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가 낳은 부작용
왜 그런 일 다들 한 번쯤 있지 않나.
갑자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좋은 아이디어다 싶어서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한다.
깊이 생각하고 또 떠올리다
이내 그 생각을 그만둔다.
어느 순간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흩어진다.
그 생각은 언제 내 머릿속을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고요히 사라진다.
사실 생각만으로 시작도 전에 이미 두려워진 거다.
마음속으로 돌려본 시뮬레이션 속에 터무니없다 느껴지는 부분에 결국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어쩌면 인생을 어느 정도 알게 된 우리 어른에게는 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에겐 어떨까?
"내가 할래. 나나나 이거 잘해."
내 눈엔 한참 어설프고 못해 보이는데도 잘한다며 계속 도전하는 같은 반 아이.
"아- 나는 저건 못해."
그 아이와 비슷한 실력일 것 같은데 해보지도 않고 우선 못한다고 말하곤 포기하는 우리 아이.
겉으로는 "못하면 어때~ 한번 도전해 보는 거지~"
라고 말하며 별거 아니라는 듯 웃어 보이지만 속에서는 한라산을 만들고도 남을 용암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아- 나 오늘도 얘한테 뒤통수 한 대 맞은 것 같다. 끝내 도전을 안 하네.
새로운 반 배정이 끝나고, 유치원 선생님과의 사전 면담자리에 나는 선생님께
"아이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 보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요청드렸다.
그만큼 나에게는 꽤나 중요한 요소였고, 못하더라도 가족과 선생님의 응원으로 극복하길 기원했다.
주원이를 육아하면서 해보지도 않고 못한다고 포기하는 아이의 기질이 나는 늘 아쉬웠다.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나는 세상의 중심이었고, 대부분 잘했고, 잘하고 싶어서 늘 앞서 도전했는데.
주원이는 왜 이렇게 시도 자체를 거부할까.
도대체 언제쯤 대부분의 아이들처럼 "내가- 내가 할래-"의 시기가 우리 주원이에게도 찾아오는 걸까-
육아책을 보면 그런 시기가 꼭 있다던데 여섯 살이 되도록 왜 우리 주원이에게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는 걸까.
아침마다 긍정확언을 읽어주며 마음을 다독여보기도 하고,
누구나 처음부터 잘하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도 수시로 하며 용기를 줘보지만,
기회가 오면 아이는 언제나 도전을 어려워했다.
어느 날, 오빠는 주원이의 그런 면모가 어쩌면 똑똑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경험이 많은 우리의 어른처럼 말이다.
듣고 보니 해보지도 않고 머릿속으로 생각해 보고 안될 거 같으면 쉽게 포기하는 건 정말 그래서일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영재아들은 낯설고 새로운 분야에 대해 두려워하는 경향이 심한 편이라고 한다.
영재의 특징인 완벽주의에서 기인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주원이는 아침 등원 직전에 영어 단어카드를 5-6장 돌려보며 녹음을 한다.
(습관 형성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사실 웩슬러 검사 이후 습관 형성을 위해 하던 교육을 절반으로 줄였다. 줄여서 5장)
해당 카드를 플레이메이트에 넣으면 단어가 먼저 나오고, 곧이어 그 단어를 활용한 문장 음성이 나온다.
나는 그 단어와 문장을 녹음하곤 한다.
아이가 문장 순서에 실수가 있을 경우 나는,
"오~ 거의 다 왔어~ 근데 순서가 바뀐 거 같네! 한 번만 다시 해보자." 하며 용기를 북돋아주고는 카드를 다시 넣는다.
그리고 아이가 또 비슷한 실수를 하면 내 일처럼 아쉬워했다.
또롱-
맞은편에 앉아 실수를 아쉬워하는 엄마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의 그 모습이 주원이에게 어떻게 비쳤을지에 대해 말이다.
아. 이건 아이의 실수가 아니라 내 실수구나.
하는 깨달음이 팍- 왔다.
이 순간의 정답은 어쩌면 실패했지만 다시 도전하는 모습에 감격하고 기뻐해줬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 맞는 것 같다. 역시 거저 없는 건 없다.
상황을 찬찬히 돌이켜봤더니 문제점을 찾았다.
그 문제점이 부모인 나에게 있었다는 것도.
사실 아이는 검사 결과 이전에도 영재였고,
이후에도 여전히 영재다.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과 몰랐던 것의 차이일 뿐.
알게 되었으니 분명 도움 되는 점을 부모로서의 노력을 돌아봐야 한다.
현재로서 완벽주의로 인해 도전을 하지 않는 아이를 위해 내린 나의 노력에 대한 결론을 말해보자면,
'아이가 무언가에 성공했을 때 기뻐하는 것보다, 실패해도 또 도전했을 때 더 크게 기뻐하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