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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쓰레기통

채워지지 않는 보물상자

by Yuni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떻게 보면 이 두 가지의 질문은 겉모습은 다를지 몰라도 속에 담긴 의미는 같을 것이다. 가장 필요하다 여김에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건 보통은 가장 필요한 일이 가장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것은 마음 쓰레기통이라 불려졌다. 채워만 가고 비워지지 않는 마법의 쓰레기통.


가장 어두운 길을 끝도 없이 걷던 시절 나는 내 마음 쓰레기통을 비울 수 있는 무언가를 애타게 기다렸다.

점점 가득 채워져만 가 결국엔 터져버릴 것 같았던 내 마음속 가장 거대한 마법상자. 터지지 않게 누르기 바빴던 그때 모든 걸 아는 사이라고 자부했던 누군가의 마음속에도 아주 커다란 어둠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너무나도 커져버린 어둠이 그녀의 마음속 마법상자를 가득 채워 불안했을까. 나는 그녀에게 내가 그토록 바랬던 마음 쓰레기통을 비울 수 있는 곳이 되어주겠다 결심했다. 누가 누구를 위하는 거냐고?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그러기엔 내 안의 공간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것을. 하지만 현재를 이겨내고 있는 사람보다 더 간절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나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 확신했다.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말이다.


앞서 말한 쓰레기통과 다른 의미의 마음 쓰레기통도 존재한다. 오로지 비움을 위한, 바닥이 없어 채워지지 않는 보물상자. 아무것도 없이 채워지지 않는데 무슨 보물상자냐고 묻는다면 감히 당당히 말하겠다. 바닥이 없는 존재 자체로도 살면서 가장 귀한 보물이 될 것이라고. 그녀는 마음속 가득 찼던 어둠을 바닥이 없는 이 보물상자 속으로 하나씩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그 무게만큼이나 서서히 가벼워진 마음속은 내가 봐도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맑았다. 마음이 정신을 지배한다는 말 들어본 적 있는가? 맑아진 마음으로 머릿속까지 맑게 만드는 그녀의 현명함에 오랜만에 내 안에서 커다란 종소리가 울렸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스스로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에 자신만의 보물상자를 찾을지도 모른다. 비록 다 비우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가벼워진 마음에 맑음이 스며드는 순간 우리는 희망이라는 것을 얻는다. 그 희망이 더 나아가 누군가의 머릿속에도 나처럼 커다란 종소리를 울려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부디 나보다 더 큰 종소리로 마음과 머릿속에 맑음이 스며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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