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출산 준비(1)
뉴질랜드에서 임신한 여성들은 흔히 임신 중기 혹은 그 이전부터 스스로 출산 계획을 주도적으로 세워 나간다. 이 과정에서 미드와이프는 초기 단계부터 산모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지원하지만, 궁극적으로 산모가 출산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미드와이프의 권유로 남편과 함께 산전 수업(antenatal class)에 참여했으며, 셋째 아이를 준비할 때는 가정 출산(home birth) 세미나에 참여하며 주도적으로 출산을 준비했다. 자연 출산에 대한 깊은 관심 덕분에, 의료 개입 없이 생명의 탄생 순간을 맞이하고자 하는 기대감에 설레이기도 했다.
산전 수업에서는 모든 산모가 파트너와 함께 참여하도록 권장한다. 수업에서는 출산 과정뿐 아니라 출산 후 신생아 케어와 모유 수유 같은 실질적인 주제부터, 제왕절개, 유도제, 에피듀럴 같은 의료 개입 옵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택지를 논의한다. 뉴질랜드의 출산 철학은 특별한 위험 요소가 없는 한, 의료 개입 없이 산모와 아기의 본연의 과정을 존중하는 데 중점을 둔다. 생명 탄생의 순간을 자연에 맡기는 방식은 내가 원하는 출산의 한 장면이었다. 수업에 참여한 남편들이 의료 개입 옵션에 대해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토론에 참여하는 모습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저렇게 아빠들도 출산에 관심들이 많은거야? 부부끼리 논의를 통해 각자 적합한 방식을 생각해보고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기도 한다. 여러 의료 개입 옵션의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니, 단순히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의료 개입을 선택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고민도 들었다. 출산의 고통은 어쩌면, 같은 시간 온 힘을 다해 세상으로 나오는 아기를 마중하는 엄마로서의 책임이자 아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힘을 주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수업을 통해 배운것은, 출산에 있어 준비해야 할 것은 출산 장소나 방법뿐 아니라 생명과 존재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이라는 점이었다.
뉴질랜드에서는 산모에게 공립 병원, 조산원(birth center), 그리고 가정 출산의 선택지를 제공한다. 첫 아이는 조산원에서 낳고자 했지만, 갑작스럽게 양수가 터지고 48시간이 지나도 진통이 오지 않아 병원에서 유도분만을 해야 했다. 계획은 깨졌지만, 무엇보다 아기와 나의 안전이 우선이었기에 미드와이프의 조언을 따랐다. 병원에 입원해 유도제를 투약했으나, 자궁이 과다 수축하면서 진통 시간이 길어졌고, 반나절 넘게 이어진 진통 속에서 아기는 스트레스를 받아 오히려 진행이 더뎌졌다. 그 과정에서 의료진은 진통제 투약을 제안하며 부작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고, 약물의 종류와 부작용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던 남편이 나를 대신해 서명했다. 출산 후 에피듀럴 부작용으로 일주일간 두통에 시달리며 부작용의 무서움을 실감하기도 했다.이를 통해 남편은 단순한 보호자를 넘어 아기의 보호자로서 출산 과정에 대해 알고 참여하는 책임의 무게를 느꼈던 것 같다. 아기와 산모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이해하고 대비하는 것이 진정한 아빠로 거듭나는 길이라는 걸 배웠다.
진통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나는 이틀간의 고된 진통과 약물 투여로 인해 의식을 잃게 되었다. 그때 아기의 심장 박동이 약해지면서 긴급 분만이 필요했고, 의료진은 제왕절개보다 더 신속한 포셉 분만을 권유했고, 다행히 이 결정 덕분에 아기를 안전하게 만날 수 있었다. 이때 나는, 출산 방식에 대해 미리 숙지하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위급한 순간에는 무엇보다 신속하고 안전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또한 배우게 되었다. 이렇게 저마다의 출산 과정이 하나의 시나리오일 뿐, 다음 임신과 출산을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는 안정감도 함께 얻게되었다.
둘째 아이는 병원 분만실에서 조용히 수중 분만으로, 셋째와 넷째는 따뜻한 집에서 온 가족의 환영을 받으며 태어났다. 특히 가정 출산을 준비하며 생명의 경이로움과 가족 공동체의 본질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다. 출산은 나와 남편이 함께 짊어져야 할 여정임을 경험하며 우리는 가족이라는 공동체로서 더 깊은 책임감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들 이었다.
출산은 단순히 생명의 탄생을 넘어, 우리 모두가 삶을 탐구하는 여정의 시작이다. 아기는 자연의 순환 속에서 자라나고, 산모와 남편은 그 존재를 지켜보며 책임의 무게를 실감한다. 아기가 태어남과 동시에 우리는 서로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묻고, 답하며 하나의 가족을 이루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