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와 나는 언제나 자연스럽고 편안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녀는 산둥의 한 조용한 도시, 둥잉 출신이었다. 둥잉은 석유로 유명한 곳이었고, 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늘 벨라에게 장난을 걸었다.
"벨라, 혹시 너희 집에선 석유가 나오니?"
나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어보곤 했다.
벨라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휴... 오빠도 그 얘기하는 거야? 고향 사람들이 자주 물어봐. 집에서 석유 좀 나오냐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둘 다 웃음을 터뜨렸고, 이런 소소한 대화가 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벨라는 종종 주말이 되면 우리 집에 와서 머물렀다. 사실 우리 집은 TJ와 함께 쓰고 있는 공간이라 종종 벨라가 머무는 것에 대해 신경이 쓰이기도 했지만, TJ는 벨라를 오히려 한 가족처럼 여기며 자연스럽게 대해줬다. 그래서 우리는 셋이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나며 친밀해졌다.
그날도 우리는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벨라의 전공이 일본어였는데, 그녀는 회사에서 일본어 업무를 종종 맡곤 했다. 대화를 나누던 중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고, 벨라는 바로 일본어로 전화를 받았다.
"はい、こちらは ベラ です。 どうぞお話しください。" (네, 벨라입니다. 말씀하세요.)
그녀는 유창하게 일본어로 대화를 이어갔고, 전화를 끊은 후에도 자연스럽게 업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나는 감탄한 듯 벨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와, 진짜 일본어 잘하네. 한국어도 저렇게 유창하게 해 주면 좋겠는데?"
벨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빠가 있는데 뭐, 괜찮아요." 그러면서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서로에 대한 많은 것을 알아가고 있었다. 가끔씩은 내가 그녀에게 중국 음식을 만들어 주고, 때로는 벨라가 일본 요리를 시도하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리 실력이 뛰어나진 않아서 대부분은 내가 요리를 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벨라는 가끔 내게 배달 음식을 시켜 달라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하루는 그녀가 말을 꺼냈다. "오빠, 우리 고향에 같이 가면 좋겠다. 석유도 많고, 나중에 오빠도 석유 좀 구경하고."
나는 농담으로 되받아쳤다. "좋지! 근데 너희 집 석유가 나오면 꼭 나한테 먼저 알려줘."
우리는 그렇게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진지하게 서로의 삶에 대해 털어놓기도 했다. 벨라는 일본어 업무로 인해 바쁘기도 했고, 그녀는 회사에서 맡은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벨라, 너는 일하면서 힘들 때도 있지 않아? 어떻게 그렇게 잘 해내는 거야?"
벨라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조용히 말했다. "사실 부모님께 생활비도 보내고, 동생 학비도 제가 돕고 있거든. 책임감이 크다 보니 힘들어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어."
그 말을 듣고 나는 그녀가 참 강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중국에서는 장녀로서 부모님과 동생을 돕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벨라는 그 이상으로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추석 명절이 가까워지면서 나는 벨라에게 물었다.
"벨라, 이번 명절에는 너희 집에 갈 수 있을까?"
벨라는 잠시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오빠… 우리 부모님은 외국인을 만난 적이 없어. 그래서 아마 좀 무서워하실 수도 있어."
그녀의 대답에 나는 살짝 놀랐지만, 이해했다. "그럼, 내가 먼저 안 가는 게 낫겠지? 괜찮아, 네가 부모님께 나에 대해 잘 얘기해 주면 돼."
벨라는 안도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가 먼저 이야기해 보고, 괜찮다고 하시면 그때 오빠가 와도 좋을 것 같아."
명절이 되자 벨라는 고향으로 돌아갔고, 나는 칭다오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하지만 명절 내내 벨라에게서 연락이 없었고, 돌아온 후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를 그녀는 가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며 나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오빠, 부모님이 외국인과의 연애를 반대하셔.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 그냥 중국 사람은 중국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하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대답했다.
"벨라, 부모님의 생각이 너와 같을 필요는 없잖아. 너도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러나 벨라는 여전히 마음이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장녀로서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컸고, 부모님께 생활비도 지원하고 동생의 학비도 돕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의 의견에 반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내 옆에서 평소처럼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미소 뒤에는 깊은 고민이 숨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