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데이트 상대
우리 집에는 전지전능한 두 존재가 산다. 고장군과 조물주. 나를 낳으시고 기르신 두 거물. 둘 중 누가 엄마이고 아빠일지 맞춰보자.
고장군은 걸음걸이부터 장군감이다.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이보다 멋진 X세대가 있었을까 싶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쩍쩍 벌어지는 큰 보폭, 20대가 경보로 쫓아가야 겨우 맞추는 속도. 우리 집 세대주라는 지위와 가족의 정신적 지주라는 명예를 동시에 갖고 있다. 가정의 서열 1위이자 대소사를 최종 결제하시는 분이다.
조물주는 아담과 이브보다 더 개성 있는 우리 집 남매를 빚어낸 분이다. 고장군의 박력 넘치는 유전자가 너무 세게 발현되지 않도록 부드러운 성향의 유전자를 선물해 주셨다. 가족들의 간식과 야식거리가 떨어지지 않게 늘 신경 쓰고 채워놓는다. 갈등으로 집이 얼어붙으면 이 방 저 방을 오가며 애교를 부리는 분위기 메이커이기도 하다.
이 에세이는 엄마 고장군, 아빠 조물주와 데이트하는 불속성 효녀의 이야기다.
*불속성 효녀
: 포켓몬스터 등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불속성’을 이용해 ‘불효녀’를 귀엽게 풀어낸 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