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들과 다른 것 같아요.
조기입학을 시키겠다는 나의 마음 이면에는 아이를 키우면서 그동안 쌓인 수많은 '등원거부'들이 분명 한 몫한다. 그저 무작정 떼를 쓰던 어린 날들에 이어 나름대로 논리적인 이유까지 들먹이며 거부하는 지금에까지.
현재에 와서는 "우리 유치원은 노는 유치원이야."라는 프레임을 계속 씌어 나름 놀러 간다는 마인드로 가지만 오늘 아침에 한 말을 들어보니 썩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오는 건 아닌 게 분명하다.
"오늘은 유치원에서 선생님한테 안 혼났으면 좋겠어요~"
"혼나지 않고 놀면 시간이 빨리 지나가잖아요. 그럼 유치원이 재밌었다는 건데."
"아~ 선생님한테 혼나면 기분이 안 좋아서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생각하는 거야?"
규칙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걸 무진장 싫어하는 네가 혼나는 일은 무엇일까 궁금하면서도 제 입으로 말하면 속상할지도 모르니. 그저 넘어간다.
영재아의 가장 큰 문제점을 꼽자면 성장 불균형이다. 또래 아이들이 발달순서에 어느 정도 맞게 균형을 갖추어 성장을 한다면 주원이는 시작점부터 그들과 달랐다. 옆에서 보는 부모인 우리도 그리 심하게 느꼈는데, 본인은 얼마나 오롯이 온몸으로 그걸 느꼈을까.
뛰어난 인지능력과 언어이해능력에 비해 비교적 느린 신체적인 발달. 또래와 맞지 않는 수준에서 오는 적응하기 힘든 사회성. 그저 이 아이는 밸런스가 문제가 있는 건데.
참 그 밸런스를 맞추기란 쉽지 않다.
개성이 강한 우리 아이. 그렇다 보니 공동체 생활이 어렵다. 보통의 아이들보다 대게 지능이 높은 편이라 학교에 가서도 수업 시간이 지루하고 따분해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냥 이 모든 것들은 한마디로 적응이 어렵다는 이야기.
주원이는 늘 등원 거부를 심하게 해 왔고,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다 보니 왜 우리 아이만 유독-이라는 생각도 종종 했다.
이웃집 언니는 본인이 평소 놀아주지 않아서 아이가 어린이집을 너무 좋아한다며, 집이 재미없어야 어린이집이 재밌는 거라는 이야기도 조언처럼 해주었었다.
본질적인 해결방법이 될 순 없겠지만, 순간은 내가 잘 놀아줘서 유치원이 재미없나-?라는 생각도 한번 해봤다.
심한 등원 거부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다양한 육아서를 팠다. 울면서 등원하는 나날들에 마음은 늘상 뒤죽박죽이었다.
겨우 그나마 조금 도움이 되었던 건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오래 걸리는 편인 아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자 그날에 있을 어린이집 일과를 이야기해 주는 것뿐이었다.
주원이는 어린이집에 등원을 해도 또래와 어울리기보다는 주로 선생님과의 소통에만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때도 여러모로 답답한 마음이 많이 들었지만, 아직 친구들이 말이 좀 느려서 그렇지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유치원에서도 아이와 또래친구들의 격차는 여전했다. 친구들과 조금 어울려 놀지만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행동을 하는 친구들을 보는 걸 너무 불편해했다.
이번 검사 결과를 통해 안 사실은 나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흐름대로 간 것뿐인데도 내가 애한테 무슨 짓을 한 걸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되었다.
주원이의 경우 5학년 아이가 3학년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현재 보통 또래 친구들보다 2년이 빠르단다. 조기입학을 하게 되어도 반에서 본인이 롤모델 삼을만한 아이가 겨우 한 명에 그칠 거란다. 그런런 아이가 현 상황 속에서 그들과 어울리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주원이는 또래보다 작다. 내가 보는 모습 속엔 늘 친구들은 힘이 더 세고, 운동신경도 훨씬 좋았다. 그래서 그들이 운동신경이 좋은 것처럼 주원이도 언어가 빠른 거겠지-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지능의 폭은 눈에 보이는 운동신경보다 훨씬 훨씬 큰 격차가 있다고 한다. 보통 눈에는 피지컬적인 것들만 보여서 오해하기 쉽다고.
심지어 그 떨어지는 사회성과 운동신경조차 아이가 월반을 하면 확 많이 따라 올라간다고 한다. 세상 속에 잘 어우러지는 주원이가 되길 바라는 나에게 어쩌면 아이의 조기입학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아닐 수 없다.
그날의 상담지. 선생님은 나에게 열심히 왜 조기입학이 필요한지 이 하나로 모두 정리해 주셨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충분히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