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만 4살
존재론적 고민
죽음, 삶의 의미, 인류의 멸망과 같은 철학적이고 쉽게 답하기 어려운 심오한 문제들에 대한 고심을 깊게 하면서 고통스러워하는 형태.
유치원에서 '나'에 대한 주제로 책을 만들어 가는 숙제가 있었다.
연필 잡기를 유난히 싫어하는 주원이와 어떻게 하면 즐겁게 이 숙제를 할 수 있을까 싶어 고민을 했다.
나는 우선 주원이가 유치원에서 가져온 책 속의 모든 질문을 건네며 조용히 아이의 대답을 듣고 가만히 기록했다.
나는 글씨 쓰기를 유독 힘들어하는 주원이와 이 과제를 재미있게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질문을 토대로 관련 이미지들을 인쇄해 함께 오려 붙일 작정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질문의 대답에 그만 말문이 막혔다.
마지막 질문 '요즘 나의 고민은?'
아이의 답변 '엄마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답변을 하자면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지? 엄마가 죽었는데 아빠도 죽으면 어떡하지?'였다.
이 대답에 나는 어떤 그림을 뽑아주어야 할까. 고민만 하다 유도 질문을 던졌다.
"너 요즘 종이 접기가 어렵다고 하지 않았어? 그걸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은 어때?"
"아 그건 내 고민이 아니에요."
돌아오는 답변은 단호했다.
어떤 이미지를 뽑아주어야 할까. 해골이라도 붙여야 하나.
고민만 하던 나는 결국 마지막 질문은 채우지 못하고 보냈다.
평소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이리 가까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무슨 아이가 이렇게 죽음에 대해 관심을 보이나. 나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어떻게 답변해야 하나 고민도 많이 됐었다.
결국 나도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에 아이의 궁금증들을 해결해 줄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아이와 함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태도를 가졌다.
죽음과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읽어 보기도 하고.
증조할머니를 모신 절. 경주 할아버지를 모신 납골당에 대한 설명도 궁금해하는 만큼 반복해서 여러 번 해주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죽음을 어떻게 인지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나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에 대한 이야기 등 굉장히 다양한 정보를 함께 접했다.
사실 나를 놀라게 하는 아이의 고민은 비단 죽음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지구의 탄생이나 지구의 환경 문제. 그로 인해 아직 오지도 않은 지구의 멸망 등 어른들도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 늘 심도 깊은 고민을 하고 또 걱정을 했다.
슬프게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지구를 위해 쓰레기를 함께 주워주고, 아이의 궁금증을 해결할만한 책을 함께 읽어주는 것뿐이었다.
다행히도 아이는 점차 아이만의 답을 어느 정도 스스로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영재 아이들은 이른 시기부터 존재론적 고민을 꽤 많이, 꽤나 깊이 한다고 한다.
그들의 특성이 그러하다 하면 주원이는 앞으로도 수 없이 이런 고민을 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잘 모르는 미지의 세계, 나도 답을 내기 어려운 철학적인 문제들에 난감한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지만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며, 진지한 태도로 함께 답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기울여줘야겠다.
지치지 말아야지. 그리고 놀라지 말아야지.
예상하기 힘든 아이를 키우는 나는 오늘도 엄마니까 마음을 다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