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받기 D-20에 다니던 회사를 돌연 관두는 인간이 있다?
올해 초, 사 년 정도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그동안 갖지 못했던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자, 여행도 다녀오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던 중, 예상하지 못한 큰 규모의 프로젝트 제안을 받게 되었다. 단, 조건은 내 회사로 투자금을 받아 진행해야 하는 프로젝트라는 점. 회사를 차리는 것이 최종 목표이긴 했으나 업계도 어렵고, 아직 갈 길이 남았다는 생각에 다른 회사로의 이직을 계획하고 있던 내가 퇴사 두 달 만에 회사를 차릴 기회가 생겨버린 것이다.
그 제안은 나만의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내 평생의 목표를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인생 계획을 앞당긴다는 생각으로 짧게 고민 후, 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회사를 차리기도 전에 좋은 프로젝트를 제안받았다는 설렘보단 내 회사의 앞날을 위해 프로젝트를 잘 해내야겠다는 책임감이 나를 먼저 압도했다. 일을 잘하려면, 좋은 조력자를 만나야 한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업무의 합을 빠르게 맞출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조력자라는 생각으로, 순간 뇌리에 스치는 나의 '좋은 조력자'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걸었다. 바로 6살 위였던 친언니 같은 ‘그녀.’
직장이 있던 상태였지만, 항상 퇴사를 목전에 두던 그녀였고, 이직 기회만을 기민하게 모색 중이던 때에 이러한 나의 연락이 누구보다 반가웠을 사람이다. 다만 문제는 그녀가 입사를 한 지 11개월 하고도 열흘이 되던 시점이었고, 잔여 연차를 다 소진해도 1년을 채우지 못해 퇴직금을 받기는 어려웠던 상황. 따지고 보면 며칠만 더 출근하면 한 달치 월급이 거저 나오는 셈인데, 그렇게 도망가듯 회사를 관두겠다고 선언한 것부터가 우리 동업의 가장 큰 적신호였다. 그때의 나는 신이 우리의 존재를 드디어 알아봐 주시고 꿈과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를 주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저 당신이 다니기 싫던 직장을 보기 좋은 사유로 관둘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어림도 없지, 역시 신께선 쉽게 기회를 주시지 않는다. 오히려 시련을 통해 더 단단해질 기회만을 주실뿐.
나의 동업자 그녀는 어떠한 회사를 다니던 항상 불만을 달고 살았다. 직장인들 중에 본인 직장 좋다며 떠들고 다니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회사를 관두는 일은 직장인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 또한 너무 힘들게 다니던 직장이었지만 매일 속으로 밥 먹듯 욕하면서도 4년을 다닌 후에야 속 시원하게 퇴사를 할 수 있었다. 프리랜서 때도 마찬가지였다. 관두는 것에 대한 부담이 비교적 덜한 프리랜서일 때조차도 짜증 나는 일들은 더 많았지만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상 절대 관두는 법은 없었다.
일터가 힘든 것은 디폴트 값이다. 일이나 터를 바꿀 것이 아니라 나를 바꿔야 일이 그나마 즐거워질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직장에서 어느 정도 본인만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룰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반면 그녀는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장이든 프리랜서 프로젝트든 돌연 관두기 일쑤였고, 처음부터 계획된 퇴사가 아니었기에 1-2년 쉬는 것이 패턴으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그런 그녀가 부러웠다. 결혼도 해서 남편도 있고 나이도 적지 않은 그녀였지만, 인생을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이 멋대로 살지 못하는 나에게는 쿨함을 득도한 도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급기야 놀다 보니 더 격렬히 놀기 위해서 대출까지 땡겨받는 그녀였으니 경이롭고 담대한 욜로족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가 능력이 출중하나 직장 운이 좋지 않은 편이며, 끌어주는 멘토 같은 인물이 없다 보니 업계에서 잘 풀리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 또한 직장운이나 인복이 내 로또 숫자처럼 하나도 맞는 게 없었던 시기였기에 더욱 그녀의 입장에 공감하여 감정이입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악물고 버티며 회사를 다녔다. 당시 나는 관둬야만 하는 직장을 억지로 붙들며 미련하게 회사를 다니는 인물이었고 그런 유해한 직장의 굴레에서 그녀는 나보다 조금 더 빠르게 이별하고 나름대로 편한 삶의 방식을 찾은 것이리라 생각하며 그러한 그녀의 자기애적 에티튜드를 부러워했던 것이다.
