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데이트, 내가 리드한다
화이트톤인 가게의 테이블은 열 개가 채 되지 않았고, 늦은 시간인만큼 손님이 몇 되지 않았다. 모두 20대 커플들이었다. 쓱 둘러본 엄마는 역시 이런 곳엔 연인들만 있다며 속삭였다. 젊은 커플들만 있는 곳에 앉아 있는 자신을 신기해하는 모습이었다. 묘해지는 기분을 떨치며 “그러네!” 하고 별스럽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리고는 괜히 어깨를 쭉 펴고 메뉴판을 펼쳤다. 자신 있게 미리 봐둔 메뉴들로 주문을 주도했다. 메인 메뉴 두 개를 턱턱 정하고 음료를 고르라고 약간은 떵떵거리듯 얘기했다. 물로도 괜찮다는 말에 괜히 사이다도 마시라며 주문을 추가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차피 결제는 엄마가 했는데.
묘한 기분의 정체는 곧 밝혀졌다. 에어컨 바람이 차갑다는 엄마의 속삭임에 직원분께 온도를 높여달라고 부탁했다. 평소였다면 직접 부탁했을 엄마였지만 그날은 달랐다. ’ 젊은 애들‘의 공간에서 나는 엄마의 보호자였다. 음식을 주문하거나 작은 부탁을 할 때 엄만 굳이 나를 거쳤다. 어려워하는 온라인 결제나 회원가입이 아닌데도말이다. 직원분이 추가로 챙겨주신 담요를 받자마자 본능적으로 내게 건네는 순간을 제외하고. 그 찰나에는 ‘엄마의 아이’라는 내 원위치로 돌아갔다.
점차 감상적이어지던 그때, 갬성 가득한 음식이 나왔다. 납작한 접시 위 자작하게 담긴 강된장에 동그랗게 올린 케일쌈밥, 전복구이가 올라간 흑임자 크림 리조또. 침이 꼴딱꼴딱 넘어갔다. 음식이 그저 예쁘기만 할까 봐. 주변에 음식을 만든 사람이 있든 말든 냉철한 평가를 하는 엄마의 입맛을 만족시키지 못할까 봐. 내가 만든 음식으로 안성재 셰프의 평가를 받게 되더라도 그만큼 떨리진 않았을 것이다. 숟가락을 들 생각도 못하고 엄마의 수저질만 응시했다. 첫 입을 삼키자마자 나온 감탄사는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였다. 긍정적인 반응을 하사 받으니 그제야 안도가 됐다. 생각지도 못했던 반응은 메뉴의 순위였다. 내가 믿고 있던 메뉴는 강된장 케일쌈밥이었다. 담백하고 깔끔한 한식을 좋아하는 데다 엄마가 이미 먹어본 메뉴였기 때문이다. 아는 맛이 제일 맛있는 법인데 처음 보는 플레이팅이니 신선하기도 하겠지. 거만한 추측은 빗나갔다. 흑임자 크림 리조또의 압승이었다. 동그랗게 움츠러든 모습으로 남아있는 케일쌈밥 두어 개를 본체만체하고 크림소스를 긁어드셨다. 느끼하지 않냐는 질문은 꺼내기가 뻘쭘할 정도였다. 너넨 이렇게 예쁘고 맛있는 걸 먹냐는 총 감상평 역시 날 민망하게 했다.
통통해진 배를 내밀고 한 바퀴 가볍게 돈 행궁동도 합격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대부분의 간판이 빛을 잃었음에도 동네가 참 예쁘다셨다. 훨씬 예쁜 행궁동의 모습을 아는 나는 다음에도 오자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아빠도 좋아할 것 같단 말에 다음에 같이 오자는 말을 했었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행궁동에 다시 가지 않았다. 나는 아직 갈 길이 먼가 싶다가도 지난 길을 되돌아보니 그래도 꽤나 걸어왔다는 생각도 든다. 지난 여름휴가에 비하면.
*첫 데이트를 한 식당, ‘미가공’.
음식이 정갈하고 맛있다. 깔끔한 화장실이 가게 내부에 있어서 편리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와 음식으로 데이트를 계획했다면, 리드해야 한다
-첫 데이트는 하루 풀코스보단 한 끼 식사로 가볍게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식사는 부모님 취향 한 그릇에 새로움 한 스푼을 추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