋았다. 그 푸르름에 나의 짐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파도에 나의 불안정도 함께 떠내려 보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도록 먼바다로 보내는 연습을 했다. 멍하니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가 마음이 차분해지면 시선을 테이블로 내린다. 그러면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이 있다.      


원래 살던 집을 떠나올 때 혹시나 하고 챙겨온 책이 몇 권 있었다. 모두 여행 에세이다. 우리가족의 결정이 도망이 아니라 여행이라는 주문을 외우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숙소에서는 절대 읽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아이를 동반한 여행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헛된 착각이었다. 가끔 남편과 나의 의견이 다르거나, 두 아이의 컨디션이 다를 때는 남편과 아이를 한 명씩 맡아 2인 1조로 흩어진다. 이럴 때면 나는 무조건 이 카페로 향했다. 헛된 착각에서 벗어나 드디어 바다를 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살면서 무수히 망상했는데, 오랜 로망을 성취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첫째던, 둘째던, 어쨌든 아이와 함께이니 오롯이 책에 집중할 순 없다. 바다 한번, 책 한번, 아이 한번, 정신없이 시선을 돌린다. 이러려고 온 건가 싶어질 정도였지만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내 눈앞에 한 번에 펼쳐졌으니 그것만으로도 벅찼다.      


처음에는 모든 감각이 창밖 풍경으로만 향했는데 여러 번 오다 보니 점점 다른 게 보이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직원의 얼굴로, 메뉴판으로, 길게 줄지은 손님들로, 각 테이블마다의 이야기들로 시선이 이어졌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 그곳은 누군가에겐 일상이기도, 잠시 스치는 여행이기도, 나처럼 도망이나 방랑이기도 할 것이다. 같은 풍경 앞에서도 각자 다른 삶을 품고 있다. 지금의 ‘나’는 어떤 것을 얻어 갈까? 그동안 딸, 학생, 사회 초년생으로서 바라보던 바다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여러 번의 방문 중 첫째와 둘이서 들렀을 때다. 1층 출입문을 통해 나가면 바다와 카페 건물 사이에 좁은 산책길이 있다. 그 길을 함께 걷고 돌아가려는데 아이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더니 어느새 내 옆에서 사라졌다. 뒤돌아보니 쪼그려 앉아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엄마, 여기 무당벌레예요.”

“그러네, 엄마도 신기하다. 일어나, 이제 가자.”

“어? 어, 어! 엄마! 무당벌레가 날아갔어요!”     


무당벌레가 보란 듯이 날개를 활짝 펴고 다른 풀잎으로 날아갔다. 그런 모습은 나도 처음 봤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결코 보지 못했을 소중한 장면. 마치 내 인생 같았다.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앞만 보고 달려가던 날들. 예상치 못한 두 아이의 희귀병 진단, 그 것 때문에 인생 계획이 무너졌다고, 느려졌다고, 이런 불행이 어디 있냐고 원망하던 날들. 신이 있다면 목표만 바라보지 말고 나를 둘러싼 풍경을 누리며, 소중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나를 돌보며 천천히 살아가라고 이런 상황을 주었을 거란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3)

나는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집안일을 할 때도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는 세탁기를 먼저 돌려놓고, 설거지를 한 후, 물기가 마를 동안 바닥을 청소한다. 그러면 세탁기가 끝났다는 알람이 울리고 세탁물을 건조기로 옮겨놓고 외출하고 돌아오면 빨랫감도 마르고 식기류도 건조되어 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무엇이든 빠르게 하려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첫째 아이 덕분에, 하필 그 시간에 그곳에 있던 무당벌레 덕분에 ‘삶을 조금은 천천히 대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이미 바쁠 대로 바빠진 마음의 속도를 스스로 줄이는 방법은 모른다. 그저 우리 아이들을 따라 해보기로 했다. 아이가 부르면 발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따라가 보기로. 시선이 한곳에 머무르던 천천히 옮겨지던 아이의 속도에 맞춰보기로. 멈춘 곳에서 발견한 것이 작은 것일지라도 그 순간을 충분히 누리기로.      


또한 아이들은 노는 것, 먹는 것, 자는 것, 그 어느 부분에서도 현재의 즐거움을 취한다. 본인을 즐겁게 하는 모든 것들을 미루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엄마, 이것 좀 보세요!” “엄마, 같이 놀아요!” 라며 자신의 느낀 기쁨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누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보다 웃음이 많은가보다. 나도 아이들처럼 ‘행복하기’를 미루지 않기로 했다.      


‘그래.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이 시간을, 이 바람을, 이 햇살을, 아이의 웃음소리를 고유의 속도대로 느끼자. 이 바닷바람을 깊게 들어 마시고 천천히 걷자.’     


아이는 종종 나와 눈을 맞추며 미소로 말한다.

‘엄마도 지금 나랑 똑같은 것을 느껴?’     


‘응. 그래서 행복해.’     


바다의 고요가 내게 주는 위로가 분명히 있다. 바다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것은 분명 바다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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