결국 이렇게 밥 먹듯 회사를 관두던 지저분한 그녀의 이력이 우리의 동업을 위협하기에 이르러서야 그것은 쿨함이나 높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자기애가 아닌, 무능과 이기심을 기반으로 한 왜곡된 자기 주관적 관점이 낳은 사회부적응자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회사 설립 직후 큰 투자금이 당장 입금되어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신생회사라는 이유로 보증보험사에 가서 대면 심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심사과정에서 단발적으로만 일하고 도망쳐버리는 그녀의 습관이 모두 들통나버렸고, 대출을 습관적으로 받던 그녀의 재산관리 수준까지 탄로 나 버려 우리가 무슨 준범죄자가 된 듯 앉아있는 상황이 꽤나 우습기까지 했다.
학생 때는 지저분한 생활기록부와 성적표가 우리의 밝은 앞날을 가로막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지저분한 이력서 때문에 돈을 주겠다고 해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사건이었다.
쓰다 보니 이런 문제아를 못 알아본 내가 이상하게 느껴질 테지만, 한 배를 타고 한 팀이 되기로 마음먹은 이상, 오히려 허들에 무너지기보단 조력하며 꽃 피운 연대의식이 더 유의미하다는 대의적 함의를 지닌 동업에 변태 같은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다들 대학교 때 팀플을 기억하는가? 팀플을 하다 보면 꼭 그중에 한 명은 상대적으로 다른 팀원들에 비해 떨어져 무능하거나 악의적으로 팀에 묻어가려고 하는 '프리라이더(free rider)'가 있다. 형평성을 위해 그런 프리라이더를 분별해내려고만 하면 교수님들은 자고로 팀(Team)은 그런 프리라이더까지 잘 통솔해서 안고 가는 것이 팀워크의 마지막 관문이라고 설명하곤 한다. 서바이벌 프로그램만 봐도 팀워크를 비슷하게 묘사하고 있다. 들쑥날쑥한 실력과 성향, 인품을 가진 구성원들을 데리고도 좋은 퍼포먼스를 내는 팀이 결국 팀, 그리고 리더십의 본질을 잘 보여주었다며 항상 그 에피소드의 주인공 서사를 쓰곤 한다.
나 또한 동업으로서 한 팀이 되었다면 어떠한 핸디캡이 있더라도 끌어안고 가는 것이 책임감이라 생각했고, 크고 작은 역경에 이런저런 토를 달다 보면 동업은 영원히 불가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뿐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정말 간과한 부분은 동업은 팀플이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처럼 단발적인 작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동업은 원한다면 평생 갈 수도 있다. 평생의 프로젝트에 프리라이더를 태우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회사 설립과 동시에 시작한 프로젝트는 내가 직접 따온 프로젝트이니 본인이 정(正)이 되어 리드를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큰 규모의 프로젝트이다 보니 어느 정도의 수익성은 예측 가능했기에 그녀에게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동업이었다. 그 말인즉슨, 그렇게 입버릇처럼 우리의 회사를 차리자, 차리자 해도 몇 년간 만들지 않던 그녀가 이 동업에는 다니던 직장까지 때려치우며 곧바로 동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의 노력 없이도 얻을 게 많음을 알았다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처음부터 멘땅에 헤딩하며 함께 회사를 만들어나가자 했다면 하지 않았을 수 있는 동업이란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 동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도 달랐다. 그저 꼴 보기 싫던 직장을 나와 돈을 나쁘지 않게 벌 수 있는 좋은 수단일 뿐이었던 이 동업에 그녀의 명확한 비전과 목표가 있을 리 만무했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계획조차 없던 그녀는 함께 사업을 꾸린 동업인인지, 그저 한 탕 당기러 온 한량인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