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미드와이프를 만나다
임신 33주가 될 때까지 나는 한국에서 임신 기간을 보냈다. 내가 다니던 산부인과 원장님은 참 친절하셨다. 겁 많은 산모였던 나는 태아의 작은 변화에도 불안에 떨었고,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느껴지면 병원으로 달려가 초음파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곤 했다. 그 33주 동안 산부인과를 찾은 횟수는 내가 한국에서 지난 5년간 병원을 찾은 횟수와 맞먹었다. 정기적인 진찰과 초음파 검사, 그리고 원장님의 따뜻한 위로 한마디는 엄마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될 나의 불안을 잠재웠다.
미리 계획되어 있던 임신 말기의 이민을 위해, 뉴질랜드 현지에서의 출산 준비도 해야 했다. 뉴질랜드에서 출산은 한국과 많이 달랐다. 이곳에서 임신과 출산은 공인조산사(midwife)가 그 여정을 함께 한다. 임신 확인 후 자신의 지역 미드와이프를 찾으면 국가에서 모든 비용을 부담해 준다. 나는 그때 당시 임신 중이었던 올케의 소개를 받아, 뉴질랜드 도착 몇 달 전에 미리 미드와이프를 정하고 이메일로 대화를 나누며 필요한 서류를 준비했다.
미드와이프와의 첫 만남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녀는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우리는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내 몸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혈압과 체중을 확인하고, 작은 기계를 배에 대어 태아의 심장 박동을 들으며 그 기적 같은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였다. 배에 줄자를 대고 길이를 재며 그녀는 “완벽해요”라고 말했다.
초음파 검사는 없었다. 네 아이를 낳으며 지켜본 바, 뉴질랜드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이상 임신 기간 내 초음파는 세 번만 진행된다. 초기에 임신을 확정 짓는 초음파(Dating scan), 12주 경 다운증후군을 검사하는 Nuchal Translucency scan, 그리고 20주 경 정밀 초음파(Anatomy scan)이다. 이후 28주가 넘어 배 둘레나 체중이 평균과 차이가 있거나, 임신 관련 합병증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별도의 추가 초음파(growth scan) 없이 출산을 준비한다. 한국에서 12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와 아직 정신이 얼떨떨한데, 초음파도 없이 아이를 낳는다니! 이 상황에 놀라움과 함께 걱정이 몰려왔다.
미드와이프는 그런 나의 불안을 알아채고는 천천히 나를 다독였다. “걱정할 것 없어요. 아기는 잘 자라고 있고, 당신은 아기와 함께 먼 길을 떠날 만큼 강인한 엄마입니다. 너무나도 멋지게 잘해왔고, 당신만큼이나 아기도 강합니다. 인체의 신비가 아이를 보호할 테니 푹 쉬고, 다음 약속 때는 출산 준비를 이야기해 보도록 해요.” 그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나는 내 안의 불안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후 둘째, 셋째, 넷째의 임신기간 동안, 임신 초기에는 3주에 한 번, 중기에는 한 달에 한 번, 말기에는 2주에 한 번씩 미드와이프와 만남을 가졌고, 매번 진료 시간의 절반 이상이 위로와 격려로 채워졌다. 미드와이프들의 말속에는 단순히 격려를 넘어선 힘이 담겨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었다.
너는 강한 여자이자 강한 엄마야.
그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한 격려가 아닌, 내가 엄마로서 걸어갈 길을 암시해 주는 것 같았다.
뉴질랜드에서는 임신을 단순한 의료행위로만 보지 않는다. 강인한 여자가 강인한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여기며, 여성의 몸과 마음이 태아와 하나 되어 신비한 여정을 함께하는 시간이라 믿는다. 내 안의 불안과 걱정은 미드와이프의 격려와 응원 속에서 한 겹씩 벗겨지고, 그 자리에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감과 사랑으로 채워졌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임신의 모든 과정이 우리를 강인한 부모로 만들어주는 시간이라는 것을. 우주가 만들어낸 신비 속에서 자라는 아이와 함께, 나는 오늘도 강인한 엄마가 되어가는 여정을 배워가고 있다.