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함의 탈을 쓴 특별함
'고민을 들어드립니다.'라는 문구가 담긴 소설책들을 서점에서 종종 보곤 한다. 그와 관련된 이미 많은 종류의 책들이 있음에도 왜 자꾸만 나오는 것일까? 사람들이 위로받기를 원하는 방법 중 가장 최고라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민이란 건 시간이 흘렀을 때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그저 고민의 탈을 쓴 다른 무언가 란 사실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내 고민을 아니 고민의 탈을 쓴 무언가를 들어주었을 때 가장 큰 위로를 받게 된다. 마치 마음 쓰레기통을 비우는 것처럼.
주변의 어둠이 깊어짐에는 고민이라는 것이 반드시 존재한다. 고민이 생각이 되고 그 생각이 실타래처럼 얽혀 한 덩어리가 되었을 때 그것이 바로 돌덩이 인 셈이다. 내 마음에 무거움으로 온통 가득 차게 되는 존재. 서로가 똘똘 뭉쳐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가 되기까지 오랜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크기만큼이나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잊을 것 같을 때에 귀신같이 나타나 '나 여기 있어!'라고 외치는 듯한 어리석은 돌덩이들. 이 때문에
고민을 아주 잘 전달하지도 그렇다고 상대방의 고민을 잘 들어주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위치에 늘 내가 있었다. 고민을 시간과 함께 흘려보내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아 두기만 하는 너무나 큰 고민을 품은 채 말이다.
어차피 고민이니까 해결됨을 바라지 않고 그냥 둬버리면 마음 편하지 않나? 그게 그렇게 어렵나? 하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너무나 마음 불편하게.
하지만 여기서 하나 확실한 건 사람들은 고민을 하면서도 스스로가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나조차도 그 고민에 대해 무슨 선택을 할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이미 정해놓고 고민하기 시작하니까. 이것 만큼이나 아이러니한 것이 세상에 존재할까? 나는 그저 누군가가 들어주길 원했다. 그것이야 말로 소소함의 탈을 쓴 가장 특별한 위로임을 알기에 항상 간절히 바라 왔을지도 모른다. 이제 탈을 벗길 차례다. 이상한 것 투성이인 세상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