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언어를 통과한다

언어는 다리이자, 나를 지키는 방패

by 슬로하라


나는 오늘도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상점에서 인사를 건넨다.


소통은 여전히 짧고 제한적이다. 하지만 그 제한 속에서 나는 천천히 단어를 쌓고 있다. 길가의 간판, 계산대 직원의 짧은 질문, 지나가는 누군가의 대화들 가운데 선명한 몇 단어들. 모든 말은 이제 조금씩 내 풍경의 일부가 되고 있다. 문장은 여전히 짧고, 내가 하는 말은 대화라기보다 단순한 전달과 수용에 가깝다. 어떤 날은 계산대 직원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해 답답한 얼굴을 짓곤 했다. 익숙한 상황에서도 처음처럼 말문이 막히곤 했다. 반대로, 어떤 날은 가벼운 인사에 미소가 돌아오기도 하고, 수줍은 한마디가 사소하지만 오래 남는 다정함으로 남기도 한다.


이러한 일상에서 언어는 다리를 놓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벽을 만들기도 한다.


남편과 자전거를 타던 길 위에서다.

낯선 얼굴이 내게 짧은 조롱을 던졌다. “치잉-채엥_초옹.” 아시아인을 흉내 낸 상투적인 발음이었다. 장난스러운 리듬은 너무도 무례하게 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순간, 발이 굳고 얼굴이 붉어졌다. 더군다나 이곳에서 처음 마주한 불쾌함이었다. 나는 당황해 다급히 “Ne!”를 내뱉었지만, 이어 말하고 싶었던 “나 한국인이에요”는 목끝에서 멈췄다. 굳은 발은 저도 모르게 긴장을 밟으며 허겁지겁 앞으로 나아갔다.


그날, 나는 알았다. 언어는 나를 세상과 잇는 다리이자, 나를 지켜내야 하는 방패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수많은 말 대신 단 하나의 문장을 끝없이 되뇌었다.

“Ne govori tako! To je rasističen.”

그렇게 말하지 마, 그건 인종차별이야.


아직 입 밖에 낸 적은 없지만, 이제는 준비돼 있다. 두려움보다 먼저 도착하도록.


나는 여전히 이곳의 언어를 조금씩 건너고 있다. 말은 여전히 서툴지만, 하루가 끝나면 머릿속에는 새로운 단어 하나가 더 남아 있다. 그걸로 충분하다. 언어 위에 계절이 쌓이듯, 나의 말도 천천히 쌓여가고 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낯선 땅에서 이방인의 시간을 지나오며, 글로 남긴 첫 번째 걸음을 갈무리합니다.
끝까지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슬로하라 언어일기’ 두 번째 걸음,
<덜 여문 언어의 자리>는 매주 월요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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