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차에서 “윤지야!” 하는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또 바꿨어?” 아빠였다. 매년 차를 바꾸던 아빠 덕분에 좋은 점이 많았다. 영월, 공주, 부여, 경주, 부산 등 주말마다 전국 여행을 다녔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집에서 꽤 먼 곳으로 배정되었다. 아빠는 기꺼이 등하교를 도맡아 주셨다. 늦은 시간 아빠 차에 타면 따뜻한 우유와 빵이 기다리고 있었다. 운전면허를 땄을 때는 아빠와 둘이서 도로 주행 연습을 핑계로 코스모스가 핀 길을 따라 드라이브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런 아빠가 몇 년 전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잦은 접촉사고, 급정거, 급발진. 수없이 들렀던 마트 앞을 그냥 지나치기도 하고,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와도 멈춰야 한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채 앞차만 따라 달릴 때도 있다.
이제는 아빠와 자리를 바꿔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십여 년간 장롱 속에 묵혀뒀던 면허증의 먼지를 턴다. 이제는 내가, 코스모스 길과 산과 바다로 아빠를 모시고 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